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흥겹던 `야구 응원가` 왜 재미없어졌나
상태바
[김민정의 예술적인 法] 흥겹던 `야구 응원가` 왜 재미없어졌나
  •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
  • 승인 2019.05.19 13: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에 익은 응원가 사라져...2018년 저작권 참해소송이 계기
최근 법원 "가사는 새 가사, 악곡은 변형 없어" 저작권자 패소 판결
저작권 사용계약 협상 잘못한 탓... 바른 협상으로 흥겨운 응원가 부활되길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변호사

[김민정 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올해도 야구 시즌이 한창이다. 탁 트인 야구장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신나는 응원가를 부르며 경기를 즐기는 일상은 야구팬들의 소확행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지난 2017년 시즌부터 이런 재미가 덜해졌다. 오랫동안 귀에 익은 일부 응원가가 교체됐기 때문이다. 이유는 2016년 말, 일부 작사·작곡가들이 "프로야구 구단이 동의 없이 곡을 변경해 응원가로 사용하고 있다"며 저작권 침해 문제를 제기한 것.

이후 구단들은 개별적으로 각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으려 노력해 일부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끝내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일부 작사⋅작곡가들은 구단들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지난 2월과 3월 잇따른 법원의 1심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 잇따라 원고 저작권자들 패소 판결..."권리 침해 없었다"

결론부터 보자면 현재까지는 모두 원고가 패소했다. 지난 2019년 2월 18일 내려진 첫 판결은 윤일상씨 등 작사⋅작곡가 21명이 삼성라이온즈를 상대로 한 것이다.

원고들은 "피고가 원고들의 음악저작물을 야구 응원가로 사용하면서 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허락 없이 악곡 또는 가사를 일부 변경·편곡·개사해 동일성유지권 또는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침해했고, 그 과정에서 성명표시권 또한 침해했다"며 총 4억 2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원고들이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후 양모씨 등이 삼성라이온즈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및 작곡가 김창환 씨와 주영훈 씨가 서울히어로즈에 제기한 소송결과 역시 법원은 "구단들이 노래를 일부 변경해 응원가로 사용한 것이 원고들이 주장하는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어떤 이유로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인지, 합의부가 내린 첫 판결을 중심으로 짚어보자.

유명 작사작곡가의 원곡을 개사 편곡한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는 건 야구 보는 곁재미중 하나다. 사진= 연합뉴스
유명 작사작곡가의 원곡을 개사 편곡한 응원가를 목청껏 부르는 건 야구 보는 곁재미중 하나다. 사진= 연합뉴스

이 사건에서 여러 저작권들중 저작재산권인 2차적저작물작성권 및 저작인격권인 동일성유지권, 성명표시권이 쟁점이 됐다. 

2차적저작물이란 “원저작물을 번역ㆍ편곡ㆍ변형ㆍ각색ㆍ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로서(저작권법 제5조 제1항), 이런 2차적저작물을 작성할 권리는 원저작물의 저작권자에게 있는데, 이는 저작재산권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양도 및 이용허락이 가능하다.

노래는 `결합저작물`...가사와 악곡은 권리 분리돼

동일성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ㆍ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 즉 타인이 자신의 저작물을 동의 없이 함부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리이며(저작권법 제13조 제1항), 성명표시권은 저작물에 저작자의 성명을 표시할 권리로서(제12조 제1항), 이들은 저작인격권에 해당돼 저작자만이 직접 행사할 수 있다.

법원은 먼저 2차적저작물작성권과 동일성유지권에 대해서는 노래의 ‘가사’와 ‘악곡’을 분리해서 판단했는데, 노래는 가사와 악곡이 분리되어 이용될 수 있는 결합저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가사의 저작권자는 작사가, 악곡의 저작권자는 작곡가다).

