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을 깊게 판 사람들 이야기..."만년필 탐심", "데뷔의 순간", "숲과 상상력 "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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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을 깊게 판 사람들 이야기..."만년필 탐심", "데뷔의 순간", "숲과 상상력 " 리뷰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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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읽을 만한 세 권의 책 추천

꿈에서도 못 뵌 조상님이 주신 선물이다. 최소 5일 동안 휴가다. 물론 건너야 할 통과의례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닷새 내내 명절 준비와 뒤치다꺼리로 허비할 것인가? 지난 연말부터 연초까지 치른 각종 모임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좋은 기회다. 책을 읽자.

이 글을 찾아 읽는 독자라면 연휴에 무슨 책을 읽을지 조금은 고민했을 것이다. 책 안내 기사도 여럿 읽었을 것이고. 나는 그런 글에서 언급되지 않았을 법한 책을 소개하려 한다. 2월이지만 설이라는 상징 때문에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다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한 분야를 깊게 판 사람들이 쓴 책을 골라 보았다. 세 권 모두 다른 분야이지만 이들 저자에게서 얻는 성찰은 묘하게 공통점이 있고 서로 이어진다.

 

만년필을 통해 보는 세상 <만년필 탐심>

 

▲ 만년필 탐심 / 틈새책방

책을 한 번 골라 볼까 하고 대형서점에 들렀는데 문구 코너에 머문 시간이 더 긴 사람이 있다. 내가 그렇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박종진의 <만년필 탐심>을 권한다.

저자 박종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만년필 연구소’ 소장이다. 40여 년 만년필을 수집하고 연구한 이야기를 “탐했다”라는 화두로 푼 책이다. 다만 한글로는 같은 글자이지만 한문으로 쓰면 전혀 다른 뜻이 되는 탐심(探心) 혹은 탐심(貪心)의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깊이 살펴보려는 마음과 탐하는 마음으로.

‘깊이 살펴보려는 마음’ 장에서는 만년필과 얽힌 여러 이야기를 담았다. 박목월 시인 얘기로 시작한다. 시인이 사용한 것으로 짐작되는 만년필이 수리 입고 되었다. 저자는 낡은 만년필을 보고는 다양한 상상을 해 나간다. 와인처럼 언제 어디서 생산된 제품인지를 따져보고, 다른 만년필에서 부품을 갖다 썼다는 추론도 한다. 이 과정을 당시 문헌이나 사진에서 찾는다. 특히 박목월 시인 가족사진 한구석에 놓인 만년필에서 많은 걸 알아내는 과정이 재미있다.

히틀러가 서류에 사인하는 사진으로 어떤 브랜드가 언제 생산한 제품일까를 추론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제품 형태는 물론 당시 경제 상황과 국제 정세에 맞물린 만년필 산업 관점에서 푼 것. “만년필을 통해 세상을 본다”라는 저자 말이 이해되었다. 심지어 필기구 그립과 글 쓰는 자세 그리고 필체로 그 사람을 그려보는 경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탐하는 마음’ 장에서는 해외에서 만년필을 수집하는 방법과 명품 혹은 골동품 만년필과 얽힌 이야기를 푼다. 몽블랑이나 파커는 물론 필기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펠리컨, 워터맨, 쉐퍼 등 명품 만년필에 숨겨진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외골수가 아니라 깊고 넓게 열정을 펼친 저자의 삶이 읽히는 책이다.

 

거장도 설레게 한 <데뷔의 순간>

 

▲ 데뷔의 순간 / 한국영화감독조합

이번 연휴에도 종일 공중파, 종편, 케이블 할 것 없이 영화를 틀어댈 것이다. 그런 연휴 내내 소파를 떠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한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 낸 <데뷔의 순간>이다. 이 책 부제인 ‘영화감독 17인이 들려주는 나의 청춘 분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유명 영화감독이 술회하는 그들이 장편 영화로 데뷔하기 전 이야기다. 물론 17인 모두 직접 썼다. 수기처럼 일기처럼.

