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소년 전락 '박삼구', 예견됐던 '금호아시아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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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소년 전락 '박삼구', 예견됐던 '금호아시아나' 위기
  • 박대웅 기자
  • 승인 2019.04.12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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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실패 때마다 채권단에 전가
악수된 무리한 M&A
금융당국마저 드러내놓고 '불신'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취임 후 아시아나항공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사진=연합뉴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매각 위기를 맞았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내놓은 아시아나항공 자구계획에 대해 채권단이 사실상 '수용 불가' 의사를 밝혔다. 채권단은 박삼구 전 회장 일가의 사재 출연 등 보다 강도 높은 자구책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 채권단을 만족할 자구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매각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아시아나 위기의 시작점, '기내식 대란'?

금호아시아나의 과도한 채무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해 7월 터진 이른바 '기내식 대란'이다.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아시아나항공의 무리한 경영판단이 '기내식 대란'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납품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기존 계약업체였던 LGS에 "재계약을 원하면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원치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금호홀딩스는 아시아나항공의 지주회사다.

LSG는 이 제안을 거부했고, 아시아나항공은 다른 기내식 납품업체인 게이트고메코리아와 손 잡았다. 게이트고메코리아의 모회사인 중국의 하이난항공그룹은 금호홀딩스의 BW를 인수했다. 문제는 지난해 3월 게이트고메코리아 생산공장에서 불이 나면서 불거졌다. 아시아나항공은 급한 대로 2016년 설립한 중소기업 샤프도앤코와 3개월짜리 단기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샤프도앤코는 하루 2만5000인분인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고, 기내식 대란으로 이어졌다. 샤프도앤코가 소화할 수 있는 기내식 분량은 하루 3000인분 정도다. 당시 항공업계는 "예견된 참사"라고 입을 모았다. 이후 '기내식 대란'의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700%가 넘는 부채비율이 도마 위에 올랐고, 채권단은 심층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해 말부터 실사를 진행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 했던 박삼구 전 회장의 경영철학이 부메랑이 돼 그룹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 했던 박삼구 전 회장의 경영철학이 부메랑이 돼 그룹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규모의 경제 이루겠다" 부메랑이 된 경영철학

'기내식 대란'은 금호아시아나의 유동성 위기를 세간에 알린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 근원적인 위기의 시작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 했던 박 전 회장의 경영철학에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며 회사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당시 그룹은 크게 아시아나항공과 타이어 사업(당시에는 금호산업 소속) 2개의 축으로 운영됐다. IMF 외환 위기 당시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의 매출은 곤두박질했다. 1997년 약 4000억원(398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1998년에도 1414억원의 순적자를 봤다. 이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99년 1096억 순익을 내며 반등하나 싶었지만 2000년 1560억원의 순적자를 봤고, 2001년에는 3902억원의 순적자로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2002년 박삼구 전 회장은 제4대 금호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박 전 회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판을 짰다. 2003년 6월 금호산업의 타이어 사업부를 분사해 금호타이어(주)로 독립시켰다. 금호타이어는 중국 톈진 공장을 일본 브릿지스톤에 1조1000억원에 매각했다. 또 지분 50%를 군인공제회에 넘겼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공항서비스를 매각해 그룹에 자금을 보탰다. 

박 전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2004년 그룹명을 '금호'에서 '금호아시아나'로 바꾸고 외형 불리기에 돌입한다. 박 전 회장은 "2010년에는 재계 5대 그룹으로 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기준 금호아시아나의 매출은 6조8000억원(금융계열사 제외) 규모로 재계 10위 권이었다. 이후 박 전 회장은 항공·고속 등 운수 분야와 석유화학·콘도 등 기존 사업에 생명공학과 신소재, 물류사업을 추가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승자의 저주'로 남은 대우건설 인수

금호아시아나가 오늘날 겪고 있는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2005년 있었던 대우건설 인수다. 대우건설은 당시 종합시공능력 1위의 대형 건설사였다. 그룹에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박 전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를 강행한다. 그는 계열사 자금을 총동원하고 투자금융자본까지 끌어들여 모두 6조4255억원에 대우건설을 품에 안았다.(자산관리공사 소유 대우건설 지분 72% 인수) 특히 박 전 회장은 3년 이내에 대우건설 평균 주가가 기준가격을 웃돌지 못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차액을 보존해 주는 '풋백옵션'도 걸었다. 

'캐시 카우'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대우건설의 주가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세계 경기가 불안해지면서 건설업계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2008년 터진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건설 경기는 침체 일로를 걸었다. 결국 대우건설 인수로 무리하게 발행한 회사채 만기가 도래했다. 시장에서 더이상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박 전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2009년 6월 대우건설을 도로 매물로 토해냈다. 동시에 채권단과 재무구조약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금호생명을 팔았고, 이듬해 1월에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9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출한 자구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사진=연합뉴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9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제출한 자구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사진=연합뉴스

◆재기 숨통 터준 산업은행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은 부실 경영에도 박 전 회장이 재기할 수 있는 숨통을 터졌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경영권과 우선매수권을 보장해줬다. 결국 박 전 회장은 두 계열사 지분 매각으로 마련한 사재 1200억 원과 외부에서 조달한 6000억 원으로 2015년 금호산업을 되찾았다. 그룹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는 끝내 다시 품지 못했다. 금호타이어는 2014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기 직전이다. 돈만 있었다면 박 전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다시 가져오는 건 문제가 없었다. 산업은행이 부여한 '우선매수청구권'이 박 전 회장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우선매수청구권은 회사를 팔 때나 제 3자에게 경영권을 넘길 때 단 1원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써내면 다시 주식을 먼저 살 수 있는 권리다. 금호타이어를 되찾기 더 없이 좋은 기회였지만 텅빈 곳간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박 전 회장은 2017년 4월19일 우선매수청구권 행사를 포기했다. 한때 국내 타이어 업계 1위였던 금호타이어는 부도와 법정관리라는 풍파를 겪은 끝에 지난해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됐다. 

◆채권단, 금호 자구안 거부…아시아나 매각 압박

산업은행은 11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구계획을 논의한 결과 시장 신뢰를 회복하기에 미흡하다고 판단했다"며 "채권단 대부분이 부정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채권단은 박 전 회장 일가의 사재 출연이나 유상증자 같은 실질적 방안이 자구계획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금호아시아나의 요청대로 5000억원을 지원한다고 해도 앞으로 채권단의 부담이 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같은 결론을 이끌었다. 

채권단은 금호아시아나가 내논 자구안이 박 전 회장에서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으로 이어 지는 경영 승계를 위한 '시간 벌기'라고 지적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모든 걸 내려놓고 퇴진한다더니 또 3년의 기회를 달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며 "채권단의 결정 기준은 대주주의 재기가 아니라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10일 박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 전체를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고 그룹 주요 자산을 매각하는 등 자구안을 제출하면서 5000억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한바 있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의 경영 복귀는 없으며 아시나아항공이 3년 안에 정상화되지 않으면 채권단의 인수합병 시도에 토를 달지 않겠다고도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의 반응은 싸늘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시장에서 기정사실화된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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