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본에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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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본에 선전포고
  • 김인영 에디터
  • 승인 2018.12.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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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일원으로 대일 작전 수행…국내 진입 시도했으나 일본 항복으로 무산

 

일본이 미국령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한지 3일 후인 1941년 12월 1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 선전 성명서에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한국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이 되어 국제적인 활동을 펼쳤다.

앞서 194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직할 군대조직으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광복군은 방송과 선전물을 통해 애국청년과 일본군에 징병되어 온 한국청년을 이끄는 일에 힘썼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자료: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일 선전 성명서

우리는 3,000만 한국인 및 정부를 대표하여 중국⋅영국⋅미국⋅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리아 및 기타 제국의 대일 선전 포고를 삼가 축하한다. 이것은 일본을 쳐부수고 동아시아를 재창조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이에 특히 아래와 같이 성명서를 낸다.

1. 한국 전체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였고, 일개 전투 단위가 되어 축심국에 대하여 선전 포고한다.

2. 1910년 합병 조약 및 일체 불평등 조약이 무효임을 거듭 선포한다. 아울러 반침략 국가들이 한국 내에 가지고 있는 합리적 기득권익을 존중한다.

3. 왜구를 한국⋅중국 및 서태평양에서 완전히 축출하기 위하여 혈전으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한다.

4. 맹세코 일본이 비호하여 조성된 창춘 및 난징 정권을 승인하지 않는다.

5. 나구선언(羅邱宣言) 각 조를 단호히 주장하며 한국 독립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용하며 이것으로 인해 특히 민주 전선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하한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 외무부장 조소앙

대한민국 23년(1941) 12월 10일

 

이날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과 외무부장 조소앙 선생이 대표로 대일 선전 포고 성명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존재와 자주독립의 의지를 알림과 동시에 연합군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여하겠다는 뜻이었다.

임시정부의 선전포고와 함께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태평양전쟁에 참가한다. 중국에서는 중국군과 연합해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고, 버마(미얀마), 인도 전선까지 파견되어 영국군과 연합 작전을 수행했다.

광복군은 국내로 진입해 일본군과의 전면전을 벌이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었다. 이 작전은 총사령관 지청천, 지대장 이범석 선생 등을 중심으로 광복군이 직접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우리 힘으로 국권을 되찾으려고 한 시도였다.

이 작전은 중국에 주둔하던 미군과 연합해 추진되었으나, 아쉽게도 실행에 옮길 기회가 오지 않았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기 때문이다.

한국광복군은 9월에 국내로 진입해 일본군과의 전면전을 준비했으나, 작전에 앞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다. (자료참조: 국가보훈처)

 

▲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 직원 일동(자료: 국사편찬위원회)
▲ 훈련 중인 한국광복군(자료: 국사편찬위원회)
▲ 임시정부 국무위원 일동(자료: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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