[뉴욕리포트]美공립초교, 급식비 못내면 도 넘은 징벌...미국인 화났다
상태바
[뉴욕리포트]美공립초교, 급식비 못내면 도 넘은 징벌...미국인 화났다
  • 권혜미 뉴욕통신원
  • 승인 2019.05.21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급식비 미납시 정상배식 접근불가
같은 식당서 차가운 샌드위치만 배식
2016년엔 팔에 '점심값 필요해요' 스탬프 찍기도

[오피니언뉴스=권혜미 뉴욕통신원] 미국 투자가 로버트 스미스가 지난 19일(현지시간) 모어하우스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 가운데 학자금 대출을 받은 396명에게 4000만달러(약 478억원)에 이르는 대출금을 대신 갚아 주겠다는 뉴스가 전 세계로 전파됐다. 

이렇게 감동적인 뉴스가 있었던 반면 미국내 한 켠에선 급식비를 못내는 학생에게 학교가 망신주기를 일삼아 공분을 사고 있다.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에선 급식비를 못낸 학생에게 경고조치로 인격 모독을 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의 팔에 ‘급식비를 내야한다’라는 스탬프를 찍거나 급식비를 안내면 성적표를 주지 않는 학교도 등장했다. 과거 얘기가 아니라 2019년 현재 미국의 모습이다. 

지난 13일 미국 로드 아일랜드주(州)의 워윅(Warwick)공립 초등학교에서 급식비를 못낸 학생들에게 따뜻한 식단의 정상 배식을 금지하고 급식비를 낼때까지 버터와 잼만 바른 차가운 샌드위치를 배식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워익 공립초등학교 전경. 이 학교는 급식비 미납 학생들에게 정상배식대신 차가운 샌드위치를 줘 언론의 뭇매를 맞고 하루 만에 이같은 조치를 철회했다. 사진=트위터 캡쳐.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워익 공립초등학교 전경. 이 학교는 급식비 미납 학생들에게 정상배식대신 차가운 샌드위치를 줘 언론의 뭇매를 맞고 하루 만에 이같은 조치를 철회했다. 사진=트위터 캡쳐.

해당 학교는 미납입 급식비의 총액이 7만7000달러에 이르러 불가피하게 강압적인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마자 페이스북은 CNN,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학부모 단체가 일제히 어린 학생들에게 학교가 가하는 비인간적인 “급식 망신주기”에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워윅 초등학교는 해당 정책을 하루 만에 철회했다. 

논란이 된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카렌 바슈 (Karen Bachus) 워윅 학교장은 “학생들의 급식비 지급 여부와 상관 없이 학생들이 점심 메뉴를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부모인 아니스 저메인(Aniece Germain)은 급식비를 고작 일주일 밀렸을 뿐인데 학교가 아이에게 차가운빵에 잼을 발라 줬다면서, 하교길에 아들이 왜 급식비를 못 냈냐고 물어 봤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녀는 학교가 잼 샌드위치를 주변서도 다른 따뜻한 급식 메뉴와 똑같은 1식에 2달러 50센트를 청구했다며, 아이를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정상적인 배식도 안해주고도 돈은 그대로 받겠다는 건 지나친 조치라고 항변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 급식비를 못내는 학생을 망신 주는 소위 ‘런치 쉐이밍(Lunch Shaming·점심 망신주기)이라는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앨라배마주의 한 학교에선 급식비를 못내는 학생의 팔에 “급식비를 내야한다”라는 스탬프를 찍었고, 유타와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급식 업체 직원이 급식비를 안낸 학생이 급식판을 들자 이것을 뺐어 쓰레기 통에 버린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앨라배마주의 한 초등학교가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 팔에 'I need lunch money(나는 점심값이 필요해요)' 라는 스탬프를 찍은 모습. 사진=권혜미뉴욕통신원.
지난 2016년 앨라배마주의 한 초등학교가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 팔에 'I need lunch money(나는 점심값이 필요해요)' 라는 스탬프를 찍은 모습. 사진=권혜미뉴욕통신원.

런치 쉐이밍에 대한 비판이 일자 급식비를 내지 않으면 징벌적 조치대신 성적표를 발급해 주지 않는 학교도 생겨났다. 

미국 연방 정부의 학교 급식 지원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농림부의 2014년 통계에 따르면, 공립 학교의 절반 가량이 급식비를 못 낸 학생들에게 런치 쉐이밍을 징벌로 사용하고 있었다. 런치 쉐이밍을 가하는 학교 가운데 45%는 따뜻한 음식 대신 차가운 샌드위치를 배식하고, 3%는 아예 급식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만연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달 미 상원의회에선 “급식 망신 주기 방지 법안”을 입법 예고한 상태이다.

워윅 학교 논쟁이 페이스북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자 미국 요구르트 회사인 쵸바니의 CEO 함디 울루카야 (Hamdi Ulukaya)는 트위터를 통해 학생은 영양 잡힌 건강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다며 당장 급식 망신 주기를 중단하라면서 워윅 학교에 47만 달러(약 5억6000만원)을 기부했다.  

알렉 볼드위과 마이클 무어와 같은 유명인들도 학교 당국을 비난하며 기금을 기부했다. 마이클 무어는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어디까지 아이들을 괴롭혀야 하는가? 수 백만 명 어린이가 빈곤에 시달리고, 의료 보험도 없는 상태 인데 이제 점심을 굶기고 망신을 주기까지 해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역 레스토랑 오너의 주도로 펀드 레이징 캠페인이 실시되 5만 7000달러(약 6800만원)의 기금을 워윅 학교에 기부했다.

미 농림부는 국가 학교 급식 프로그램 (National School Lunch Program)을 통해 미 전역 10만 개의 학교에서 3000만명의 학생에게 무료 급식 혹은 급식비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같은 지원은 신고된 부모의 소득에 따라 구분해 지원된다.

그러나 급식비를 못낸 모든 학생들에게 연방정부의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신청을 하지 않거나 부모의 소득을 신고할 수 없는 처지의 학생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된 워윅 공립학교의 경우 급식비를 못낸 학생의 72%는 미 정부가 후원하는 급식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가정이라고 밝혔다. 

워윅 공립학교 관계자는 현지 언론을 통해 “학교가 매월 30일 마다 급식비 독촉장을 보내지만 부모가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학생이 졸업하면 학교가 미지급된 급식비를 감당할 수 밖에 없고 학교 재정에 큰 부담이돼 어쩔수 없이 징벌적 조치를 취했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