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③ ‘마바라’와 한통속 된 증권사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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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③ ‘마바라’와 한통속 된 증권사 간부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3.15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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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금고 사건' 고객자산 이용해 시세조종…증권업 신뢰 훼손
▲ 증권사 객장에 상주하며 거짓 루머를 흘리며 소액투자자들을 현혹시키는 사람을 ‘마바라’라고 불렀다. /사진= 1990년대 쌍용투자증권 광고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1980~90년대는 주식 매매를 수작업, 전산처리 등으로 병행해 처리하던 시기다. 그러다보니 증권사 영업점이 불공정거래의 온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증권감독원도 이에 맞춰 증권사 영업점을 방문해 검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증권사 영업직원들의 연루사건이 속출했다. 1997년 매매체결 전산화가 완료되기까지의 일이다.

상장사 대표가 연루된 주가 조작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1991년 2월 증권사 중견 간부가 주도한 대형 증권비리가 발생했다. 증권사 직원들이 속칭 ‘마바라(객장 상주 투자자)’라 불리는 증권 브로커와 공모, 고객들의 증권계좌를 이용해 시세조종에 나선 ‘진흥상호신용금고 사건’이다.

당시 ‘마바라’로 알려진 강 모씨는 동서증권의 옥모 인수부 차장과 서울코스모스지점 김 모대리, 쌍용투자증권 손모 상품운용부차장, 대한증권 영업부 서모 차장 등 평소 알고 지내던 증권사 간부 4명을 자신의 작전에 끌어들였다.

이들은 진흥상호신용금고를 ‘작전종목’으로 찍었다. 신용금고 업종으로서 유일하게 공개된 곳이면서 규모(자본금 55억원·상장주식수 110만주)가 작고 1985년 4월 9일 상장 이후 한 번도 증자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게 '낙점'의 이유였다.

◆ '증자 예정' 헛소문 퍼뜨려 주가 끌어올리기

작전은 1989년 2월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강 씨와 증권사 간부들은 진흥상호신용금고 종목의 매매거래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도록 주가조작에 나섰다.

시세조종 수법으로는 매매거래가 성황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사전에 매매물량과 가격 등을 합의한 후 서로 주문을 주고받는 ‘통정매매’ ▲계산주체가 같은 계좌끼리 주문을 하는 ‘가장매매’, 다른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개장 첫 시세를 의도적으로 높이는 ‘시초가 형성매매' ▲장중 주가를 조금씩 계속 끌어올리는 ‘체증식 매매’ ▲종가를 높이는 ‘고가매매’ ▲종전의 최고가를 계속 경신시키는 ‘장중 최고가 형성매매 등이’ 313회에 걸쳐 동원됐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진흥상호신용금고가 머지않아 처음으로 대규모 증자를 실시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일반투자자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당시 진흥상호신용금고의 주가는 1989년 2월22일 2만900원에서 3월 31일 3만4800원으로 올라 한 달 만에 66.5% 상승했다. 이 종목의 거래량은 2월22일 5270주에서 3월 21일 4만610주로 증가하기도 했다. 강씨와 증권사 간부들이 챙긴 부당이득은 모두 10여억원에 달했다.

주식의 매수 자금은 증권사 간부들이 관리하는 24개 고객계좌에서 불법 일임 매매하는 방식으로 조달했다. 이들 계좌의 주식 매매금액은 377억원, 거래주식수는 197만주였다. 또 친·인척의 이름을 빌려 40여개의 차명 주식계좌를 개설한 뒤 본인의 자금으로 주식거래를 하는 자기매매(거래금액 14억원·거래주식수 6만4000주)도 이뤄졌다.

◆ "모르는 인물" 혐의 잡아 뗀 증권사 직원

이 사건은 한 주식투자자의 제보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강 씨에게 주식계좌를 맡겼다 주가조작에 말려 1억8000만원의 손해를 본 김 모씨는 1990년 2월 서울지방검찰청에 강씨를 비롯해 증권사 직원 등 5명을 증권거래법 위반 및 배임·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강 씨가 5월 돌연 도주하면서 기소가 중지됐다.

방법이 없어진 김씨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같은해 11월 이들을 증권감독원에 제보했다. 증감원은 세 차례에 걸친 예비조사를 실시한 뒤 1991년 1월부터 12일 간 수명조사를 진행했다. 이어 증권관리위원회가 2월 8일 5명에 대해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의 금지위반 등 혐의로 검찰 고발을 의결했다. 신병이 확보된 강 씨는 재수사를 통해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최종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증권사 직원 4명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들은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끝까지 증권사에 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는 강씨를 ‘전혀 모르는 인물’이라고 잡아떼기까지 했다.

◆ 자본시장 개방 앞두고 증권업 신뢰 훼손

이 사건이 알려지자 업계는 물론 투자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고객의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해야 할 증권사 직원들이 고객의 위탁계좌에 있는 주식을 주가조작에 악용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뿐 아니라 증권업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언론에서는 자본시장 개방을 앞두고 당시 재무부와 증권거래소, 증감원 등 감독당국의 허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해외 증시에 비해 영세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만행을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또 증권사 직원이 연루된 주가조작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증권사 직원들의 윤리의식이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불공정거래 조사 강화 및 전산프로그램 완비 등 보완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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