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한 칼럼] 의학의 발달: 인공호흡기가 가져 온 윤리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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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한 칼럼] 의학의 발달: 인공호흡기가 가져 온 윤리적 딜레마
  •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 승인 2019.05.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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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압식 강철폐 인공호흡기→양압식 인공호흡기 발전...생명연장 의료기기 `대명사`
`심장·호흡 뛰는데 뇌는 사망` 사례 발견→`뇌사 판정` 기준제정과 윤리논쟁 불붙어
`생명 살리는` 의학, 연명치료 중단하는 의학으로...`사회 유지 위해 불가피한` 시대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서울아산병원 교수

[김장한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교수] 사람은 숨을 쉬지 않으면 죽게 된다.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을 보면 ‘숨을 쉬지 않는다’라고 한다. 인공호흡기(artificial ventilator)는 말 그대로 호흡을 인공적으로 해 주는 기계다. 호흡을 위한 흉곽 근육이 마비되거나 호흡 중추에 문제가 생긴 경우에 호흡을 도와주면, 질병의 경과에 따라 환자가 회복할 수 있다.

◆ '강철 폐'로 불렸던 인공호흡기

최초의 인공호흡기는 1930년에서 1950년대 사이에 주로 사용됐는데, 강철 폐(Iron lung)라고 불렀다. 커다란 강철 탱크에 목만 밖으로 내놓은 상태로 옷을 벗고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강철 탱크 내부가 음압돼(내부 압력보다 외부 압력이 낮음) 흉곽 근육을 움직이게 했다. 물론 밀폐를 유지하면서 음압을 발생하는 것과 호흡 패턴에 맞추어 음압을 주었다 뺐다 하는 게 어려웠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흉부에 거북 껍질같은 갑옷(Cuirass)을 붙이는 이동식 인공호흡기도 개발됐다.

2차 세계대전에 군진의학(군인에 대한 의학)의 발달로 높은 고도로 올라간 전투기 조종사에게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마스크가 개발됐고, 관을 삽입해 공기를 펌핑하고 폐를 확장시키는 양압의 인공호흡기 등 발명이 잇따랐다. 마취 기술을 이에 더해 1949년 미국에서 마취 인공 호흡기가 등장했다. 이를 활용해 환자 호흡을 조절함으로써 수술이 더 간단해졌다.

1864년 알프레드 존스가 세계 최초로 특허를 낸 `강철 폐` 스케치.

인공호흡기는 전쟁터에서 출혈과 쇼크로 인해 빈사 직전에 처한 병사들의 생명을 구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의학 현상을 발견하게 됐는데,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일부 환자에서 호흡과 심박동이 있는데도 뇌 반사 및 전기적 활동은 관찰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의학적 처치를 해도 이후 2주일 정도가 지나면 환자의 심박동은 멈췄고, 사후 부검에서는 심정지 시기에 맞지 않는 광범위한 뇌 괴사가 관찰되기도 했다. 
 

◆ 뇌사를 둘러싼 논란들
이런 발견은 1968년 하버드 의대 특별위원회에서 뇌사 판정 기준을 제정하는 과학적 기초로 작용, 미국에서 최초로 심장 이식이 시작됐다. 

기존의 사망 기준은 심박동이나 호흡을 기준으로 했는데, 이는 일반인이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망 판단이었다. 하지만 뇌사 판정은 환자가 입원한 중환자실에서 의사에 의해 이뤄졌고, 수치를 기록하도록 했다. 그리고 뇌사 판정후 장기 이식을 위해 뇌사자의 몸을 해부했다. 

▲'뇌사가 진정한 죽음일까, 혹시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 ▲그리고 '판정에 오류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행위자에 대한 의심, ▲나아가 '인간의 생명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철학적 의문 등 다양한 논의주제들이 나타났다. 뇌사에 반대하는 견해도 제기됐다.

