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양심적인 사람이 권위에 쉽게 굴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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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양심적인 사람이 권위에 쉽게 굴복하는 이유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1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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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베그 교수의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리뷰
황당하고 기발한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이그 노벨상’ 심리학 분야 수상자로 유명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도덕적 인간은 왜 사회를 타락시키는가.부키 펴냄.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부키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이 책은 겉모습에 끌렸다. 제목부터 모순적이다. 도덕적 인간이 왜 나쁜 사회를 만든다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표지에는 사람 형상을 한 실루엣이 악마로 형상화된 실루엣과 손을 맞잡으려 한다. 사람 실루엣에는 다양한 자아 혹은 갈등을 은유하는 문양이 있고. 사람이 갈등을 겪다가 악마가 내민 손을 잡는다는 느낌이었다.

서점에서 호기심 나는 책이 있으면 뒤표지와 머리말을 읽어 본다. 그런데 이 책은 세부 목차까지 들춰보았다.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했던 것. 사회적인 사람은 과연 도덕적인 사람인가를 질문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인간이 부도덕에 굴복하는 심리를 따라가 본다는 책이었다.

그중에서도다수가 되면 달라지는 사람의 심리, 남들이 하니 나도 해야지 하는 사람의 심리를 알아본다는 내용에 마음이 끌렸다. 사실 왜들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많기도 하지만 어떤 마음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던 참이었다.

 

선과 악의 심리학

저자로랑 베그(Laurent Begue)’는 프랑스의 심리학자다. 저자의 연구가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떻게 평가받는지는 그가 2013이그 노벨상심리학 분야 수상자라는 걸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그 노벨상은 황당하고 기발한 연구에 주목하는 데 로랑 베그는술을 마신 사람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가설을 입증한 실험연구로 이 상을 받았다고.

이 책 프랑스어 제목을 번역하면선과 악의 심리학이다. 한글 제목과는 어감 차이가 있다. 한국어 제목이 문제를 제시하고 풀어간다는 느낌을 풍긴다면 원제목은 선과 악 두 상반된 가치를 심리학으로 해석해본다는 느낌이다.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 책은 선과 악 그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선과 악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어떤 형태를 취하는지, 그러한 관념들이 개인의 삶이나 타인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8)

 

저자는 이 책을사회심리학적으로 풀어갈 거라고 서두에 선언한다. 사회심리학은타인들이 우리의 관념, 정서, 행동방식에 미치는 영향력에 관심을 둔다고. 따라서 사람들이 선악을 생각하는 방식에 미치는 타인과 사회의 영향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의 큰 흐름은 인간의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며, 선과 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도덕성이 사회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힌다. 사람은, 아기일 때조차도 타인을 모방하고 학습하며 배운다고.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집단성은 너무나 결정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개인적 경험은 결국 다른 인간과 우리를 이어준 경험이다. 인간은 배척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집단 안에서의 자기 자리를 확인하거나 한껏 누릴 때 가장 보편적인 기쁨과 만족감을 느낀다.” (303)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속하고 싶은, 혹은 자기에게 우호적인 집단이 가진 사상과 행동을 옳다고 믿게 된다는 설명이다. 설사 자신의 소신과는 다르더라도 최소한 침묵으로 그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또한, “도덕 영역에서 행동 규준의 정당성은 그 규준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수에 크게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 도덕 규범으로 자리 잡은 것. 그런 심리가남들도 그러잖아!” 아니면우리 숫자가 이렇게 많잖아!”라며 저지르는 군중의 무질서를 정당화하기도 한다고. 그렇지만 저자는전쟁 범죄를 예로 들며 많은 사람이 참여한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건 아니라고 설명한다.

 

테드 강연 중인 로랑 베그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 사진=유튜브 캡쳐
테드 강연 중인 로랑 베그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 사진=유튜브 캡쳐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권위에 복종하기 쉽다?

사람들의 이러한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저자는 일방적 주장이 아닌 다양한 실험결과로 설명한다. 옳거나 옳지 않은 행동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심리 기제가 작동하는 현상을 근거를 들어 보여줄 뿐이다. 그중에서도 권력과 그 행사에 대한 실험결과가 울림을 준다.

 

“권력을 만끽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눈을 부라리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했다. 권력은 일반적으로 권위적 구조 내에서 행사된다. 권위의 잘못된 행사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246)

 

어디서 본듯한, 들은 듯한 이야기 아닌가? “우리는 좋은 독재였고 너네는 나쁜 독재잖아라던 정치인. “웃자고 한 건데라며 법조인을 죽이겠다던 협박을 놀이로 몰아가는 군중들. 달콤했던 권력과 거기서 떨어진 부스러기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실험결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제목에서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라고 물은 거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정확히 얘기하면 이 책은 제목처럼 문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내용은 아니었다. 원제처럼 선과 악의 심리를,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근거를 통해 설명할 뿐.

그렇지만 유추할 수는 있었다.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명 심리학자밀그램의 가짜 전기충격을 통한 복종 실험으로 그 근거를 유추할 수 있었다.

 

“밀그램은 개인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 그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느냐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257)

 

사람은 특히 개인이 어떤 상황에 부닥친다면 그 상황에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압박받는 분위기 때문에라도.

저자는 밀그램의 실험을 토대로 더 깊이 들어가는 실험을 한다. 사전 조사로 실험자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먼저 측정한 다음에 피해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게 한 실험, 물론 피해자는 연기자고 가짜 충격이었다. 그 결과가 꽤 상징적이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권위에 복종하기 쉽다는 결과였다.

 

“성격의 특정한 면들이 권위에 쉽게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 모형과 가까운 상황 안에서 불복종을 꺼려했다.” (261)

 

저자는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대표적인 유형들이진중하고 체계적인 공무원과 맞아 떨어진다고도 책에서 언급했다. 그 어떤 설명보다 많은 걸 알려준 짧은 문장이었다.

 

"좌파보다 우파가 권위에 더 복종했다"

저자의 실험은 심지어정치적 소신이 권위에 대한 복종에 영향을미친다는 걸 보여준다. 실험결과가좌파보다 우파가 권위에 더 복종했다는 데이터로 향한 것. 저자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학자들이 한 비슷한 실험을 굳이 인용한다.

 

“당시에도 우파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두드러지게 나타낸 사람들이 권위에 좀 더 잘 복종하는 것으로 나왔다.” (261)

 

그러한 복종이 우리나라를 오랫동안 끌어온 힘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긴내가 복종한 걸 보여줬으니 다른 사람들도 내가 권력을 잡으면 복종을 하겠지하는 욕망이 생기긴 하겠다.

책에서는 사람이 아닌 동물 관찰과 실험도 언급한다. 모방과 학습은 사람과 동물들 모두에게서 볼 수 있는 사회화 방법이라며. 그중 일본원숭이 무리를 관찰한 기록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암컷이 흙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자 다른 암컷들이 따라 했고, 어린 개체들이 따라 하더니 성체 수컷들까지 따라 했다는. 그렇지만 늙은 원숭이들은 끝내 따라 하지 않았다고.

한국 사회를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권위를 앞세우고 복종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옛것에 얽매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한국이다. 그런 한국 사회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생각해본다. 책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렌즈이기도 하지만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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