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재용 재판에 부쳐- ②변호인단, 대법원 의견서에 美에반스 사건 잘못 인용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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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재용 재판에 부쳐- ②변호인단, 대법원 의견서에 美에반스 사건 잘못 인용한듯
  • 류광후 법무법인 리더스 변호사
  • 승인 2019.05.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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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례 "직무연관성 없을 때 공갈죄만 성립된다"
국내 형법, 뇌물수수죄와 뇌물공여죄는 대항범 함께 처벌...미국과 달라
류광후 변호사
류광후 변호사

①에 이어 계속

[류광후 변호사] 대통령의 협박, 압력이 압도적이어서 저항할 수 없다면 형법 제12조의 기대불가능성으로 책임이 조각된다고 볼 여지도 있다. 물론 여러 번의 유사한 사례들에서 한 번도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다고 주저 않을 수는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대통령의 압도적 압력에 도저히 저항할 수 없다면 이 경우에는 설사 일부 대가관계가 있다고 해도, 책임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한다.

2심 판결 "무소불위 대통령 앞, 저항할 수 없다해도 법적 의무와 책임있어" 

노태우 대통령 판례처럼 대통령이 광범위한 직무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이유로 이런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하기만 하면 대가관계는 있는 것이고 바로 뇌물공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가능성을 이재용 2심 재판에서 희미하게나마 보여준 바 있다.

물론 “부패한 공직자의 강요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수사 당국에 가는 것이지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미국 대법원의 `칸 판결(1975)`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대통령처럼 법적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지니고 있고 또 역사적으로 그것들이 오용·남용되어 왔던 사정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현직 대통령 앞에 불려가서 직간접적으로 이런 저런 명목의 자금제공을 요구받았을 때 누가 감히 수사 당국에 갈 수 있을까. 한국 현실에서. 애초부터 기대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어떠한 형태로든 선거자금, 정치자금, 기부행위 등을 강요하면 그 상대방인 재벌 총수들은 기대불가능성에 의해 책임이 조각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 경우 재벌 총수들은 언제든 처벌받지 않으므로 마음 놓고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금전을 제공할 우려도 제기된다. 즉 합법적인 정경유착을 허용하는 논리에 다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항상 대통령과 재벌총수와의 금전 제공관계를 뇌물죄로만 다스리라는 법도 없다. 법은 항상 예외가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기대불가능성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첫째 조건이 ‘저항할 수 없는 심리적 폭력‘이므로 재벌 총수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경우와 어떻게든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도 구별할 수 있다.

이재용 재판 2심 판결에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인 박근혜가 삼성을 겁박하고’라거나, 이재용 부회장이 박 전대통령에게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제공했다‘라거나,  ’뇌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거나,  ’박 전대통령에게 호되게 질책을 당한 후 용역계약을 체결했다‘고 인정함으로써 얼핏 기대불가능에 대한 기대를 키웠으나 ’박 전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하더라도 적법한 행동을 할 거라는 기대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순 없다. 공무원의 부패에 조력해선 안 된다는 국민으로서의 법적 의무와 삼성그룹 경영진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기대가능성에 기댄 이재용 변호인들의 뇌물제공죄 면책 주장을 일축했다.

그럼으로써 형법 제129조와 형법 제133조가 대향범 구조로 되어 있어 공무원에게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공여한 자에게도 처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형을 1심보다 다소 감경했을 뿐이었다.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단이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포함시킨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례가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단이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포함시킨 미국 연방항소법원의 판례가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변호인단, 대법원 의견서 통해 뇌물공여죄 피하려 한 듯 

그런데 이재용 변호인단이 한국 판례 대신 뜬금없이 미국 판례를 그것도 일부분만 유리하게 인용해서 대법원에 의견서를 낸 이유가 있다.

한국 판례는 “공무원이 직무집행의사 없이 또는 직무처리와 대가적 관계없이 타인을 공갈하여 재물을 교부하게 한 경우’에는 공갈죄만 성립한다(대법원 1994. 12. 22. 94도2528 판결)“고 하므로 설사 이재용 2심 재판부가 일부 인정하였듯이 박 전대통령의 공갈혐의가 인정된다 해도 대통령의 직무행위와 무관하지 않다면 우리 대법원은 뇌물을 받은 쪽은 뇌물수수죄와 공갈죄가 모두 성립되고 둘은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형법제 129조의 뇌물수수죄는 형법 제133조의 뇌물공여죄와 대향범으로 처벌되므로 피치 못하게 이재용 측으로서는 박 전대통령의 공갈죄가 인정되더라도 대통령의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는 한 뇌물공여죄를 벗어날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재용 변호인이 열심히 박 전대통령의 공갈혐의 유무만을 가지고 다투어서 설사 이것이 인정된다 해도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대가관계가 인정되는 한 뇌물공여죄를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대향범 처벌 조항이 없는 미국판례 중 뇌물을 받은 공무원의 공갈혐의가 인정되면 설사 대가관계가 있더라도 뇌물수수죄는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구절을 언급한 것이다.

아마도 대가관계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이것이 재판부에 의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아 보이므로 차라리 뇌물죄와 공갈죄를 구분하는 미국 소수 판례에라도 기대보자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 논리가 우리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약 받아들여진다면 그야말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결론을 내려야 할 사안이 된다.

그런데 이 일부 연방항소법원의 판례는 단순공갈죄(extortion by fear)와 뇌물죄 사안에 관한 것이고, 반면 이재용 뇌물사건은 홉스법상 '공무원자격에 의한 공갈죄(extortion under color of law)와 뇌물죄 사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어서 이 둘은 서로 양립가능하다는 미국 연방항소법원들의 주류적인 입장에 배치되므로 이재용 변호인이 잘못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③에서 계속

●류광후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리더스의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변호사시험 6회 출신이며, 미 뉴욕주 변호사 자격과 감정평가사 자격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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