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징역2년 확정, 총리 출신 첫 수감 '불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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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징역2년 확정, 총리 출신 첫 수감 '불명예'
  • 정리=이재윤 기자
  • 승인 2015.08.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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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8대5로 유죄 선고... 한 "판결 따르지만 인정 못해"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명숙(71)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0일 대법관 8(유죄) 대 5(일부 무죄) 의견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 의원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기소된 지 5년,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온 지 약 2년 만이다.

이에 따라 한 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잃게 됐다. 또 관련법에 따라 2년간 수감된 후에도 향후 10년간은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한 의원은 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금품수수 사건으로 실형을 확정받고 옥살이를 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검찰은 관례에 따라 신병 정리를 할 시간을 배려한 뒤 한 의원을 수감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한명숙 전 총리가 이날 오후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안경을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 양승태 대법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한 의원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2007년 3∼8월 3차례에 걸쳐 불법정치자금 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7월 기소됐다.

1심은 한 전 대표가 검찰 조사 당시 한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한 전 대표가 검찰 조사 당시 한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본 원심이 정당하다고 봤다. 

한 전 대표가 검찰 수사 당시 이미 다른 증거가 확보된 상황에서 추궁을 받아 시인한 것이 아니라, 한 의원에게 돈을 줬다고 먼저 진술한 뒤 금융자료 같은 다른 증거들을 제시했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한 전 대표가 1차 자금을 조성할 때 포함됐다고 말한 1억원 짜리 수표를 한 의원의 동생이 전세금으로 사용한 점도 한 전 대표가 검찰 조사 당시 했던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

대법원은 한 의원이 이 돈을 한 전 대표에게서 받아 동생에게 줬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신건영이 부도가 난 뒤 한 의원이 한 전 대표를 병문안 갔고, 다음날 한 전 대표가 2억원을 돌려받았으며 두 사람이 두차례 전화 통화를 한 점도 유죄 심증을 굳히는 바탕이 됐다.

대법원은 한 전 대표가 3차례 동일하게 은밀한 과정을 거쳐 자금을 조성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나머지 6억원도 제공했다는 진술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 대법관은 3억원 수수 부분은 유죄로 볼 수 있지만 6억원 부분까지 모두 유죄로 보는 것은 부당한 만큼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한명숙 "노무현으로 시작된 정치보복 한명숙에서 끝나길"... 첫 여성 총리에서 벼랑으로 

한 의원은 이날 "법원의 판결을 따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정할 수 없다.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의원은 대법원 선고 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공정해야 할 법이 정치권력에 휘둘려버리고 말았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시작된 정치보복이 한명숙에서 끝나길 빈다"고 밝혔다.

한 의원은 1979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2년간 수감된 후, 71세의 고령으로 두 번째 수감생활을 하게 됐다. 정계 입문 후 '첫 여성 국무총리'  '제1야당 당 대표' 등 화려하게 쌓아올린 타이틀도 이번 판결로 빛이 바랠 상황에 처했다.

그는 1944년 평양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월남했고, 정신여고를 졸업한 후 이화여대 불문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와 4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지만, 박 교수가 결혼 6개월여 만인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한 전 총리의 인생도 급변했다.

그는 이후 무려 13년간 매주 엽서를 보내고 옥바라지를 하면서, 자신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인 여성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1979년에는 이 모임에서 이념서적을 학습·반포한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93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선출되면서 '여성운동의 대모' 자리를 굳힌 그는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돼 정치권에 발을 들였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국민의정부 초대 여성부 장관, 참여정부 환경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지역구(고양 일산갑)에 도전, 당시 한나라당의 정치적 거물이던 홍사덕 전 의원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참여정부에서 사상 첫 여성 총리에 임명되면서 정치인생의 정점을 찍었고,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꾸며 2007년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뇌물수수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며 수난이 시작됐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첫 여성 서울시장'에 도전, 선전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 분패했다.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1월에는 당 대표로 당선되며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총선 직후 "총선에서 목표를 이루는 데 미흡했다"면서 취임 89일만에 사퇴했고, 이후 책임론에 시달려야 했다.

