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약물, 군중을 통제하려는 자본주의의 숨겨진 얼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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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약물, 군중을 통제하려는 자본주의의 숨겨진 얼굴인가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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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법학자 로랑 드 쉬테르의 『마취의 시대』 리뷰
마취의 역사를 통해 본 자본주의의 두 얼굴
'마취의 시대'  루아크펴냄
'마취의 시대' 루아크펴냄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마취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가족 중에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있어서 대화에 공통 관심사로 꺼내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는 뒤표지와 책날개에 적힌 요약이나 추천사를 읽고 골랐는데 이 책은 그러질 않았다. 그런데 내가 예상한 의학이나 과학이 아닌 애매한 장르의 책이었다. 최소한 부제나 원제를 읽었어야 했다.

마취의 역사를 통해 본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라는 부제를 보니 자본주의가 주제였다. 마취는 소재였고. 원제 또한 Narcocapitalism, 사전에 등록된 단어는 아니지만 분명 자본주의를 얘기하고 있었다. 저자인 로랑 드 쉬테르(Laurent de Sutter)’는 벨기에의 법이론과 법사회학을 공부한 학자다. 현재 브뤼셀 브리예 대학교에서 법이론을 강의하며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마취의 시대'는 사람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물이 현대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담고 있다. 다소 얇은 책이지만 주장하는 깊이에 비해 설명이 어려운 탓에 쉽사리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다.

 

국소마취제였던 코카인, 각성제로 쓰이게 되다

저자는 의학 역사에 획을 그었던 약물들의 탄생을 설명한다. ‘'에테르흡입 기술로 환자를 재울 수 있게 되며 인간의 고통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은 게 그 시작이다. 조울증 치료제 개발로 환자의 흥분우울증등 정신 장애도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의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품 개발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코카인이 탄생했다.

국소 마취제로 발명된 코카인에서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효능도 발견되어 각성제 등 각종 치료제로 이용된다. 코카인은 산업경제에도 활력소로 작용을 하며 현대 의약품 산업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이런 명성에 힘입어 코카인이 함유된 음료 토닉 와인코카콜라가 탄생했고 더 강한 활력의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겨냥해 불법 마약이 크게 퍼진다. 결과적으로 코카인 덕분에 의약품 산업뿐 아니라 마약 밀거래 경제까지 활성화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코카인이 주는 이런 활력이 가짜일 뿐이고 사실은 망각일뿐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코카인 등에 의한 육체와 정신의 마취는 고통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계속 존재하지만 고통을 모르도록 망각시킬 뿐이라는 것.

저자는 이런 마취의 속성이 정치와 경제의 수단으로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으로도 이용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자본주의는 곳곳이 마취된 나르코 자본주의(Narcocapitalism)”라며. 접두사 narco는 마비, 마취, 최면 혹은 마약 등을 의미한다. 수면 상태의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현재의 질서 안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일에 방해되는 모든 것으로 벗어나기 위해 약물의 힘을 빌려 빠지는 강제적인 수면인 것 말이다.” (57)

 

오늘날 사람이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혹은 한 부분에 기능하는 부품으로서만 존재한다고 비판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그곳에 꼭 있어야 하는 부품으로서. 그러니 일과 외의 잉여시간이 다음날 노동에 방해되면 안 되었다.

 

산업 자본주의에 필요한 것은 잠을 잘 자는 사람, 그래서 다음 날에도 순조롭게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64쪽)

 

이런 목적에서 노동과 생활에 지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수면제를, 밤에 잠 못 이루고 일에 집중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각성제를 권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진단한다. 급증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항우울제의 힘으로 일터에 복귀하게도 만들었고.

 

저자는 약물들에 작용하는 공권력의 역할을 의심한다.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약물을 이용하거나 최소한 오남용하도록 외면하는게 아닐까. 사진=pixabay
저자는 약물들에 작용하는 공권력의 역할을 의심한다.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약물을 이용하거나 최소한 오남용하도록 외면하는게 아닐까. 사진=pixabay

약물 오남용의 배후에 공권력이 있다면

저자는 이런 약물들에 작용하는 공권력의 역할을 의심한다.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약물을 이용하거나 최소한 오남용하도록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약물이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신체적으로는 호전이 아닌 그냥 화학작용일뿐이고 오히려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마약 확산도 어느 정도는 공권력이 방관했거나 목적에 의해 통제 혹은 관리를 해온 건 아닌가 의심한다.

 

코카인 매매의 역사는 어떤 제한이나 규정도 코카인에 맞설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런 게 있어봤자 전혀 통하지 않으니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54)

 

리처드 닉슨1971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당시 그것이 가망 없는 싸움이란 걸 잘 알았다고 고백한 사실을 인용한다. 싸울 의지는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그런 저자의 의심을 나이트클럽의 변천을 들어 은유한다. 원래는 일과 후에 (night)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 가입자들이 조합 활동을 위해 모이는 장소(club)였다고. 당연히 공권력 관점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곳이었다. 그들에게 대중은 통제해야 할 그 무엇이었고 일터가 아닌 곳에 모인 사람들은 위험한 그 무엇이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나이트클럽은 술과 마약으로 세상을 잊게 만들고 타락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다. 세상이 무료해서 새로운 자극을 찾거나 세상에서 쌓인 것을 발산시키려는 그들끼리 모이는 그런 곳(club)’이 된 것.

근대 사회학에서 군중(crowd)’모이면 흥분하고, 흥분하면 밖으로 발산할 위험이 있다고 봤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타르드는 함께 모여 공동 관심사를 위해 노력하는 공중(public)’으로 봤다. 공권력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통제 혹은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을 대중(mass)으로 부르는 것에 저자는 주목한다. 사람들을 덩어리를 의미하기도 하는 매스(mass)’로 규정하며 인간을 기능으로만 보는 자본주의적 시각을 비판한 것이다.

인간을 개개인이 아닌 그냥 ()덩어리로 본다면 쉽게 다루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다른 데 돌리기 위해서라도 약물의 오남용을 방관 혹은 목적을 가지고 통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환자를 위한 육체적인 마취로 출발했지만, 점차 신경계에 작용하는 정신의 마취로. 더 나아가 흥분하기 쉬운 군중을 재우는 통제의 마취가 만연했다는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렇지만 저자의 깊은 성찰을 담은 행간을 정확히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다만 약물이 넘치는 세상이기에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연예인과 특권층들의 마약 범죄 소식이 넘쳐서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려울 정도이고, 잠을 못 자서, 불안해서, 우울해서 약을 먹는다는 지인이 흔한 사실에서. 예전처럼 쉬쉬하지 않기 때문에 약을 접하기 쉬운 세상이 된 건 확실하니까.

저자의 행간, 내가 해석하는 행간은 이렇다. 수술대 위에 덩어리(mass)처럼 누워있기를 거부하자고.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기에 깨어있자고. 약의 도움을 받기 쉬운 세상이지만 우리의 정신만큼은 잠들지 말자고.

로라 드 쉬테르 교수. 사진=유튜브 캡쳐
로랑 드 쉬테르 교수. 사진=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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