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왜 미국 특목고엔 흑인ㆍ히스패닉계가 적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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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리포트]왜 미국 특목고엔 흑인ㆍ히스패닉계가 적을까?
  • 뉴욕=권혜미 통신원
  • 승인 2019.04.0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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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장의 특목고 입학 시험 폐지와 인종 쿼터 도입 정책 움직임에 아시아계 반발

[뉴욕=권혜미 통신원] 미국 뉴욕타임즈는 지난 3월 18일자 1면 헤드라인에 뉴욕의 특목고의 2019년도 입시 결과를 보도하면서 '입학 정원 895명 중에 7명 만이 흑인 학생'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이 보도 이후 엘리트 공교육에서 인종 다양성을 이슈를 두고 뉴욕 교육계와 정치계에서 뜨거운 논쟁이 재점화 됐다. 

 

뉴욕의 한 특목고 입학 결과를 다룬 3월18일자 뉴욕타임즈 헤드라인 기사. 사진 캡쳐=뉴욕타임즈
뉴욕의 한 특목고 입학 결과를 다룬 3월18일자 뉴욕타임즈 헤드라인 기사. 사진 캡쳐=뉴욕타임즈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뉴욕시 전체 학생 중 흑인과 히스패닉의 비율이 거의 70%에 달하지만 8개 뉴욕 특목고 중에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스타이브센트(Stuyvesant) 고등학교의 흑인 합격자는 전체 895명 중 7명에 불과했다. 이는 2018년 10명과 2017년 13명 보다 줄어든 수치다.  

또 이 학교에 히스패닉계는 33명이 합격한 반면 뉴욕시 전체 학생 중 16% 인 아시아계 합격자는 전제 895명 정원 중 587명으로 거의 66%를 차지했다. 인구 중 15%를 구성하는 백인계는 194명이 합격했다. 

한 고등학교의 입시 결과가 이렇게 크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2018년 6월 빌 드 블라지오 뉴욕시장이 제안한 새로운 뉴욕시 8개 특목고 입시안 때문이다.

◆ 아시아계, 뉴욕시장 공교육 개혁안에 반발

공교육 개혁을 주창해온 드 블라지오 시장은 그동안 유일한 선발 기준인 수학 영어 위주의 특수 고등학교 입학 시험 (SHSAT)를 없애고, 다양한 입학 사정 방식에 따라 각각의 공립 중학교 상위 7%를 특목고로 보내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 수를 높이자는 안을 제시했다. 이에 아시아계 학부모 단체 정치인 그리고 특목고 졸업생 동문회가 크게 반발하면서 특목고의 인종 다양성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현재 뉴욕 시에는 8개의 공립 특목고가 있다. 웬만한 국가 보다 많은 14명의 노벨상과 필드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들 뉴욕의 명문고는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가는 입장권으로 여겨진다. 지원한 중학생 중 4%정도만 합격하는 치열한 경쟁률로 인해 하버드대학보다 더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지곤 한다.

1971년에 마련된 뉴욕 주 의회 해쳇-카랜드라 법(Hecht-Caladra Act)에 의해 8개 공립 특목고는 40년이 넘도록 표준화된 단일 시험으로만 입학생을 선발해 왔다. 하지만 그 결과 아시아 학생이 70%에 육박하는 등 인종적인 쏠림 현상이 발생하자 흑인과 히스패닉이 엘리트 교육의 혜택에서 소외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런 와중에 흑인 부인과 사이에서 흑인 아들을 둔 뉴욕 시장 드블라지오와 히스패닉계 뉴욕 교육감인 리차드 카랜자가 야심차게 새로운 입시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곧바로 아시아계 정치인과 학부모 단체, 그리고 특목고 동문회의 반발을 불러왔다.

중국계로 뉴욕주 상원 교육위원회 의원장인 존 리우 상원의원은 드 블라지오 시장의 다양성 계획이 아시아계를 제외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중국계 미국인을 위시한 시민 단체는 만약 특목고 입시 변경이 아시아 학생의 비율 감소를 초래한다면 뉴욕시에 인종 차별 소송을 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특목고 동문회와 학부모 단체도 인종 쿼터는 본인이 능력으로 공부를 잘해서 특목고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역차별 하는 제도라며 특목고의 교육 취지에 어긋나게 학력 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 '잘 나가는' 아시아계, 역차별 논란

미국 교육계에서 아시아계의 약진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7년도 하버드대 입학생을 보면 미 인구의 5%만을 차지하는 아시아계가 22%를 차지했다.  엘리트 교육 기관에서 아시아계 학생이 많이 뽑히자, 최근 아이비리그 입학 사정에서 아시아계를 차별하기 시작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중국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계 활동가들은 각 학교의 입학 과정에서 소수인종 배려 정책(Affirmative Action) 적용을 반대하기 위해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그 힘을 키워가고 있다. 

