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리즘, 인류문명이 갈 길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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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리즘, 인류문명이 갈 길은 아직도 멀다
  • 하종오 편집인
  • 승인 2015.08.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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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 종교, 인종에 대한 상호 존중과 공존만이 해답이다

문화유적 파괴 행위를 가리키는 반달리즘(vandalism)이란 용어가 있다. 5세기 중반 유럽의 민족 대이동 때 게르만족의 일파인 북아프리카지역 반달족이 지중해 연안에서부터 로마에 이르기까지 무차별 약탈과 파괴 행위를 일삼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하지만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반달족은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문화재를 파괴하지 않았으며, ‘도시를 파괴하지 말라’는 로마 교황의 당부에도 순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달족은 억울할 법하다.

한 번 찍힌 낙인은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다. 반달리즘은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무지 내지는 멸시에서 비롯된 파괴행위’를 지칭하는 일반 용어로 굳어졌다. 현대에 들어서는 약탈과 방화, 공공시설 파괴 등의 도시범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나아가 최근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을 악용해 특정인 혹은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거짓 정보로 교란시키는 등의 행위를 가리키는 ‘사이버 반달리즘’이란 용어도 생겼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된 소니픽처스 해킹 사건을 사이버 반달리즘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무참히 사라진 팔미라 유적, 바미얀 석굴… 인류 공통의 유산

이슬람국가(IS)가 지난 23일(현지시간) 시리아 팔미라 유적지의 2,000년 된 고대 신전인 바알 샤민 신전에 폭약을 설치해 파괴한 뒤 그 사진들을 공개해 공분을 샀다. 사진에는 신전 기둥 하나하나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모습, 폭파 당시 치솟는 시커먼 연기, 폭파 후 신전이 폐허가 된 장면 등이 그대로 담겼다.

 

▲ 바알 샤민 신전의 기둥마다 IS가 설치한 폭발물. /연합뉴스
▲ 바알 샤민 신전이 폭파되면서 거대한 연기 기둥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 훼손되기 전인 2009년 촬영된 팔미라 유적지의 모습. /연합뉴스

 

바알 샤민 신전은 기원후 17년 페니키아가 폭풍과 강우의 신을 모시기 위해 세운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아시스 도시인 팔미라는 귀중한 고대유적을 품고 있어 '사막의 신부'라 불린다 한다. 지난 5월 팔미라를 장악한 IS는 한 달 후 역시 2,000년 된 ‘알랏의 사자상’을 부수는 등 고대 유물과 유적을 잇달아 훼손하고 있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IS의 팔미라 유적 파괴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신전 파괴는 새로운 전쟁 범죄로 시리아 국민과 인류에게 큰 손실"이라며 "범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를 “야만적 테러 행위”라 규정하고 "각국 정부가 힘을 합쳐 테러를 중단시키기 위해 신속히 행동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IS는 바알 샤민 신전 폭파에 앞서 팔미라 유적 연구에 평생을 헌신한 시리아의 82세 노학자 칼리드 아사드를 참수하고 시신을 유적지 기둥에 매달기까지 했다. 아사드는 팔미라의 유물들이 옮겨진 곳을 대라는 IS 조직원들의 심문에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아 참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람 급진 수니파 무장조직인 IS는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 고대 석상과 봉분 등 유적을 우상숭배로 간주한다. 유적 파괴를 종교적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IS가 배포한 공식 영상에 등장한 한 조직원은 "이러한 유적들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 해도, 이슬람의 가치에 비할 바는 못 된다"고 말했다.

 

상대의 정신적 뿌리의 말살을 기도하는 반달리즘

IS의 만행은 전형적인 반달리즘이다. 사실 보코바 사무총장의 말처럼 ‘새로운’ 것이 아닌 고래(古來)의 전쟁 범죄라고 할 수 있다. 인류사에서 인종적, 종교적 혹은 문명적 분쟁이 있었던 곳이면 반달리즘은 언제나 횡행했다.

반달리즘은 문화재나 문화유적 파괴 행위 그 자체이기보다는 분쟁 상대 혹은 피정복민의 정신, 사상을 뿌리 뽑으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문화 청소’라는 비유가 더 적합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에 의한 자행된 문화재 파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 등 문화재를 약탈하고 불을 지른 행위 등 헤아릴 수 없는 예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최근의 경우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2001년 바미얀 석불을 무참히 파괴한 사례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힌두쿠시 산맥의 절벽 석굴에 새겨진 바미얀 석불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기록된, 세계적 문화유산이었다. 이슬람 원리주의 탈레반은 당시 유엔 189개 회원국이 결의안까지 통과시키는 등 국제사회가 일치단결해 간곡하게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켓탄으로 이 석불을 파괴했다.

인류 공통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소멸시켜 버리는 이 21세기의 반달리즘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반기문 총장의 말처럼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IS를 상대로 세계 각국 정부가 힘을 합쳐 신속히 행동한다면 가능할 것인가.

불행히도 그것만으로는 반달리즘을 종식시키기 힘들 것이다. 인류의 인종적, 종교적 혹은 이념적 편견 그리고 대립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반달리즘도 언제든 다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단기적 해답은 인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의 제고와 그 치밀한 관리, 파괴 행위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예방이겠다.

하지만 근본적 해답은 역시 다른 문화와 문명, 종교, 인종에 대한 상호 이해와 존중, 그리고 공존밖에 없다. 거기까지 인류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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