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5월의 이탈리아③…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과 그 미술관
상태바
[조병수 에세이] 5월의 이탈리아③…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과 그 미술관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9.01.14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대 로마인들의 ‘배움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여가’의 理想(이상)도 되새기고…

 

[조병수 프리랜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교황이 통치하는 도시국가 바티칸시국(市國). 인구 약 1천명, 영토는 로마의 테베레 강 서쪽 바티칸 언덕과 그 앞 인근에 성 베드로 대성전,사도 궁전과 시스티나 성당 그리고 바티칸 미술 관 등의 건물들이 세워진 평원 0.44㎢이다.

이탈리아반도 중부에 살던 옛 나라 에트루리아의 “바티쿰(Vaticum, ‘정원’)”이란 마을지역이었고, 서기 64년 로마 대화재 이후 그리스도인의 순교장소이었으며, 네로(Nero)의 원형경기장과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바티칸 언덕. 그리고 그곳 원형경기장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성 베드로가 묻혀있다고 여겨지는 곳 위에 건설된 성 베드로 대성전이 있는 곳.

옛적 상사(上司)가 교황을 알현하고 돌아왔을 때도, 뉴스나 영화 속의 그곳 풍경들도 내게는 늘 딴 세상 얘기일 뿐이었던 그 바티칸에 직접 와보게 되다니···.

 

온전히 로마관광에 주어진 시간도 절약할 겸 바티칸만큼은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유로자전거나라의 오후 반나절 투어를 따라 나섰다. 이른 점심을 마치고 집합장소인 치프로(Cipro) 역에 도착하니, 화창하기만 하던 5월의 하늘은 어느새 잔뜩 찌푸려져 있고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한다. 낮에 비가 올 것이라던 일기예보가 정확하다.

여유 있게 왔음에도 벌써 여기저기 우리 관광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 이렇게 많이 왔으니, 이 시각 현재 로마나 이탈리아에 머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도 이제 참 잘 살게 되었구나 싶다.

20명씩 2팀으로 나뉘어져 가이드들을 따라 나선다. 몇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제법 계속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거리풍경은 모두다 그림이다. 무작정 물이 흘러나오는 길가의 노천 급수(給水)대도 신기하고···.

높다란 벽 아래로 바티칸 미술관(Musei Vaticani) 입구가 보이고, 그 앞 조그만 광장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 오래된 성벽 같은 것이 바티칸시국의 경계란다. 무선수신기를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가니,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구미구미 모여 앉아 인솔자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태블릿 PC까지 동원한 가이드의 열정적인 사전설명이 한참 동안 이어진 후, 드디어 입장이다. 눈앞에 수많은 조각상(像)과 그림작품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 하나하나마다 무수한 얘기들과 의미들이 얽혀있을 텐데, 멈춰 서서 찬찬히 뜯어볼 틈이 없다.

«아테네학당» 같은 작품이 있는 라파엘로의 방은 만원버스처럼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이다. 벨베데레 정원의 «라오콘»이나 «아폴론» 같은 조각상 주변에는 몰려있는 사람들 탓에 가까이 접근하기조차 힘들다. 천장 중앙에 9개의 창세기 장면이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같은 걸작들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빼곡히 들어찬 관람객들 속에서 아예 말도 못하게 하고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한다.

평소보다 관광객수가 적다는데도 사정이 이러하니, 대충 분위기만 살피고 나중에 화보자료나 살펴보는 것으로 마음먹는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파에 밀려 가는 중에도 아라찌의 회랑(Galleria degli Arazzi)에 걸려있는 «예수님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Christ)»이란 태피스트리(tapestry)작품이 눈길을 끈다.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한 대형 벽걸이 직물공예로,16세기 플랑드르 화가 피터 반 알스트(Flemish painter Pieter van Aelst) 공방의 작품이란다.

세로562cm 가로 954cm에 달하는 그 작품에 표현된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며 걸어가니까, 예수님이 줄곧 나를 응시하며 따라오고 얼굴과 몸까지도 같이 방향을 트는 듯해서 탄성이 절로 난다.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으면 모르고 그냥 스쳐갔을 것이다.

 

▲ «예수님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Christ)», 바티칸 미술관 /사진=조병수
▲ «예수님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Christ)»중에서, 바티칸 미술관 /사진=조병수

 

서너 시간째 북적거리는 환경에서 수많은 걸작품들에 휩싸여 심신이 지쳐갈 무렵,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안내된다. 그냥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지만, 그래도 관광객들 사이를 뚫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조각상도 살펴보고, 그가 설계했다는 쿠폴라(돔)와 주변을 돌아다 본다.

예술품들에 별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문외한임에도, 대리석으로 저런 조각품들을 만들고, 천장화를 그리고, 설계를 했다는 미켈란젤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은근히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마침 무슨 미사가 있는지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사제들이 입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성스러운 기분이 휘감겨 든다.

그렇게 약 5시간에 걸친 바티칸 투어 끝에 성 베드로 광장 옆 관광안내소에서 그림엽서를 사서 집으로 보내는 우체통에 넣는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원전 고대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그 시대의 선량한 로마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조언했다는 라틴어 글귀를 떠올려 본다.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otium cum dignitate). 배움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여가(peaceful leisure full of studies) 또는 위엄을 갖춘 여가(leisure with dignity)라는 뜻이란다.

가족과 함께하는 로마여행 첫날부터 묵직한 역사와 현재가 어우러진 이야기들을 새로이 보고 배우면서, 잠깐이나마 고대 로마인들의 ‘배움에 가득 찬 평화로운 여가’의 의미와 그 기분을 상상해본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