드 블라지오 시장의 제안대로 특목고 입학 시험이 없어지고 인종 쿼터로 입학 사정을 하려면 뉴욕 주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 쿠오모 주지사와 뉴욕 주의 상하원 위원장들도 인종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는 대의에는 동의하나, 시험을 없애자는 방안에는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회피해 왔다.

이런 탓에 드블라지오 시장의 야심찬 계획은 힘을 잃어 가고 있었는데 이번 뉴욕타임즈 헤드라인 기사는 다시 한번 해당 논쟁에 불을 붙인것이다.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 사진=AP/연합뉴스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 사진=AP/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또다른 뉴욕 지역지인 뉴욕포스트는 4월 2일자 기사에서에서 또 다른 특목고인 브루클린 테크 고등학교의 예를 들어 뉴욕타임즈 기사를 반박하며 흑인과 히스패닉이 입시에서 실패하고 있는 세가지 이유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브루클린 테크 고교는 1984년만 해도 졸업생 4531명 중 63.5%인 2239명이 흑인과 히스패닉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8년에는 흑인 5.2%로 그리고 히스패닉계 6.4%로 줄었다.

올해 뉴욕 8개 특목고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수는10.6%로 감소했고, 백인은 28.5%을 차지하고 아시아계가 51%로 크게 증가했다.  

이들 인종이 입시에서 실패하는 첫번째 원인은 흑인과 히스패닉이 사는 동네의 공립 중학교의 영재반 수업 감소이다. 중학교 과정에서 모의 고사 실시 등 하는 등 특목고 시험을 준비를 지원하는 공립 학교 프로그램이 줄었다. 실제 뉴욕 교육부는 2009년과 2013년 사이에 브루클린, 퀸즈 그리고 브롱크스의 가난한 지역 중학교의 60개 영재반 수업 프로그램 지원을 중단했다. 현재 90%의 흑인과 히스패닉이 거주하는 뉴욕의 10개 학교 지구 중 영재반 수업은 각 지구당 하나 정도로 운영되고 있다.

가족과 선생님의 영향 또한 인종별로 입시 결과가 다른 이유이다.  아시아계와 백인계는 어릴때부터 특목고의 존재를 알고 목표를 갖고 선생님과 가족의 지원 속에 특목고 입시를 준비한다. 반면 가난한 동네의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은 특목고의 존재조차 모르고 선생님도 특목고 입시를 권유하거나 시험 준비를 도와주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 아메리칸 드림, 특목고에 집착하게 만드는 힘

두번째로는 아시아 이민자 수의 급증이다. 2000년부터 2015년 사이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가 1190만명에서 2040만명으로 72%가 급증했다. 아시아계는 60% 증가율을 보이는 히스패닉계를 앞질러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시아 이민자 가정의 특징도 높은 특목고 합격율에 영향을 미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평균 소득은 뉴욕시의 전체 평균 임금보다 낮은데 이 때문에 고등 교육을 통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강하다. 여유 있는 중산층이 갈 수 있는 비싼 사립 고등 학교에 비해 입학이 어렵지만 영어 수학 시험만으로 합격할 수 있고 학비가 자렴한 공립 특목고에 아시아계가 몰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학원을 통한 입학 시험준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이유다. 뉴욕에서 한국계가 이 학원 열풍을 주도해 중국계와 백인들에게도 전파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저소득층의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이 학원 시스템에 혜택을 보지 못해 아시아계가 시험에서 약진하다는 분석이 있다. 

한편 이달 초 퀴니팩 (Quinnipiac) 대학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뉴욕 유권자의 63%가 특목고 입시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57%는 SHSAT를 폐지해야한다고 밝혔다. 향후 드벨라지오 시장과 뉴욕 교육청의 특목고 입시 제도에 대한 입장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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