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뚤린 국경 안전장치에 브렉시트 예측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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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뚤린 국경 안전장치에 브렉시트 예측 불허
  • 김인영 에디터
  • 승인 2018.12.11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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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이슈로 메이 총리, 11일 비준 연기, 노딜 가능성도

 

테리사 메이(Theresa May) 영국 총리가 11일 예정했던 브렉시트(Brexit) 합의안 의회 비준안 처리를 연기했다. 이유는 합의안이 의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언제 의회가 열려 합의안 투표를 재개할지도 불분명하고, 야당에선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거론하고 있어 영국 정가가 어수선하다.

논란의 골자는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여부다. 새로이 등장한 ‘안전장치’(backstop)이라는 이슈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오랜 갈등, 4개 연방의 유지 여부등과 맞물려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면 국내 언론에서 ‘안전장치’로 해석되는 백스톱(backstop)이 어떤 사연으로 브렉시트 막바지에서 핫이슈로 부상한 것인가.

백스톱은 야구장에서 캐처가 공을 놓쳤을 때 멀리 가지 않도록 만든 네트, 또는 농구장에서 백보드와 바스켓을 합쳐 이르는 용어다. 브렉시트 협상에서는 영국이 EU를 탈퇴한 후 국경을 넘나드는 상품에 대해 관세와 제도의 차이를 두는 일종의 안전망(safe net)을 말한다.

영국 국토는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 북쪽의 북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다. 브리튼 섬에서는 브렉시트 후 항만과 공항에 세관을 설치해 상품 유출입을 통제할수 있지만, 문제는 아일랜드 섬에서 발생한다.

아일랜드 섬은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나눠져 있고, 영국의 유일한 육상 국경이 이 곳에 있다.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국경 접경지대는 500km에 달하고, 하루 평균 4만명가량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영토는 다르지만 아일랜드 섬 자체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있는 상황이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국경에는 아무런 제한장치가 없다. 지금까지는 영국과 아일랜드가 모두 EU에 가입해 있었기 때문에 차량과 상품, 사람이 이 육상 국경을 자유롭게 오갔다. 그런데 브렉시트가 시행되면, EU에 가입해 있는 아일랜드와 탈퇴한 영국 사이에 관세와 경제제도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국경을 통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북아일랜드 국경에 펜스를 쳐서 세관을 두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 하드보더(hard border)라고 한다.

 

▲ 자료: 코트라 브뤼셀 무역관

 

여기서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해묵은 민족감정이 드러났다. 영국이 북아일랜드의 육상 국경에 금을 긋고 세관을 설치하게 되면 아일랜드 섬의 켈트족은 사실상 분단이 된다.

아일랜드는 1916년 오랜 무장투쟁의 결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었다. 그 와중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계가 많이 살고 있는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아 있었다. 아일랜드는 독립 이후에도 북아일랜드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북아일랜드 무장단체 IRA는 1968년부터 북아일랜드에서 유혈충돌을 벌였고, 그후 30년간 3,259명의 사망자와 5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1998년 4월 10일 영국과 아일랜드는 벨파스트 협정(굿프라이데이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서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 6개주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는 대신에 영국은 국경을 허물기로 합의한 바 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위해 북아일랜드에 물리적 국경을 만든다면 벨파스트 협정을 위반하게 된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저항세력이 이 새로운 국경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EU는 브렉시트 협상 초기부터 하드보더에는 강경하게 반대했다. 영국도 하드보더를 칠 경우 아일랜드의 반발이 있고, 조약 위반임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하드보더 얘기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국경을 오가는 제품에 대해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공감했다. 그것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백스톱이다.

 

그런데 백스톱의 개념은 협상 초기부터 모호했다. EU 협상 대표인 미셀 바르니에(Michel Barnier)는 처음부터 북아일랜드는 EU의 관세지역으로 남겨두고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섬만 EU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라고 요구했다.

영국은 받아들일수 없었다. 영국은 연방을 유지하려면 북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단일 경제권으로 묶여야 한다. EU의 주장대로라면, 북아일랜드가 떨어져 나가 영국이 두 개의 경제지역으로 분리되게 된다. 북아일랜드가 EU 경제권에 남게 되면 브리튼 섬도 EU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브렉시트의 의미가 없어진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를 반대했지만, 일단 총리가 되었으므로 2년전 국민투표의 뜻을 따라 브렉시트를 추진하되, 질서 있게 떨어져나가는 이른바 ‘소프트 브렉시트’를 추진해왔다. 2020년 12월말을 시한으로 단계적으로 탈퇴하면 경제에 누수현상을 줄일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북아일랜드 국경문제가 타결되지 않자 메이 총리는 탈퇴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EU에 요청했지만, EU는 애당초 없던 경과기간을 주었는데 무슨 소리냐며 들어주지 않았다.

그게 메이의 패착을 유도한 원인이 되었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애매한 개념의 백스톱에 합의해버린 것이다. 북아일랜드에 EU 조건을 수용하되, 공식적인 탈퇴시점인 2020년말까지 국경문제를 협상한다는 것이다.

합의안을 공개하기 앞서 메이 총리는 법률적 자문을 얻어 합법성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다. 하지만 합의안이 공개되자 여론이 들끓었고, 의회내 반대파들이 늘어갔다. 이 상태로 합의안을 가결하면 북아일랜드는 영원히 EU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반대파의 주장이다.

영국 보수당내 브렉시트파보다 강경한 집단이 10석의 의석을 갖고 있는 북아일랜드 정당 DPU다. 보수당은 지난번 총선에서 의석을 잃어 DPU와 연정을 구성해 간신하 과반을 넘겨 정권유지하고 있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DPU는 합의안을 거부하면서 주요 예산안 투표를 거부하고 있다.

 

합의안의 의회 비분을 연기한 후 테리사 메이 총리는 EU에 국경 안전장치에 대해 다시 협상하자고 요청했지만, EU측은 요지부동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합의안을 다시 표결에 부치면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제1야당인 노동당 지도부는 합의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면 내각 불신임을 제기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브렉시트 강경파의 주장처럼 아무런 합의 없이 2021년 1월 1일 EU를 탈퇴하는 노딜(no deal)의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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