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5월의 이탈리아④…내 눈에 비친 성 베드로 대성당

긴 역사 속의 걸작품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된 이 느낌은··· 조병수 프리랜서l승인2019.01.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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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프리랜서] 어부 시몬(Simon)이 예수님과의 운명적 만남에서 ‘반석, 돌'이라는 뜻인 게바(Cephas, 영어로 번역하면 Peter)라는 새 이름을 얻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사도 바울과 함께 초대교회의 두 기둥으로 추앙을 받는 그의 무덤이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탈리아어로는 Basilica Papale di San Pietro in Vaticano).

그런데 로마에서의 첫날 오후에, 바티칸 미술관을 거쳐 그 성당을 둘러볼 때는 발걸음을 떼 놓기도 힘들만큼 지쳐서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로마 외곽으로 벗어나던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Domine, quo vadis)?”라고 묻자, “네가 나의 양들을 버리고 떠나니 나는 로마로 가서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히리라”는 말씀을 듣고는 즉시 발길을 되돌려서 로마로 향하고, 체포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처럼 똑바로 십자가에 매달릴 자격도 없다면서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는 얘기가 어려있는 그 성당을 이렇게 주마간산 격으로 스쳐가서는 왠지 후회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에,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 성 천사의 다리)를 건너서 다시 성 베드로 성당으로 나아갔다. 그 다리 난간에는 건축가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가 제작한 열 개의 천사상(像)들이 제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당시 고문당했던 도구들을 손에 들고 늘어서있다.

지금은 국립 군사박물관으로 쓰인다는 산탄젤로 성(城) 앞을 지나서 곧바로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Via della Conciliazione, 화해의 길)로 들어선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건넨 천국의 열쇠모양'이라는 성 베드로 광장과 대성당이 파란하늘과 어우러지며 시야를 가득 채워온다.

 

▲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 길에서 본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이 두 팔을 벌려 사람들을 모아 들이는 모습을 표현했다’는 그 광장의 오른쪽 검색대 앞에는, 설계자 베르니니의 의도대로 전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성당으로 들어가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줄서기에 바빠서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나 광장 양편의 토스카나식(式) 기둥이나,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140개 성인상(聖人像)들에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다.

성당 안은 어제저녁 무렵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입구 오른쪽으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1475~1564)가 26세에 제작했다는 «피에타(Pietà)»가 있다. 1972년5월에 일어난 훼손사건 이후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탄유리 가림막 앞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입구 왼쪽으로는 «교황 알렉산데르7세 기념상»도 보인다. 교황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마지막 기도를 바치는 모습 아래 정교하게 다듬어진 천연대리석은 교황의 시신을 덮은 천을 뜻하며, 그 속의 모래시계는 이승의 마지막 순간을 상징하고, 해골은 죽음이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한다.

베르니니가 80세에 제작했다는 그 조각상에는 정의, 현명, 자비, 진실을 상징한다는 네 여인의 석상이 자리잡고 있다. 오른쪽 앞의 ‘진실’을 뜻하는 여인이 지구본 같은 것을 발로 누르고 있는데, “그곳이 잉글랜드”라는 설명을 들었던 터라 흥미롭다.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으로 로마가톨릭교회와 단절한 영국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 교황 알렉산데르7세 기념상, 성 베드로 대성당 /사진=조병수

 

성당 가운데, 마데르노의 중랑(Maderno’s Nave) 오른쪽에는 고대 로마식 복장에다 왼손에는 천국의 열쇠를 들고 오른손은 곧추세운 채 의자에 똑바로 앉은 모습의 «베드로의 청동좌상»도 보인다. 어제는 중랑(中廊)에 칸막이가 처져 있어서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에, 12세기 조각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만든 그 좌상 옆으로 늘어선 사람들을 따라 줄을 선다.

그리고 중세 때부터 이곳을 찾는 순례자가 청동상의 발에 입맞춤하고 손으로 만지며 기도하는 습관 때문에 반들반들해진 그 발에 손을 대며 잠깐이나마 순례자가 된 기분을 내어본다.

 

▲ 베드로의 청동좌상, 성 베드로 대성당 /사진=조병수

 

성당 제일 안쪽에는 사도 베드로가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할 때 앉았던 나무 의자의 조각들을 모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베드로의 의자(Chair of Saint Peter, 라틴어 Cathedra Petri)와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빛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이 새겨진 타원형 창이 있다.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만드는 그 창(窓)은 대리석의 일종인 설화석고(雪花石膏, alabaster)를 깎아서 유리처럼 비치게 만들어졌는데, 시간표시 같은 12개 부분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가운데로부터 3개의 둥근 테 부분은 삼위일체를 나타낸다고 한다.

