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권력실세 문정왕후가 남긴 불화, 보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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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권력실세 문정왕후가 남긴 불화, 보물 되었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1.0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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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작된 불화 400점 중 국내에 유일하게 보관된 ‘약사여래삼존도’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 ~ 1565) 윤씨는 조선 11대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이자, 13대 명종을 낳은 모후로, 아들 명종이 12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여인이다.

훗날 사림파 사신(史臣)은 명종실록에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할 만하다.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 하였으니, 윤씨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고 악평을 남겼다.

치열한 권력 투쟁 끝에 아들을 보위에 오르게 한 뒤, 동생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을 끌어들여 소윤·대윤의 싸움을 지휘하고, 을사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에게 정치를 일일이 지시했으며, 임금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윽박지르고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사가들은 문정왕후를 중국 당나라때 측천무후(則天武后)에 비유하기도 한다.

문정왕후는 정난정의 소개로 스님 보우(普雨)를 앞세워 불교를 중흥시켰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을 국시로 하던 조선 시대에 문정왕후는 성리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첩제를 실시해 우수한 승려를 뽑았으며, 전국에 300개의 절을 공인했다. 이때 발탁된 스님 가운데 임진왜란때 활약한 유정과 휴정이 포함되었다.

문정왕후는 봉은사를 크게 일으켜 보우의 권유로 남편 중종의 묘를 근처로 이전시키기도 했다.

명종 즉위 후 20년간 사실상 조선을 통치한 문정왕후는 회암사에서 열리는 재를 앞두고 목욕재계를 한 뒤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죽은후 보우는 제주로 유배간 후 살해되었고, 불교는 다시 억압되었다.

 

문정왕후가 발원한 경기도 양주 회암사의 약사여래삼존도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은 3일 회암사 약사여래삼존도를 비롯해 목포 달성사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등 조선 시대 불교 조각과 고려‧조선 시대 불교경전 등 4건에 대해 보물로 지정했다.

 

▲ 보물 제2012호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 /문화재청

 

① 보물 제2012호 ‘회암사’(檜巖寺)명 약사여래삼존도

1565년(명종 20년) 중종 계비 문정왕후가 아들인 명종(明宗)의 만수무강과 후손 탄생을 기원하며 제작한 400점의 불화 중 하나다. 경기도 양주 회암사(檜巖寺)의 중창에 맞춰 조성된 것이다.

승려 보우(普雨)가 쓴 화기(畵記)에 의하면, 당시 석가약사·미륵·아미타불의 부처‧보살을 소재로 금니화(金泥畵)와 채색화(彩色畵) 각 50점씩 총 400여 점의 불화를 조성했다고 한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문정왕후는 불교 후원자로서 회암사의 대대적인 불화 조성을 추진하며, 많은 불사(佛事)를 일으켰다. 회암사는 문정왕후의 후원을 받은 승려 보우의 활동기에 전국 최대 규모의 왕실 사찰로 번창하다가 이후 쇠퇴하여 19세기 초 폐사지가 되었다. 지금은 ‘회암사지(檜巖寺址)’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화는 가운데 본존인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에 월광보살(月光菩薩), 오른쪽에 일광보살(日光菩薩)을 배치한 간략한 구도로, 금니(금물)로 그려 매우 화려하고 격조 있는 품위를 보여준다. 주존불과 보살 간에 엄격한 위계를 두어 고려불화의 전통을 따랐고 갸름한 신체와 작은 이목구비 등 조선 전기 왕실 발원 불화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당시 제작된 총 400점의 불화는 대부분 흩어져 현재 미국과 일본 등지에 총 6점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국내에는 ‘약사여래삼존도’만이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조선 시대 최대 규모 왕실 불사 회암사에서 제작한 역사적, 불교사적으로 상징성이 높은 작품이다. 조선 전기 왕실불교 부흥에 영향을 끼친 왕실 여성들의 활동과 궁중화원이 제작한 불화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 보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 경기도 양주 회암사터(檜巖寺址) 전경 /문화재청

 

② 보물 제2011호 목포 달성사(達聖寺) 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十王像) 일괄

1565년(명종 20년) 향엄(香嚴) 등 5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으로, 지장삼존(地藏三尊), 시왕(十王), 판관(判官)과 사자(使者) 등 19구로 이루어진 대단위 불상군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조성된 불상조각 중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이 모두 남아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서 역사적‧조각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특히, 지장보살상의 경우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에 올린 반가(半跏) 자세를 취하고 있어 ‘강진 무위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312호)’의 지장보살상, ‘봉화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상(보물 제1666호)’과 더불어 조선 전기의 보기 드문 형식으로 희소성과 조형적 가치가 뛰어나다.

 

③ 보물 제875-3호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 권3

④ 보물 제1543-2호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 권5

불교의 경전인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중 각각 권3과 권5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불교 의식 중 하나인 참회법회(懺悔法會)를 통해 부처의 영험을 받으면 죄를 씻고 복을 누리게 되며, 나아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발원(發願)의 내용을 담고 있다.

권3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통된 판본(版本) 중 하나로, 1352년(고려 공민왕 1년)에 간행되었다는 보물 제875호의 말미에 있는 기록을 통해 권3 역시 이 시기에 인출(印出)된 것으로 판단된다.

권5는 1316년(충숙왕 3년) 처음 판각된 후 조선 초기에 인출(印出)된 판본으로 추정된다. 절첩장(折帖裝) 형식으로, 모두 선장본(線裝本) 형태로 장정된 기 지정본과 차별될 뿐 아니라 고려 시대 유행한 장정(裝幀)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본문 전체에 걸쳐 조선 초기에 사용된 구결(口訣, 한문을 이해하기 위해 표기한 토)이 표시되어 있어 당시 불교학‧서지학‧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회암사 중창 관련 현존하는 문정왕후 발원 불화 목록

 

연 번

작품명

연대

재질 및 크기(cm)

소장처

비 고

1

석가여래삼존도

(釋迦如來三尊圖)

1565년

(명종20)

비단에 채색

(69.5×33.0)

미국 버크컬렉션

(Burke Collection)

 

2

석가여래삼존도

(釋迦如來三尊圖)

1565년

(명종20)

비단에 채색

(53.2×28.8)

일본 강선사

(江善寺)

 

3

약사여래삼존도

(藥師如來三尊圖)

1565년

(명종20)

비단에 채색

(53.4×33.2)

일본 보수원

(寶壽院)

 

4

약사여래삼존도

(藥師如來三尊圖)

1565년

(명종20)

비단에 채색

(56.0×32.1)

일본 용승원

(龍乘院)

 

5

약사여래삼존도

(藥師如來三尊圖)

1565년

(명종20)

비단에 금니

(58.7×30.8)

일본 덕천미술관

(德川美術館)

 

6

약사여래삼존도

(藥師如來三尊圖)

1565년

(명종20)

비단에 금니

(54.2×29.7)

국립

중앙박물관

‘19.01.03.

보물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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