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티브잡스, 급여명세서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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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스티브잡스, 급여명세서에 담긴 의미
  • 박대웅 기자
  • 승인 2019.04.02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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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미국에 '연봉 1달러 클럽'이 있다. 기업 CEO나 임원으로서 연봉 1달러를 받는 사람들 모임이다. 창시자는 리 아이아코카(94) 전 크라이슬러 회장이다. 1978년 포드자동차 사장 직에서 물러난 아이아코카가 이듬해 파산 위기의 크라이슬러에 '구원투수'로 등판하면서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때 연봉은 급여를 얘기한다. 월급을 열둘로 곱한 것인데, 상여금이나 퇴직금은 제외된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그의 바통은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이었다. 쫓겨났던 잡스가 '친정'을 구하기 위해 1997년 애플사로 복귀하면서 "연봉 1달러"를 선언했다. 이후 잡스는 2011년 사망할 때까지 15년 동안 모두 연봉 15달러를 받았다. 실적 성장에 따라 그가 보유한 애플과 디즈니 주식의 가치는 해마다 증가해 천문학적 액수가 됐지만,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이 들의 공통점은 날마다 일한 대가인 급여를 안받는대신 상여금이나 퇴직금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통점이 또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실적을 냈을 때 대가를 받아 갔다는 것이다. 적자였다면 '어불성설' 상여금이 지급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 국내 오너 경영인의 100억원대 연봉 수령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스티브 잡스의 연봉 1달러가 재조명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애플은 창업자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것이며, CEO는 기업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잡스의 경영철학은 IT 업계 후배들에게도 전수되고 있다. '연봉 1달러 클럽'의 단골 멤버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신화를 쓴 IT 억만장자들이다. 구글의 공동설립자 래리 페이지와 에릭 슈미트,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야후의 제리 양,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등이 '연봉 1달러 클럽' 회원이다.

반면 국내 기업의 재벌가 오너 출신 CEO 중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보수 킹'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보수는 연간 개인이 받은 돈을 통틀어 말한다. 여기엔 급여, 상여금 게다가 때에 따라 퇴직금이 포함된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인더스트리로부터 퇴직금 178억원을 포함해 197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또 코오롱글로벌(93억원), 코오롱글로텍(90억원), 코오롱생명과학 (43억원), 코오롱(32억원) 등 계열사 5곳으로부터 받은 보수 총액이 456억원에 이르렀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후 우리 사회 곳곳에 명예퇴직(명퇴)바람이 불고 있다. 명퇴자 가운데 아무리 기여한 공로가 커도 400억원대 퇴직금을 받았다는 직장인은 쉽게 찾기 힘들다. 퇴직음이 400억원대가 되기 위해선 급여가 높아야 하는 것인데, 이만한 급여를 받는 다는건 능력 이외의 다른 혜택은 아닐런지.

퇴직금이라는 이례적 요인을 걷어내고 보면 내로라하는 기업 오너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사람은 138억3600만원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다. 그 뒤를 1억여원 차이로 이재현 CJ그룹 회장(136억8400만원)이 이름을 올렸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은 전년보다 5배 늘어난 103억6800만원을 받으며 100억원대 보수 수혜자로 새롭게 자리했다.

이들이 신문지상이나 매스미디어뉴스 경제면보다 사회면을 더 많이 장식했던 것은 칼럼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해 생략한다.

▲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은 최근 회사로부터 400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그룹의 최대 주주로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십배에 달하는 최고경영자와 근로자 간 보수 격차는 지나치게 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14년 8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미등기임원의 보수 공개 의무화와 연 4회 공시규정에 반대하며 내논 보고서에 국내 100대 기업의 CEO와 근로자의 보수 격차는 평균 51배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크고 최저임금이 높은 미국(354배), 독일(147배), 일본(67배)보단 낮지만 사회적으로 공감을 사기에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이래서 10%도 아닌 1%사회라는 말이 나오고 있진 않은 건지...

자본주의를 늦게 시작했으니 먼저한 국가들의 오점을 답습하는게 아니라 개선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선진국이 혹은 그들이 만든 글로벌 스탠더드만이 우리가 가야할 지향점은 아니지 않겠는가.

"나는 이미 충분히 돈을 벌었고, 그것으로 좋은 일을 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마크 저커버그가 밝힌 연봉 1달러 선언 이유다.

연봉 1달러 잡스의 급여 명세서에 담긴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돈도 좋지만, '억'을 넘어 '백억' 소리 나는 연봉을 받는 오너 일가가 이 말도 한 번쯤 곱씹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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