심장이 뛰는 붉은 빛이 도는 뺨을 가진 사람더러 죽었다고 주장하는 뇌사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감정, 뇌의 사망 판정 구조, 판정 기준의 불완전성을 주장하는 의학적 반론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주목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뇌사를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기 이식을 위한 특별한 사망 기준으로서의 뇌사는 살인죄의 위법성 조각 사유가 될 뿐. 일반적인 심박동, 호흡 중지와 같은 기준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뇌사 판정을 받지 못한 환자들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 인공호흡기를 뗄 권리, 누구에게 있나

1975년 4월 미국 뉴저지에 거주하던 21세의 카렌 퀸란은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어울리던 중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급차가 와서 응급 구조처치를 하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 호흡기를 달았지만, 그녀의 뇌는 손상을 받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지 5개월이 지면서, 카렌의 가족들은 인공호흡기를 얼마나 오래 달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됐다. 

병원은 카렌을 `지속적 식물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로 진단했다. 가족들은 카렌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의료진의 판단은 달랐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호흡이 멈춰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만, 제거하지 않으면 매우 낮은 확률이더라도 의식을 회복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경우에 사망할 확률도, 제거하지 않을 경우에 의식을 회복할 확률도 모두 가정적인 것이었다. 병원 측은 생존할 확률이 100만분의 1일지라도 이를 위해 인공호흡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카톨릭은 1957년 교황 비오 12세가 "카톨릭 신자는 연명을 위한 특별한(extraordinary) 수단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는데, 인공호흡기는 그런 특별한 수단의 대표적 예에 해당됐다.

1976년 1월 미국 뉴저지 최고법원은 "헌법상 프라이버시권에 기초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전원 일치 판결을 내린다. 이후 10년동안 미국내 큰 병원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병원윤리위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위원회가 얼마나 이같은 문제를 다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지는 지금도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지난 2003년 1월 프로복싱 경기후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진 최요삼 WBC 플라이급 챔피언. 서울아산병원은 일주일여만에 뇌사판정위원회를 열고, 뇌사 판정을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2003년 1월 프로복싱 경기후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진 최요삼 WBC 플라이급 챔피언. 서울아산병원은 일주일여만에 뇌사판정위원회를 열고, 뇌사 판정을 내렸다. 사진= 연합뉴스

◆ '생명연장 의술'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나

인공호흡기는 인간의 생명을 극적으로 구해준 놀라운 의료기기였다. 급성기 환자의 호흡을 인공적으로 일시 도와주면, 환자는 자신의 생명력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나타나기도 했다. 생명 연장이 가능해지자, 얼마나 연장되어야 할지 기준이 필요했으며, 뇌사나 `지속적 식물상태`와 같은 새로운 현상도 발견된 것이다. 

과거의 의학은 `환자를 얼마나 살릴 것인가`를 위해 의학을 연구했지만, 현대 의학은 선진국에서 이미 인간의 잠재적인 수명에 인접할 때까지 살게 해준다.

살고 싶다는 욕망을 어떻게 개인에게 `버리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는 그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모든 일에 명암이 있듯 의학의 발달은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들을 파생시켰다. 현대 의학은 생명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새로운 형태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제 의학에서 가치가 중요한 요소를 이루는 까닭은 현대 의학에서는 사용 가능한 모든 의료 수단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선험적 판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료를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해야 한다는 문제는 개인이나 사회에는 윤리적 딜레마로 나타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명제로 나타난다. 언급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엄연한 현실이라서 화두를 던져 본다.

●김장한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서울아산병원 교수(박사)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를 졸업하고 양 대학원을 모두 졸업했다. 세부 전공은 법의학과 사회의학이다.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의료법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촉탁의사, 대검찰청 법의학 자문의사로도 활동중이다. 칼럼을 통해 의학과 관련한 역사, 예술, 윤리, 법, 제도, 정책 주변 이야기를 통섭적으로 다뤄보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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