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⑦ ‘닷컴 버블’ 절정…코스닥시장 '리타워텍'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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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⑦ ‘닷컴 버블’ 절정…코스닥시장 '리타워텍'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4.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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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워테크놀러지는 ‘닷컴 버블’ 당시 3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2001년 3월 열린 리타워텍 주주총회. 사진=MBC보도화면
리타워테크놀러지는 ‘닷컴 버블’ 당시 3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2001년 3월 열린 리타워텍 주주총회. 사진=MBC보도화면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코스닥시장은 1987년 4월 출범한 주식장외시장을 모태로 한다. 앞서 정부는 1986년 12월 자본금 규모가 작은 벤처·중소기업들이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 금융을 조달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등의 주식거래 활성화를 위한 시장조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증권업협회 주관으로 기존 증권거래소 시장과 별개로 주식장외시장 개설을 추진한 것이다. 마침내 1996년 5월 증권업협회와 증권회사들이 출자해 코스닥증권을 설립했고 7월부터 코스닥시장 업무가 개시됐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기도 전인 1997년 12월 한국은 ‘IMF 외환위기’ 시대를 맞이했다. 다행히 정부와 기업, 국민들의 노력으로 4년 만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그 여파는 금세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시세차익을 얻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불공정거래가 증가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진=SBS 보도화면
1996년 5월 증권업협회와 증권회사들이 출자해 코스닥증권을 설립했고 7월부터 코스닥시장 업무가 개시됐다. 사진=SBS 보도화면

◆ IMF 외환위기 이후 코스닥시장 열풍

IMF 외환위기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국내증시에는 미국발(發) 나스닥 열풍이 한창이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그간 외면 받고 있었던 코스닥시장으로 향했다. 한때 거래량 기준으로 거래소 시장을 추월할 정도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 들어 PC·인터넷이 보편화되자 인터넷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닷컴’ 기업에 대한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종목명에 ‘닷컴’이라는 이름이 붙기만 해도 주가가 수배에서 수십 배까지 올라 사명을 변경하는 상장사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골드뱅크, 한글과컴퓨터, 새롬기술 등이 코스닥 광풍의 주역들이었다.

이 가운데 리타워테크놀러지(리타워텍)는 ‘34일 연속 상한가’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끈 곳이다. 리타워텍 회장이었던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최모씨는 1999년 6월호 포츈(Fortune)지 표지모델을 장식할 만큼 기업 인수 후 개발(A&D·Acquisition&Development) 투자의 귀재로 명성이 높았다. A&D는 직접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 필요한 기술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기존 자사 제품과 통일시키거나 재포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씨는 1997년 홍콩에서 리타워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한 뒤 공격적인 인수 합병으로 여러 개의 정보기술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1999년 6월에는 4개 자회사를 통합한 인터넷 사업체인 아시아넷을 세웠고 이듬해 3월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기도 했다. 

리타워텍의 전신인 파워텍은 보일러 송풍기 제조업체로 1988년 한국기술투자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2000년 1월 최씨가 회장으로 있는 리타워 스트레티직스는 파워텍의 경영권을 양도 받아 6월 사명을 리타워텍으로 변경, 비즈니스 테크놀러지 및 기업간거래(B2B) 토탈 솔루션 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반년 남짓한 기간 동안 최씨는 스무 개가 넘는 벤처기업을 인수하면서 회사 몸집을 부풀렸다.

리타워텍은 2000년 매출액은 23억원, 영업손실 29억원, 당기순손실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사진=MBC 보도화면

◆ 2000년 매출 23억원에 당기순손실 1조5000억원

그러나 최씨는 정작 현금을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인수하려는 벤처기업 소유주에게 회사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리타워텍의 지분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비상장사인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주식 맞교환(Stock Swap)이 금지됐기 때문에 리타워텍이 벤처기업의 주식을 매수하고 동시에 벤처기업의 소유주가 이 매도 자금을 받아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의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리타워텍 입장에서는 현금없이 유망한 벤처기업 경영권을 확보하는 한편 자사 주식수도 늘리는 만큼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벤처기업 소유주는 당시 가장 주목받는 상장사의 주식을 받는 걸로 만족할 수 있었다. 리타워텍은 벤처기업 소유주가 주식 매도 대금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소유주의 통장까지 관리하기도 했다.

리타워텍 주가는 벤처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폭등했다. 최씨가 회사를 인수한 2000년 1월 31일 주가는 2240원이었으나 이후 3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 2000년 5월 18일에는 32만5500원으로 치솟았다. 4개월 만에 주가가 140배 넘게 상승한 것이다. 

