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미국을 방문해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하원의장에게 친필 휘호를 쓴 족자를 선물했다. 휘호의 글귀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이었다.
문 의장은 ‘황하가 만 번을 꺾어도 결국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만절필동을 인용하면서 "협상 과정에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북한이 처한 절박한 경제 상황과 제재 등 고립으로 궁극적으로는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구축되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문 의장이 허구한 글귀 가운데 만절필동이란 휘호를 선택했을까. 문 의장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을까.
그러면 만절필동의 본래 의미는 무엇일까.
경기도 가평 조종면 대보리에 조종암(朝宗岩)이라는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는 조선시대에 모화(慕華)사상을 가득 담은 글귀가 조각되어 있다. 바위에 비석을 세우고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 곳이다. 경기도기념물 28호로 지정되어 있다.
누구를 위한 제사인가. 숭명배청(崇明排淸).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베푼 은혜를 잊지말고, 병자호란때 청나라에게서 받은 수모를 되새기자는 뜻에서 상국(上國)인 중국에 제사지내는 곳이다.
청나라를 치는 북벌론을 명분으로 삼던 조선 숙종 10년(1684), 당시 가평군수를 지낸 이제두(李齊杜)와 명나라의 허격(許格)·백해명(白海明) 등이 큰 바위면에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조종(朝宗)이란 제후가 천자를 알현한다는 뜻인데, 조선시대 후기에 명분론을 앞세운 숭명배청론자들에 의해 정신적 지주로 삼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글씨는 명나라의 마지막 임금 의종이 쓴 ‘思無邪’(생각에 사악함됨이 없다)라는 친필을 허격이 가져와 맨 왼쪽 높은 바위에 새겼다.
그 아래에는 선조(宣祖)의 친필 “황하가 일만 번 꺾여도 반드시 동녘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주었네” 하는 ‘萬折必東 再造蕃邦’(만절필동 재조번방)이 새겨져 있다. 조선 임금이 명나라 황제에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으니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의미다.
또 선조의 친손 낭선군 이우(郎善君 李俁)가 ‘(명나라) 황제를 뵙는 바위’라는 ‘朝宗巖’(조종암)을 새겼다.
긴 세월의 풍상을 겪고 바위면이 검은 이끼로 덮이긴 했지만 워낙 깊고 뚜렷이 각을 떴기 때문에 맨눈으로도 판독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충북 괴산군에 화양서원이 있다. 그곳에 ‘만동묘(萬東廟)’가 있는데, 이 만동은 만동은 만절필동의 준 말이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하여 원군을 파병한 명나라 신종을 기리기 위해 숙종 30년(1704년)에 지어진 사당이다.
문 의장이 만절필동의 의미에 대해 북한 핵 협상 과정에 숱한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해결될 것이란 의미라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중국과 한국전쟁 때 미국을 비교하면서 이 글귀를 해석하면 논란의 소지가 있다. 미국에 대한 사대의 의미가 들어가게 된다.
만절필동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2017년 12월 주중 대사로 부임할 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노영민 당시 주중국 대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에서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적었다. ‘공창미래’라는 말은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라는 뜻으로 좋은 말인데, 앞의 만절필동이 문제였다.
당시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노 대사가 이 의미를 알고 썼다면 국가의 독립을 훼손한 역적이고, 모르고 썼다면 대한민국과 대통령 망신시켜 나라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며 “노 대사가 이런 썩어빠진 정신을 가졌기에 이번 대통령 방중이 대한민국 혼이 빠진 굴종외교가 되었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고 썼다.
문 의장이 만절필동의 의미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중요치 않다. 본래의 의미를 생각하면 나라의 체통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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