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민의 입법혁신] 조급증보다는 입법혁신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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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민의 입법혁신] 조급증보다는 입법혁신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
  •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5.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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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운송사업자-카풀업체간 합의 끌어내...근본적 원인해결에는 거리 멀어
규제 혁신이 규제 폐지로 둔갑....자칫 `입법선정주의` 초래할 위험
국회 관료의 입법 권한, 불가피하지만 이상적인 점 아냐...`입법학` 정립 통해 보완해야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심우민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급속한 기술적 발전에 힘입어, 4차 산업혁명과 같은 유행어로 대변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돼 있다.

이와 같은 신기술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필수적으로 규제혁신 또는 입법혁신에 관한 논의를 수반한다. 주된 논지는 전통적인 법규범이 새로운 기술 혁신을 저해한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불합리한 규제가 더욱 문제라는 지적이다.

규제 혁신론과 규제 폐지론, 그리고 입법선정주의

전면적인 사회 및 공동체 혁신과 연계될 정도로 파급력을 가지는 기술적 진보는 당연히 이를 제약하는 법적 규제의 변화를 요청한다. 따라서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도 규제 및 입법혁신에 관한 국가 정책적 담론이 진행 중이다.

다만 다른 국가들과 우리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종전 법적 규제의 폐지를 규제 혁신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같이 조야한 규제 혁신론은 일종의 정책 효과 산출을 향한 조급증의 발로이며, 또한 `입법선정주의`라고도 불릴 수 있다.

사실 입법 또는 규제를 창설, 수정, 폐지하는 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정책결정권자들은 산업 및 경제 성장에 초점을 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편의적. 임시방편적인 입법 개선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고 해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는 법적 규제의 복잡성이 규제의 엄격성을 산출해내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또 매우 편의적인 입법개선 방안으로 규제 폐지론이 규제 혁신론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 진화에 따른 갈등, 무수히 등장할 입법·규제 쟁점들

정부 정책이 디지털 경제(digital economy) 활성화를 목표로 하면서, 사회 곳곳에서는 법적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법제를 둘러싼 갈등이다.

산업계와 시민사회는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균형점을 설정하는 데에서 심각한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이와 관련, 2018년 상반기 4차산업혁명위원회 해커톤을 거치면서 모종의 합의에 이른 듯했으나, 결국 상호 견해의 괴리감은 좁혀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최근 카풀 서비스의 합법화를 둘러싼 법제화 논란도 있었다. 전통 운수산업 종사자들과 카풀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들 간의 이해관계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도 이해관계자들 간의 타협을 정치적으로 유도한 바가 있기는 하지만, 관련 쟁점들이 온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결국 정부와 입법자들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현재의 갈등 상황을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3월초 택시업계와 카풀업체들이 더불어민주당 전현의 의원이 주도한 협상중재로 사회적 타협을 이뤘다. 그러나 불과 한달도 안돼 타협안의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3월초 택시업계와 카풀업체들이 더불어민주당 전현의 의원이 주도한 협상중재로 사회적 타협을 이뤘다. 그러나 불과 한달도 안돼 타협안의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과연 이런 타협이 가능할까? 현재와 같은 기술적 발전이 단지 국소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면 향후 새로운 입법 및 규제 쟁점들을 무수히 등장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치적 타협은 안정적이며 지속 가능한 대안이 될 수는 없고, 여전히 과거 정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임시방편적인 대안 제시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유의해야할 사실은 현재의 기술적 변화가 과거와는 다른 파급력을 가지는 만큼 입법혁신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언제까지 임시방편적인 대응에만 그칠 수는 없다. 보다 본질적으로 입법혁신에 상응하는 입법 체계를 갖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입법혁신, 이상적 대의민주주의 입법 시스템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언론에서 마주하는 입법 사안들은 현실 정치의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부적인 입법 대안의 구성 문제를 국회의원이나 행정 관료들이 종국적으로 결정할 영역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경향성이 크다. 이는 일부 시민사회 진영은 물론이고 상당수 전문가들에게도 드러나는 관념이다.

이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입법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국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의지가 반영될수록 더욱 바람직하다. 그래서 다소 거칠게 이야기 하자면 우리는 선거를 통해 입법자들에게 입법에 관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고, 이들이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입법에 임하는 체계를 헌법적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대의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모든 개개인의 입법 의지를 반영하기에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많은 경우에는 입법이 필요한 사안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전문성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일 뿐,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는 귀결이 아닌데도 이제까지는 이를 필연적인 것으로 수긍해왔다.

현실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한 입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말 그대로 현실적 `불가피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불가피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하다.

가장 손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공정한 선거와 이를 통해 선출된 입법자들이 스스로 시민사회 영역의 입법 의지를 반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체계다. 그리고 다소 강학적으로 보자면 국민 발의, 국민 소환, 그리고 국민 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들을 현행 체계 속에서 적절히 도입하자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

1년전 더불어민주당은 혁신성장, 4차산업혁명을 뒷받침할 `규제혁신` 5개 법안을 발표했다. `규제혁신=규제폐지`라는 편의적 공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진= 연합뉴스
1년전 더불어민주당은 혁신성장, 4차산업혁명을 뒷받침할 `규제혁신` 5개 법안을 발표했다. `규제혁신=규제폐지`라는 편의적 공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진= 연합뉴스

입법 불만족에 대응하는 방법: 입법정보를 최대한 공개해야

보다 더 본질적으로, 대의민주주의 입법 시스템이 이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입법자들의 입법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가 입법자나 국민 누구에게든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문제시 되는 입법 논란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명확하게 확인해 효과적인 대안을 논의해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책임도 비교적 정확하게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의회든 정부든 공적으로 입법 과정상 이루어진 기초적 논의 내용조차도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는 실제 입법을 위한 정상적인 진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든데, 이런 경우 확인할 수 있는 입법 정보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에 대한 불만은 불가피하다. 그 이유는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 주체들의 모든 의견이 국가 운영의 공통기준에 모두 반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모든 규칙들이 가지는 근원적인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중 누군가 불만스러운 입법과 마주했을 때, 그 불만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안이 무엇인지를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물론 모든 개개인들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 그러한 입법적 적극성을 강요받을 필요는 없다. 최소한 누군가 불만을 이야기 하고 싶을 때, 그에게 자신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정보와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우리 입법 체계가 갖추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야한 규제 혁신론이 아닌 면밀한 입법학(立法學) 담론 형성이 필요하다.

●심우민 교수는 연세대에서 법학박사를 취득한 이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을 거쳐 경인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교수(입법학센터장)로 재직하고 있다. 입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 입법 패러다임 전환에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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