리타워텍의 벤처기업 인수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절정을 이룬 건 2000년 7월 아시아넷을 인수할 때였다. 당시 아시아넷과 리타워텍은 합병비율을 7대 1로 는 주식 맞교환을 통한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하지만 주식 맞교환이 불가능했던 만큼 리타워텍은 1조4000억원이라는 초단기 자금이 필요했다. 결국 외국계 투자은행인 리만브라더스로부터 3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 자금을 차입해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리타워텍이 당시 리만브라더스에 지불한 이자만 44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리타워텍의 인수합병(M&A) 방식은 주가가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만 유효하다는 점이었다. 그간 인수합병으로 주가를 끌어올렸으나 인수합병 재료가 떨어지자 리타워텍 주가는 상승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기에 실적 부진과 코스닥시장 ‘닷컴 버블’의 소멸, 보호예수를 설정하지 않은 아시아넷 주주들의 매도 물량 출회 등이 겹치면서 주가 하락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리타워텍 2000년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은 23억원에 불과했으나 당기순손실은 1조5000억원에 달했다. 

리타워텍은 2000년 12월 장 마감일 3440원까지 폭락했다. 이후 2003년 3월 28일 상장폐지를 선고받은 뒤 같은해 4월 10일 20원이라는 가격에 정리매매됐다.

◆ 대출을 해외투자자금으로 둔갑...'시세조종'

이같은 리타워텍의 수상한 주가 움직임은 한 경제지의 지속적인 취재로 꼬리가 잡혔다. 리타워텍 공시 및 시세조작 의혹이 2000년 10월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금융감독원은 같은 달 금융투자협회(옛 증권업협회)로부터 리타워텍의 시세조종 혐의를 통보받고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코스닥시장 관리 감독은 거래소가 아닌 금융투자협회의 전신인 증권업협회가 담당했었다. 

금감원의 조사결과 최씨를 비롯해 리타워텍 대표이사 허씨 등은 주식 맞교환 방식을 통한 인수합병을 위해 시세조종을 시도했다.

아시아넷 인수 과정에서 리만브라더스와의 초단기 자금 차입에 대해 실질적인 용도를 언급하지 않고 대규모 해외자금 유치계획을 발표해 투자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즉 리먼브라더스로부터 단 3시간동안 10억달러 규모 대출을 받아 놓고 이를 해외 투자자금유치로 둔갑해 공시했던 것이다.

리타워텍과 리먼브라더스가 3시간동안 대출을 선택한 것은 한국과 미국간 시차를 감안해 한국시간으로 밤 11시에 입금받고 이틀날 새벽 2시에 이자와 함께 대출금 10억달러를 리먼브라더스 계좌로 갚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일자 계산으로 하루 넘게 한국 계좌에 자금이 들어와 있으면 해외자금유치로 승인해 줬다. 이를 토대로 리타워텍은 가짜 공시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리타워텍 경영진은 동원증권 직원 등 몇몇 사람에게 시세조종을 부탁하기도 했다.

더불어 아시아넷 인수 시 발행되는 신주에 대해 실제 보호예수를 하지 않았으나 금감원에 제출한 유가증권신고서에는 보호예수를 한 것처럼 기재했다. 당시 이 유가증권신고서의 기타위험요소 항목에는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되는 주식은 기존의 제3자 배정 방식처럼 전체 발행주식에 대해 보호예수를 시키지는 않고 인수계약에 의거 80%를 6개월간 보호예수시킨다’고 기재돼있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보호예수분의 조기 매물 출회로 인한 주가하락 위험성에 대해 인지할 수 없었다. 증권거래법 상의 유가증권신고서 제출의무 위반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 해외로 출국한 최씨…기소중지

금감원은 2001년 2월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최씨와 허씨를 시세조종 혐의 및 유가증권신고서 제출의무 위반 등으로 수사기관에 통보 조치했다. 검찰은 허씨에 대해서 2001년 3월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미 해외로 출국한 최씨에 대해서는 기소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약 2년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허씨에 대해 유가증권신고서 제출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시세조종 혐의에는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리타워텍과 경영진은 주가조작의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장·허위 공시로 인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만큼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일반 투자자뿐 아니라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신주를 부여받은 벤처기업인들 역시 1년간의 보호예수로 인하여 큰 손해를 입었다.

유일하게 이득을 본 집단은 발행 신주에 대해 보호예수를 부여받지 않아 주가가 높게 형성됐을 때 주식을 매도한 아시아넷의 일부 구주주들과 매도 타이밍을 잘 잡은 소수의 일반투자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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