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슬로바키아] 최초 여성대통령 탄생...국민들이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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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슬로바키아] 최초 여성대통령 탄생...국민들이 바라는 것
  • 안소현 슬로바키아 통신원
  • 승인 2019.05.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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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외한 환경운동가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선거 혁명`
정치권 부패 취재하던 저널리스트 암살 사건 `도화선`
부패한 기성정치에 `염증`...정치개혁 이룰지 관심
안소현 통신원
안소현 통신원

[오피니언뉴스=안소현 슬로바키아 통신원] 지난 3월 30일 슬로바키아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데는 부패한 정치가 원인이었고, 지난해 이와 관련되어 충격적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 얀 쿠치악(Ján Kuciak) 사건

2018년 2월 21일 슬로바키아에서 `얀 쿠치악`이라는 저널리스트가 그의 약혼녀(Martina Kušnírová)와 함께 집에서 총으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얀 쿠치악은 한 뉴스 사이트의 리포터로 일하며 탈세 사건을 취재 중이었다 이 사건에는 전 총리인 로베르트 피초(Robert Fico) 등 정치권 인사들과 이탈리아 마피아가 연관되어 있었다. 얀 쿠치악은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됐다. 

괴한들에게 피살당한 저널리스트 얀 쿠치악과 그의 약혼녀.
슬로바키아 국민들이 괴한들에게 피살당한 저널리스트 얀 쿠치악과 그의 약혼녀를 추모하는 모습.

젊은 언론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슬로바키아 국민들은 같은 해 3월 시위를 벌였다. 이는 수도인 브라티슬라바뿐만 아니라 슬로바키아 전역에서 일어났는데, 로베르트 피초 총리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현지 언론은 시위의 참여인원을 수도에서만 약 6만 명으로 추산했다. 그리고 국내 언론을 비롯해 해외 언론들까지 1898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일어났던 벨벳혁명 이후, 혹은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몰락한 이후 30년 만에 일어난 최대 규모의 시위라고 언급했다. 정부를 향한 시위는 매년 2월 21일 브라티슬라바를 비롯한 슬로바키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 최연소·최초 여성 대통령이 된 환경운동가 변호사

주자나 차푸토바는 코메니우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환경 변호사로 활동했다. 2016년엔 환경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자신의 거주지인 펜지옥(Penziok)이라는 지역에 몰려드는 쓰레기들, 계속해서 생겨나는 쓰레기 처리장, 그리고 그로 인해 병드는 주민들을 위해 캠페인을 만들어 활동했고 승리했다.

더 나아가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은 산업문제에 맞서 싸우고 있는 다른 지역사회에 법적인 도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녀의 활동은 슬로바키아에서 시민 참여의 중요한 선례를 남겼고, 국민들이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지키도록 고무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프로그레시브 슬로바키아(Progressive Slovakia) 부대표로 입당하면서 처음 정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선거에 나서 최초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 주자나 차푸토바의 선거 캠페인 홍보물.
선거에 나서 최초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된 주자나 차푸토바의 선거 캠페인 홍보물.

◆ ‘부패한 기존의 정치는 이제 그만’ 눈을 뜬 사람들

프로그레시브 슬로바키아 당은 원내 소속 의원을 한명도 보유하지 못한 소수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친유럽적인 성격과 동성 결혼을 찬성하는 등 기존의 당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당은 2019년 결국 대통령을 배출해냈다. 주자나 차푸토바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4월에 실시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14.4%의 지지율로 2위를 차지했다.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오랫동안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자리를 유지해온 당은 1999년 창당된 Smer-SD 당이다. 이 정당은 중도좌파 정당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고, 2018년 기준 49개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당 대표인 로베르트 피초 전 총리를 앞세워 엄청난 지지를 받았지만, 얀 쿠치악 사건 이후로 이탈리아 마피아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줬다.

슬로바키아의 정당들은 이들 두 정당을 제외하고는 주로 극우적인 성격이거나 극단적으로 신나치주의(네오나치즘) 성격을 띠고 있다. 때문에 집권당을 중심으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Smer-SD당의 지지율은 19.7%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오랫동안 변화도, 균형도 없이 이어져온 슬로바키아의 꽉 막힌 정치체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정치경력이 전무한 후보임에도 주자나 차푸토바의 후보 지지율은 2월말 20%대 후반에서 시작해 1차 투표에서는 40.5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과반의 투표율을 넘기지 못해 2차 투표까지 갔지만 1차 투표에서 정치계 거물로 유명한 Smer-SD당 소속 EU 집행위 부위원장인 마로쉬 쉐프초비치(Maroš Šefčovič) 후보자의 19% 득표율과 비교하면, 부패한 기성 정치를 향한 불만을 해소해주길 바라는 국민들의 강렬한 욕구를 확인할 수 있다.

기성 정치에 지친 국민들은 2019년 6월 15일부터 시작될 새 정권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보내고 있다. 슬로바키아 국회가 더 성숙하고 발전하는 사회를 위한 다양한 가치 판단을 제시할 때가 온 것이다. 

 

● 안소현 슬로바키아 통신원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체코•슬로바키아어학과 재학중이며, KOTRA 브라티슬라바 무역관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있다. 슬로바키아를 시작으로 더 많은 나라를 경험하고 이해해 생각이 큰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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