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라왕 거주공간 실체가 드러나다…무덤에 별자리도
상태바
안라왕 거주공간 실체가 드러나다…무덤에 별자리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2.18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안 아라가야 왕성 추정지에 군사시설로 보이는 건물지 다수 발굴

 

문재인 대통령이 고대국가 가야에 관심이 많으니까, 문화재 관련 기관들이 가야 흔적을 찾기 위해 경상남도, 전라남도 일대의 땅을 파헤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곳곳에서 가야의 무덤과 집터, 성터, 토기제작터가 나오고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 공식 역사서에서 가야는 미스터리 국가로 남아 있지만, 땅속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실체를 보여준다.

이번엔 경남 함안에 본거지를 둔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왕성터를 파헤쳐 많은 유물이 나왔다. 가야 연합의 종주국이었던 금관가야의 왕성터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방계 국가인 아라가야의 왕성터는 실체가 뚜렷하게 그려지고 있다.

「일본서기」 흠명기 544년과 552년 기록에 ‘안라왕’(安羅王, 아라가야(安羅)의 임금)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번 발굴지가 안라왕의 실제 거주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할수 있을 것이다.

 

▲ 함안 아라가야 왕성터로 추정되는 유적지 전경 /문화재청

 

그동안 함안군 가야리 일대는 1587년에 제작된 조선 시대 읍지(邑誌) 「함주지」(咸州誌)와 일제강점기의 고적조사보고에서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또 이곳은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도 아직 남아 있어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까지 실질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실체를 밝힐 수 없었다.

발굴현장은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로 말이산(末伊山)는 얕은 구릉이다. 해발 50m의 이 구릉은 함안천과 광정천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상부에 100기의 대형 무덤군이 자리잡고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이곳에서 추정왕성지와 13호 고분을 발굴조사한 결과, 아라가야의 대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를 토대로 아라가야 왕성터의 실체를 그려본다.

 

①토성

지난 5월 발굴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木柵, 울타리) 시설이 발굴되었다.

토성의 규모는 현재 조사구역(2필지, 약 1,300㎡) 내에 한정 짓는다면, 전체 높이는 8.5m, 상부 폭은 20m~40m 내외이며, 규모로 치면 동시기 가야권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다.

그동안 가야권역에서 발견된 유적과 비교할 때, 이 토성은 축조기법과 규모에서 사례를 찾을수 없는 특이하다. 흙을 쌓는 과정에서 성벽이 밀리지 않도록 축조 공정마다 나무기둥(목주, 木柱)을 설치했으며, 판축 과정에서 흙을 쌓아 다지는 등 매우 정교한 축조기법을 사용했다. 성벽 상부에는 2열의 나무기둥이 확인되는데, 방어시설인 목책으로 추정된다.

 

▲ 함안 아라가야 왕성터로 추정되는 유적지 전경 /문화재청

 

② 망루 등 건물지 14동

망루‧창고‧고상건물‧수혈(竪穴, 구덩이)건물, 집수지 등, 군사시설로 보이는 건물지가 다수 발견되었다.

현재 확인된 건물지는 모두 14동으로, 수혈건물지 12동과 고상건물지 2동이다. 중앙에 빈터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분포하고 있어 왕성 내부의 공간배치에 대한 의도적인 기획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 중에는 부뚜막이 설치된 것이 있는데, 특히, 10호 건물지는 판석(板石, 쪼갠 돌)을 세워 긴네모꼴의 정교한 건물터를 조성하고, 길이 약 5m의 부뚜막을 설치하였다. 이것은 가야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구조로, 고고학뿐만 아니라 고대 건축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7호 건물지는 길이 8×6m의 대형건물지로 내부에서 다수의 쇠화살촉(철촉, 鐵鏃)과 작은 칼(소도자, 小刀子), 말발걸이(등자, 鐙子) 등이 발견되었는데, 조리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창고로 추정된다.

이밖에 다른 수혈건물지에서도 쇠화살촉과 쇠도끼(철부, 鐵斧), 비늘갑옷(찰갑, 札甲) 조각, 토기받침(기대, 器臺) 조각, 기호가 새겨진 손잡이잔(파수부배, 把手附杯) 등, 일반적인 집자리나 건물지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수혈건물지들은 철제무구로 무장한 군사집단이 왕성을 방어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거주하였던 시설로 추정된다.

고상건물지(땅위의 건물)는 망루와 대형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망루(望樓)는 규모 4.5×4.5m이며, 기둥구멍의 지름과 깊이가 약 1m인 점으로 보아, 상당한 높이의 시설로 추정된다. 대형의 고상건물지는 규모 약 30×6m로,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지역 고상건물지 중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다.

이처럼, 토성 내부에서 일반적인 생활유적에서 확인되지 않는 무구류와 건물지가 다수 확인된 점으로 보아, 왕성지 내부에는 군사집단이 상주하였으며, 이들은 일반인과 구별되는 공간에 거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전갈자리, 궁수자리의 별자리가 그려진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 13호분 돌덧널 덮개돌 아래면 /문화재청

 

③ 고분에서 별자리 덮개돌 최초 발견

말이산 고분(사적 515호) 13호분에서는 붉은 안료를 바른 구덩식 돌덧널무덤의 벽면과 125개의 성혈(星穴, 별자리 구멍)이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되었다.

말이산 13호분은 말이산 주능선(길이 1.9㎞) 중앙지점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며 봉분 규모가 지름 40.1m, 높이 7.5m에 달하는 아라가야 최대급 고분이다. 이번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에 의해 유물 수습정도로 조사된 이후 100년 만에 실시된 것이다.

돌덧널 내부의 붉은 안료는 네 개의 벽면 전체에 발려 있는데, 벽면을 점토로 바르고 그 위에 붉은 안료(물감)로 칠한 것이다. 붉은 안료를 입힌 고분은 돌방무덤에서 주로 확인되며, 가야지역에서는 돌방무덤인 송학동 1B-1호분(경남 고성군)에서 확인된 사례가 있으나, 시기적으로 앞서는 돌덧널무덤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돌덧널은 길이 9.1m, 폭 2.1m, 높이 1.8m의 최대급 규모로 도굴갱에서 수습된 유물의 연대로 보아 5세기 후반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앞으로의 가야사 연구에 상징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별자리는 돌덧널을 덮은 덮개돌 아랫면에 125개가 새겨져 있는데, 크기와 깊이는 각각 다르다. 서로 다른 별자리의 크기는 별의 밝기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별자리가 새겨진 면을 주인공이 안치되는 돌덧널 중앙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무덤 축조 당시 의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별자리는 청동기 시대 암각화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무덤에 별자리를 표현한 경우로는 고구려 고분벽화가 있다. 별자리가 표현된 위치를 보면 고분의 덮개돌 윗면에 드물게 있었으나, 돌덧널 안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최초이며, 가야무덤에서 발견된 사례 역시 처음이다. 옛 아라가야인들의 천문 사상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별자리는 현재 전갈자리, 궁수자리로 확인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가야문화의 실체 규명을 위하여 기초연구, 발굴조사, 유적 정비, 문화재 지정과 세계유산 등재 등 기반 조성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내년부터는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