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국민연금 결정에 "기업 길들이기“ vs “시늉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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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국민연금 결정에 "기업 길들이기“ vs “시늉만 했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2.02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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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참여 제2, 제3호 나와 경영불안 심화”…“10% 룰에 매달려 상징적 의미에 그쳐”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 지분 11.56%를 가진 2대 주주이고, 대한항공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지분 7.34%를 확보한 3대 주주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주주권 행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에 규정되어 있는 ‘10% 룰’의 제동에 걸렸다. 이 규정은 10% 이상의 지분을 가진 투자자가 경영참여를 할 경우 6개월 이내에 매매차익을 해당회사에 반환하도록 되어 있다.

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4시간여 회의에서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고, 한진칼에 대해서만 제한적 주주권 행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금융위원회에 10% 룰을 예외로 인정받을수 있는지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불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결론은 주주권 행사시 10% 룰에 의해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대한항공에는 경영참여를 하지 않고, 수익을 돌려줄 필요가 없는 한진칼에만 주주권행사를 한다는 것이다. 수익이 되는 곳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돈이 되지 않는 곳에서만 목소리를 내겠다는 내용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1일 회의에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여해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결정 내용을 발표했다.

 

▲ 자료: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

 

이 어물쩡한 국민연금의 결정에 대해 2일자 신문 사설들에 뚜럿한 선이 그어졌다. 한겨례신문 사설은 “시늉에 그친 국민연금의 ‘한진그룹 주주권 행사’”라고 했고, 동아일보 사설은 “국민연금의 한진칼 주주권 행사, 대기업 길들이기 악용 안된다”고 했다. 컵에 물을 반쯤 채웠는데, 가득 채웠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과 왜 그만큼이라도 채웠느냐는 생각이 부딛친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이번 결정은 국민연금이 주요 대기업의 경영에 직접 간여할 수 있는 첫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앞으로도 기업에 대한 대중의 감정에 따라 ‘주주의 장기적 이해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민연금이 경영에 개입하는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213개 기업에 대해 5∼10%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국내 주요 기업들이 언제든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정부도 국민연금을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한다거나 정치적 이해를 위해 경영 압박을 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외부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노후자금을 불리는 데만 전념할 수 있도록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갖추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국민 노후 자금을 정권 수단 만든 문 대통령”이란 사설에서 기금운용위의 결정에 대해 “국민 노후 자금을 수익성 향상이 아니라 누구 벌 주는 데 동원하겠다는 것”으로 보았다. 조선 사설은 “자본시장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휘두르는 국민연금이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첫 선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충격은 크다”며, “경영 참여 2호, 3호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경영권이 불안해지고 기업들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매일경제는 “국민연금의 한진 경영참여가 불러올 후폭풍”이라는 사설에서 “국민연금 경영참여가 정치 논리에 휘둘릴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매경 사설은 “섣부른 경영 개입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압박할 수 있는 데다 행동주의펀드 공격을 조장하는 등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는 오직 장기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고 국민 노후자금을 불려준다는 기본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사설은 기금운용위 결정에 대해 “국민연금은 다른 투자자와 달리 수익성도 중장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시안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단기 매매차익에 연연하지 말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궁극적으로 수익성에도 도움이 된다. 10% 룰에 구애받으면 앞으로도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국민연금은 한진칼의 경우 10% 룰에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다”며 “결국 적극적 주주권을 처음 행사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보았다.

한겨레는 “국민연금은 10% 룰 등 적극적 주주권 행사와 관련한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하고 기준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며,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해 “스스로 경영에서 손을 떼고 신망 있는 전문경영인을 임명해 경영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국민연금 첫 주주권 행사 결정, 경영 건전성 계기 되길” 바란다고 했다.

경향은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기대한 시민단체나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는 한편 주주의 가치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경향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처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1차 목적은 기금의 수익성 제고”라며, “첫발을 뗀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을 높이면서 기업 경영을 견제·감시하는 첨병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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