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 칼럼] 일본 민주공화제 실패로 본 우리나라 민주공화제
상태바
[채진원 칼럼] 일본 민주공화제 실패로 본 우리나라 민주공화제
  • 채진원 경희대 교수
  • 승인 2019.04.20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채진원 경희대 교수]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한반도에서 남북 모두가 촛불시민혁명에 부합하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 이런 무거운 질문들을 던지는 이유는 최근 전개되는 우리 정세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1일은 대한민국의 기원이 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에 대통령은 기념식 참석을 마다하고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미를 할 만큼, 우리 상황이 급박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민족의 이익' 운운하며 '촉진자'를 부정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언설을 듣고 있노라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씁쓸함과 분노감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따져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100돌을 맞았지만 민주공화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미완의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그렇다면 미완의 민주공화국 완성을 위한 시급한 과제란 무엇일까?

지난 4월 9일 제14회 국무회의 당시 문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어 매우 아쉽다”며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온 국민과 함께 벅찬 가슴으로 기념하며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끝내고 앞으로 100년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새로운 국가의 토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난 100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친일잔재의 청산’임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3·1절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친일잔재 청산’은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히로히토 일본천황(오른쪽)과 제너럴 포드 미 대통령이 사열하고 있는 모습.
히로히토 일본천황(오른쪽)과 제너럴 포드 미 대통령이 사열하고 있는 모습.

 

친일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북한 김씨일가, 박정희 세력, NL운동권이 어떻게 친일청산에 실패했는지를 추적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일본이 어떻게 동북아 3국중 가장 먼저 ‘민주공화제 건설’을 포기하는 대신에 `천황제(수령제) 민족주의국가`로 가장 먼저 갔을까. 그리고 북한 김씨일가, 박정희세력, NL운동권들이 어떻게 일본의 `천황제(수령제)민족주의`를 변형, 답습했는가.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친일청산이 단순한 인적청산을 넘어서 체제와 제도 및 문화의 개혁 문제이기 때문이다.

日 천황제 민족주의, 북한과 한국에도 변형 적용돼 

일본의 주자학 극복운동으로서 민족주의운동을 살펴보면, 한국과 북한의 한계를 조금은 추론할 수 있다.

일본 정치사상계의 거두인 마루야마 마사오 선생은 일본에서 중국 주자학 풍조가 어떻게 깨지고 약화되어, 문학과 국학 및 민족주의 사조로 나아갔는지를 《일본정치사상사연구》를 통해 밝혔다.

마루야마 선생은 오규 소라이에 의해 주자학에서 말하는 `성인군자의 도`는 결국 천하를 평온케 하는 정치체제와 제도로서의 문명과 문물을 창조한 ‘성현’으로 귀착되어 문물과 제도를 창조한 3황 5제급의 대정치가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즉, 성인은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문물과 제도를 만든 `성현` 즉 정치가로서 군주같은 인물로 귀착된다. 주자학의 인격수양론은 부정된다. 오규 소라이는 학자들은 제발 성인군자가 되려고 수양하는 헛된 시간낭비를 말고, 성현 정치가의 도를 후세에게 잘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당연 정치가는 군주와 같은 성현의 도를 배워 현실에서 적절하게 적용해 실천하면 된다고 본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한발 더 나아간다. 모토오리는 정치가로서 군주성현의 역할, 공사의 확실한 구분에서 더 나아가 `마음의 사적 영역`을 공적영역보다 더 위에 두어 개인의 마음을 더 우월한 것으로 강조하는 `새로운 도`를 주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주자학에서 억제되었던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문학이라는 장르가 개척됐다. 또 중국의 주자학보다 일본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와 그의 자손인 천황으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찾는 `국학운동과 천황제민족주의운동`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치유신의 ‘천황민족국가주의운동’으로 이어졌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국학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은, 일종의 ‘천황제(수령)민족주의’를 지향했다. 일본은 혈통적으로 거대한 하나의 가족이고, 그 정점에는 아마테라스의 후손인 천황이 있다는 논리구조를 갖는다.

일본의 천황제민족주의는 시민들이 자유와 평등의 시민권을 갖는 견제와 균형의 민주공화국을 포기했기에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패전 후 맥아더 사령부의 압력에 의해 전범체제인 재벌을 해체하면서도 민족분열만은 피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천황제민족주의`를 유지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결국, 천황제를 대신해 시민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민주공화제를 수립하려는 맥아더의 계획은 실패했다. 
 
맥아더의 이런 실패는 고스란히 북한과 한국에 악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일본의 천황제민족주의를 수용해 김씨일가의 `수령제민족주의`로 변형했고, 한국은 `박정희식 민족주의`로 바꿔 독재를 일삼았다.

1980년대 한국의 NL(민족해방·National Liberty)운동권들은, CA(제헌의회)가 주도했던 레닌주의식 교조주의 사회주의운동론(주자학적 이성론)과 `박정희식 민족주의`에 맞서 양쪽을 북한 김씨일가의 `수령제민족주의`로 바꾸려고 애썼다.

NL운동권들은 북한과의 통일을 위해 북한 김씨일가의 참주정체제(tyranny)를 전인민의 어버이로 모시는 `한민족 대가족주의`로 정당화하려고 애썼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첫해 원년 요인들이 기념촬영했다. 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도산 안창호 선생. 사진 자료= 연합뉴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첫해 원년 요인들이 기념촬영했다. 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도산 안창호 선생. 사진 자료= 연합뉴스

 

민족주의 대신 공화주의 정치제도 마련돼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었지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민주공화국 완성을 위해서는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일이 시급하다. 여전히 우리 내부와 주변에 존재하는 `천황제(수령)민족주의`의 잔재를 일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민족주의 애국심과 공화주의 애국심을 구분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치학자 비롤리는 <나라사랑론>에서 공화주의 애국심을 “민중(people)의 공동의 자유를 지탱하는 정치제도들과 생활양식에 대한 사랑” 즉, “공화국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했다. 그는 공화주의의 적(敵)이 `참주정과 전제정, 억압과 부패`라면, 민족주의의 적은 `문화적 오염과 이질성, 인종적 비순수성, 사회적·정치적·지적 분열`이라고 구분한다.

민족주의가 동질적인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과 충성을 가리킨다면, 공화주의 애국심은 우리 모두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정치제도들에 대한 ‘조건적’ 사랑을 뜻한다고 구분한다.

● 채진원 교수는 비교정치학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노무현의 민주주의(공저)」,「정당정치의 변화, 왜 어디로(공저)」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