이들 이름만 봐도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 부흥을 이끈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다. 박찬욱, 봉준호, 이준익, 임순례, 최동훈 등 17인 모두 대중적으로 혹은 영화적으로 인정받는 성공한 감독들이다. 오늘날 그들 이름이 적힌 제작기획서는 대형 투자사가 우선 검토하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도 찌질하고 암울했던 시절이 있었다.

단편영화 만들 때 스태프들과 며칠을 굶으며 작업하다 돈이 생겨 고기를 먹였더니 모두 설사로 고생했다는 변영주 감독. 일이 없어 선배(역시 일이 없던 곽재용 감독)가 운영하던 비디오 가게를 봐주던 박찬욱 감독. 이런 비슷한 경험을 17인 감독들 거의 갖고 있다. 그게 놀라웠다. 이 책에는 끝까지 멋지게 버텨내어 마침내 장편 영화로 데뷔한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젖어있다.

17인 감독이 직접 쓴 매 챕터에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마치 그의(혹은 그녀의) 좌우명처럼. 그 말이 크게 와 닿았다. 류승완 감독은 “챔피언은 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다.” 임순례 감독은 “결코 ‘버리는 시간’이란 없다.” 박찬욱 감독이 압권이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거란 착각 속에 살아라.”

“지금 늦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픈 이야기다.

 

숲에서 희망을 찾는다 <숲과 상상력>

 

▲ 숲과 상상력 / 문학동네

그래도 명절이고 연휴니까 어디라도 가볼까 계획한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있다. 강판권이 쓴 <숲과 상상력>이다. 저자는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다. 그리고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인문학과 식물을 결합하려 오랜 세월 숲을 다니고 식물을 연구했다.

저자는 숲 여행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꿈을 찾아가는 여행과도 같다”라고도 고백한다. 저자는 그렇게 남한 모든 지역 숲을 답사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고 계절을 달리해서도. 그 숲이 간직한 역사와 이야기를 적어가며.

그렇게 발로 쓴 이 책은 세 주제로 나뉜다. 먼저 ‘사찰과 숲’에선 여러 사찰 주변 숲을 소개한다. 숲이 가진 치유 능력을 얘기하며 마음이 힘들 때 숲에 가보라 권한다. 특히 사찰 주변 숲은 마음공부가 절로 되는 곳이라 설명하면서.

두 번째 부분 ‘역사와 숲’에선 우리나라 신화나 설화와 관계된 숲을 소개한다. 우리나라에는 오래된 숲이 많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생태는 자연생태도 중요하지만, 인문생태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숲은 역사가 깃든 생명이기에.

마지막 부분은 ‘사람과 숲’이다. 땅 주인 의지로 혹은 지역 주민들 노력으로 일궈진 숲을 소개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숲이든 작은 마을 앞 이름 없는 숲이든 사람 힘으로 만든 것이란 걸 강조한다. 저자는 그런 숲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 때문에 숲이 아픈 현실을 이야기하며 생명인 숲을 함께 지켜나가자 부탁한다.

이 책에는 숨겨진 선물이 있다. 별지로 된 표지를 펼치면 뒷면에 책에서 소개한 숲 지도가 나온다. 저자의 발품이 녹아있는 곳이다. 전국 골고루 퍼져 있으니 이번 연휴에 가까운 곳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한 곳을 깊게 파고 난 후 나온 것은 과연

 

지금까지 소개한 책들은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관점을 달리해 보면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한 분야를 깊게 판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 펼쳐본 책에서 저자들이 걸어온 길을 그려보게도 되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묵묵히 걸었던. 이곳이 맞을 거라며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파 내려갔던. 그들은 자신이 찾은 게 보물이 아니었더라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듬었다. 어쩌면 보물보다 더 귀한 걸 찾았던 것.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건 무엇이었을까? 깊이 파다 보면 무언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보여준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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