어제 저녁 무렵에는 그 오묘한 빛 사이로 비치는 비둘기가 눈으로는 보여도 사진으로는 나타나지 않아서 무슨 조화인지 궁금해 했었는데, 오늘은 그 모습이 제대로 찍힌다. 아마도 햇빛의 위치나 조도(照度)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해보면서, 이런 작품들을 만든 베르니니는 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 베드로의 의자, 성 베드로 대성당 /사진=조병수
▲ 발다키노와 쿠폴라, 성 베드로 대성당 /사진=조병수

 

십자가형태인 성당의 중심에는, 교황만이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중앙 제대(祭臺)와 그 위에 우뚝 선 닫집 모양의 발다키노(baldacchino)가 있다. 이 또한 베르니니의 작품으로 높이가 28.74m나 된다고 한다.

발다키노 위로는 미켈란젤로가 재설계하고 포르타와 폰타나(Giacomo della Porta & Domenico Fontana)가 완공했다는 돔(cupola)이 지상136.57m의 높이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색감을 던져준다. 그 창(窓)을 통해서 내려오는 햇살이 신비감을 더한다.

돔을 받치고 있는 네 개의 벽 기둥에도 큰 조각상들이 보인다.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조각을 찾아왔다는 콘스탄티누스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Saint Helena)가 십자가를 든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로마병사이지만 나중에 기독교신자가 된 성 론기누스(Saint Longinus)가 창을 든 자세로, 그리스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했다는 베드로의 동생 성 안드레아(Saint Andrew)가 X자형 십자가를 든 형태로 서있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자신의 수건으로 닦아준 성녀 베로니카(Saint Veronica)의 형상도 자리잡고 있다.

특히 ‘성녀 베로니카가 예수님 얼굴의 땀을 닦은 천에 예수님의 얼굴모습이 남았다는 기적’ 얘기를 표현한 이 조각상은 이탈리아 조각가 프란체스코 모키(Francesco Mochi, 1580~1654)의 작품이란다.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고 천의 질감마저 느낄 수 있을 것처럼 대리석으로 빚어낸 것도 대단하지만, 들고 있는 머리 수건(the Veil)에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다.

 

▲ «성녀 베로니카와 수건»에 표현된 예수님 얼굴, 성 베드로 성당 /사진=조병수

 

그 동안 여러 나라의 유명하다는 성당이나 박물관, 미술관들을 들락거렸어도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이다. 오래된 성당들은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형태인데다가 이름난 사람들의 묘소들만 즐비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별로 재미가 없어서 가급적 피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덧 백발이 휘날리는 즈음에 갑자기 역사 속의 인물들과 예술품들에 묘한 끌림을 느끼다니···. 지난날 애써 외면해왔던 것들이 스멀스멀 안타까워지고, 좀더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소홀히 했던 것 같아서 갑갑해진다.

이런 것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에 갔다가 아름다운 르네상스시대의 예술품에 감동하여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경험했다는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의 증후군(Stendhal syndrome)에 비견할 수야 없겠지만, 정말 갑작스레 알고 싶어진 것도 많아지고 스스로 부족했던 점들이 떠올라서 골치가 지끈거린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가 그저 밋밋하게만 보였고, 옛 상사로부터 서양의 명화관련 서책을 선물 받고도 그저 ‘이런 게 있구나’ 했던 사람이니까 오죽했을까···.

 

4세기에 지어진 옛 성 베드로 성당을 헐고 1506년에 새 성당 공사를 시작한 율리오2세 교황(Papa Giulio II)이래 1626년 완공될 때까지의 지도자들과 공사설계 등에 참여한 브라만테(Donato Bramante),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 미켈란젤로, 포르타와 폰타나, 마데르노, 그리고 베르니니 같은 많은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과 마주하면서, 느닷없이 긴 역사 앞에 벌거숭이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 문득, 그들의 삶과 종교적 깊이가 어떠했길래 이런 심오한 걸작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해 진다. 그리고 어떻게 주어진 시간과 한계를 뛰어넘어서 자신들의 천부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도 살펴보고 싶어진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라는 말도 있으니까···.

 


조병수 프리랜서  bscho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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