5년 넘게 검찰과 지루한 법정 다툼을 계속하면서, 19대 국회에서는 존재감이 지나치게 떨어졌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정 다툼이 장기간 계속되면서 한 의원이 대표직 퇴임 후 사실상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검찰과 7년 악연… 6번 재판 4번 무죄, 결국 기소 5년 만에 감옥행

검찰과 질긴 악연으로 7년째 피고인 신세로 살아온 한 의원은 6번의 재판에서 4차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마지막 고비는 끝내 넘지 못했다.

한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2009년 말 시작됐다. 당시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당시 총리였던 한 의원에게 5만 달러를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한 의원이 출석 통보에 응하지 않자 9일 만에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했다. 전직 총리가 수사기관에 강제 구인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한 의원은 2010년 4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은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2007년 3월 한 의원에게 민주당 대선 경선 비용으로 9억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것이다.

검찰은 별건 수사, 표적 수사 논란에도 한 의원을 2010년 7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다시 한 번 재판에 넘겼다. 혐의를 증명할 증거는 대한통운 사건 때처럼 공여자의 진술이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법정에서 한 의원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며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이 사건도 결국 2011년 10월 1심에서는 무죄 선고가 났다.

사건을 넘겨받은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으로 넘어간 대한통운 뇌물사건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심리를 미뤘다.

그러는 동안 한 의원은 민주통합당 당대표로 뽑혀 폭넓은 정치 행보에 나섰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다시 배지를 달았고, 2013년 3월 대법원에서 대한통운 뇌물사건에 대해 최종 무죄 확정을 받았다.

검찰은 그 해 6월 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 신청까지 감행하며 남은 정치자금법 사건에 '올인' 했다.

한 의원이 직접 돈을 받았다는 주된 공소사실이 또다시 무죄가 날 것에 대비해 2007년 3∼4월 비서를 시켜 3억원을 받아오게 했다는 내용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겠다고 요청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2013년 9월 1심을 완전히 뒤집고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했다.

4년여 간의 싸움 끝에 검찰이 얻은 첫 승리였다. 항소심 재판부가 유무죄 판단을 뒤집은 것은 1심에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한 전 대표의 검찰 조사 당시 진술을 믿을 만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한 전 대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고비마다 기사회생했던 한 의원은 결국 철장 신세를 지게 됐다.

 

역대 총리 수난사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37대 총리로 재직한 한명숙 의원은 우리나라 첫 여성 총리였다. 한 의원은 그러나 헌정 사상 최초로 실형을 사는 전직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1948년 이범석 초대 총리 취임 이후 44대 현 황교안 총리까지 역대 국무총리는 모두 40명이다.

이 가운데 14명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그 중 장면(2대·7대) 장택상(3대) 김종필(11대·31대) 박태준(32대) 이한동(33대) 한명숙(37대) 이완구(43대) 등 모두 7명이 기소됐다.

이완구 전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지난달 재판에 넘겨졌다. 충남 부여·청양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했던 2013년 4월4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총리직에 있을 당시 수사 선상에 올라 결국 취임 70일 만에 사퇴하면서 최단명 총리로 기록됐다.

이한동 전 총리는 200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SK그룹에서 불법 선거자금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종필 전 총리는 2002년 지방선거 때 삼성으로부터 채권 15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장면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 시절 군사정부 전복을 음모했다는 이른바 '이주당 사건'으로, 장택상 전 총리는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대통령 입후보 등록 방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던 박태준 전 총리는 공소가 취소됐다.

이회창(26대) 전 총리는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불린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모금 의혹과 관련해, 이해찬(36대) 전 총리는 2006년 3·1절 골프 파동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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