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정상회담 열리는 하노이는 베트남의 천년 고도
상태바
미북 정상회담 열리는 하노이는 베트남의 천년 고도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2.09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안남도호부로 출발…홍강 삼각주의 농경지대에 떠오르는 용의 도시

 

오는 27~28일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장소가 베트남 수도 하노이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회담 장소로 하노이와 다낭으로 좁혀졌는데, 미국측은 다낭을, 북한은 하노이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에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미국측이 양보한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한다. 북한이 대사관을 두고 있는 하노이를 선호했고, 미국은 ‘작은 양보’를 통해 장소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 하노이 위치 /위키피디아

 

하노이는 베트남어로 Hà Nội, 한자로 河內로 표기된다. 홍강(紅河) 삼각주에 위치한 강의 도시라는 의미다.

베트남은 서기 939년 독립하기 앞서 1천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나라는 하노이에 안남(安南)도호부를 설치해 윈난(雲南)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교역로로 활용했다. 홍강 삼각주는 비옥하고 해상교통로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치하기 수월한 곳이다.

1010년 리(李) 왕조가 다이비엣(大越)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수도로 삼았다. 첫 이름은 탕롱(Thăng Long, 昇龍)으로, “떠오르는 용의 도시‘라는 의미다. 그후 1802년까지 800년간 여러 왕조가 교체되었지만, 베트남의 수도로 자리잡았다.

 

▲ 인공위성에서 본 하노이 /위키피디아

 

1802년에 응우옌(阮) 왕조가 성립되면서 수도를 베트남 중부 후에(Huế)로 옮겼다. 그후 탕롱, 통킹 등으로 불리다가 1831년에 현재의 명칭 하노이로 변경되었다.

1887년 프랑스가 베트남을 3분할하면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중심지가 되었다. 1940년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하게 되면서 하노이도 사실상 일본에 점령되었다.

1945년 8월에 일본군이 항복하고, 그해 9월 2일 호치민(胡志明)이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북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2차 대전 직후 프랑스가 베트남에 대한 지배를 시도하며 하노이를 점령했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하노이는 다시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 하노이는 북베트남, 사이공은 남베트남의 수도로 분단되었다. 전쟁 기간에 미군이 하노이의 다리와 도로 등 시설을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통일 베트남은 하노이를 수도로 정했다. 2008년 8월 하떠이 성을 통합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86년 도이모이정책 이후 하노이는 근대도시로 변모했다. 급격한 건축붐이 일어나고, 신도시 지역에는 마천루가 도시 풍경을 바꿔 놓았았다. 1천년 고도의 모습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스카이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0년에는 리 왕조가 하노이(탕롱)에 수도를 삼은지 1,000주년에 해당하므로, 다양한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인구는 2015년 기준 750만명으로, 호치민시(구 사이공)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 하노이와 호치민시 비교 /코트라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