우선 노래가사의 경우, ‘원저작물을 개사해 응원가로 사용하면서 기존의 가사를 대부분 새로운 가사로 변경해 유사한 문구조차 발견하기 어려워 양자 사이에는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 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가사를 ”날려라 안타 ***!“로 개사했는데, 이처럼 기존의 표현을 찾아볼 수 없이 완전히 새로운 가사가 된 경우, 이는 별개의 새로운 저작물이며 기존 가사의 작사가들이 그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악곡에 대해서는 그 변경의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2차적저작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피고가 원고들의 음악저작물을 야구장 응원가로 사용하기 위해 변경한 정도는 음역대를 좀 높게 하거나 박자 템포를 좀 빠르게 변경한 것’에 불과해 야구장 관객들로서는 기존 악곡과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일부분만을 다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음악저작물이 응원가로 사용되는 과정에 수반될 수 있는 통상적인 변경에 불과해 기존 판례들이 제시한 2차적저작물의 요건인 “실질적 개변“으로서의 편곡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2차적저작물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법원 "응원가 가사는 기존 가사와 유사성 없고, 악곡은 크게 바뀐 것 없어"
 
또한 동일성유지권에 관해서도, 음악저작물이 응원가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수반될 수 있는 이같은 정도의 통상적인 변경은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변경”으로서 동일성유지권의 예외 규정인 저작권법 제13조 제2항 제5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작사·작곡가들의 성명표시권에 대해서도 예외 규정을 적용했다. 저작권법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추어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성명표시권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데(제12조 제2항 단서), 법원은 ①응원가는 주로 소속 야구선수가 등장하는 동안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고 재정비하는 동안 사용되는데 그 시간이 매우 짧아 음악저작권자들의 성명을 일일이 표시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②전광판은 주로 현재 경기진행 상황을 안내하거나 현장을 중계하는데 사용되며 ③야구장 응원문화의 특성상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응원가가 갑자기 불리기도 하는 점 등으로 이유로 ‘응원가가 불릴 때 자신들의 성명이 표시되지 않아 성명표시권을 침해당했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법원 "동일성유지권, 성명표시권 등도 저작권법상 예외에 해당"

결국 이번 판결의 핵심은 “원고들의 음악저작물이 응원가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생긴 통상적이고 필수적인 변경은 저작권침해 행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즉 개사는 별개의 새로운 저작(작사)행위라는 점을 이유로, 악곡의 경우 그 편곡의 정도가 응원가로 사용하기 위하여 예상되는 범위 내의 변경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2차적저작물작성권 또는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성명표시를 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명표시권의 침해도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응원가라는 사용목적에 부합한 사용행위에 대해서 이를 침해행위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 소송이 빚어지자 연간 수천만원씩 저작권료를 내던 KBO소속 구단들은 자체적으로 응원가를 제작해 사용했다. 응원가를 교체하자 열성 야구팬들은 반발하기도 했다.  사진= 연합뉴스
저작권 소송이 빚어지자 연간 수천만원씩 저작권료를 내던 KBO소속 구단들은 자체적으로 응원가를 제작해 사용했다. 응원가를 교체하자 열성 야구팬들은 반발하기도 했다. 사진= 연합뉴스

어찌 보면 이번 판결이 저작권자의 보호에 미흡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과의 균형을 맞춘 판단이라고 보여진다.

대부분 국가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저작권법 역시 ‘저작권의 보호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의 조화’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저작권법 제1조), 헌법 제9조의 ‘민족문화의 창달’, 제119조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이라는 의미 역시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덧붙여, 이번 사건에서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음악저작물 이용허락 계약의 당사자인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저작권신탁단체가 계약 체결 시에 이같은 가사와 악곡의 변경에 대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저작인격권은 일신전속권(저작자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동일성유지권과 성명표시권에 대해서는 신탁관리단체가 저작권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응원가를 위한 저작물의 개변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으로서, 응원가와 유사한 선거 로고송의 경우 신탁단체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이용허락 전에 저작권자들에게 개작동의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KBO-저작권신탁단체, 저작권 사용계약 `똑바로 했어야`

계약체결 시 음원사용료 뿐만 아니라 저작인격권 등 분쟁이 충분히 예상되는 계약조건들을 명확하게 합의하고 명시했다면, 현재의 상황과 같이 정작 계약의 당사자도 아닌 저작권자들과 구단들, 그리고 수많은 야구팬들이 피해를 보지는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판결을 통해 ‘저작물의 이용목적에 부합한 저작권의 행사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이라는 저작권법의 목적을 재고함과 동시에, 사전에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계약체결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국민스포츠라 할 수 있는 야구경기를 즐기며 모든 팬들이 마음 놓고 흥겨운 응원가를 부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민정 변호사(법무법인 휘명)는 서울대 음악대 기악과(피아노 전공), 베를린 국립 예술대를 나왔다. 이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법무법인 휘명에서 변호사로 재직중이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감정인,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정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