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왕가 보물, 국립고궁박물관서 만난다

12월 5일~내년 2월 10일…특별전 위해 알로이스 대공세자 방한 김현민 기자l승인2018.12.04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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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의 소국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왕가의 보물이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관람할수 있게 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국외왕실 특별전시의 하나로 5일부터 2019년 2월 1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과 1층 기획전시실에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특별전을 개최한다.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공국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한 국가로, 가문의 성(姓)이 곧 국가의 공식 명칭인 나라 중 하나다. 영토의 크기가 서울의 4분의1 정도(약 160㎢)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작은 국가이며 ‘대공’(Fürst, Prince)을 국가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을 위해 알로이스 리히텐슈타인 대공세자가 방한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국무총리를 접견했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4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알로이스 리히텐슈타인 대공세자를 접견, 인사 및 환담을 나누고 있다. /국무총리실

 

이번 전시에서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에서 가문의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조성해 온 세계 최고 수준의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LIECHTENSTEIN: The Princely Collections)’ 소장품을 바탕으로 왕가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 1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에서는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오스트리아 동부 지역에서 발흥하여 체코 지역까지 세력을 넓힌 내용을 담은 문서와 카를 1세가 대공에 오른 후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통치한 내용을 그린 초상화, 연수정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 가문의 문장을 새겨 만든 ‘마이엥크루그’(뚜껑이 달린 병) 등을 소개한다.

▲ 2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생활 문화’에서는 왕가의 생활과 미술품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궁전의 그림과 그곳에서 사용했던 화려한 가구를 소개한다. 특히, 색깔 있는 돌을 짜 맞추어 장식한 석상감(石象嵌)인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 기법으로 장식한 함과 알로이스 1세 대공비를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으로 묘사한 프랑스 신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 초상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의 대형 유화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이 주목할 만하다.

▲ 3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도자기’에서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빈 황실도자기공장(합스부르크 황실 소속)에서 제작하여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수입해 사용한 다양하고 아름다운 장식 도자기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이 로마에서 사용하기 위해 주문 제작한 은식기도 감상할 수 있다.

▲ 4부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말 사육과 사냥’에서는 유럽 귀족 사회의 특권이었던 말 사육과 사냥, 총기와 관련한 그림, 기록 등이 소개된다.

▲ 5부 ‘리히텐슈타인 대공의 미술품 수집과 후원’에서는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역사와 함께한 예술적인 소장품들이 전시되는데, 주로 르네상스 매너리즘과 바로크 시대의 회화와 조각을 선보인다. 이탈리아 후기 바로크의 주요 화가인 알레산드로 마냐스코(Alessandro Magnasco,1667-1749)가 ‘바카날리아’와 일명 ‘안티코’의 청동 조각 등이 주목할 만하다.

 

특별전 기간에는 전시내용과 관련한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된다. 개막 당일인 12월 5일에는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의 요한 크레프트너 관장(Johann Kräftner)이 ‘리히텐슈타인의 역사, 외교, 문화 정책’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다.

또 오는 19일과 1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클래식 공연과 함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로부터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전시 기간 중 리히텐슈타인 왕가와 관련된 명소를 담은 엽서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의 우표 스탬프(도장)를 찍어 간직할 수 있는 행사도 마련하였다. 이 행사는 엽서 소진 시까지만 진행된다.

이 밖에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활동지를 통해 알기 쉽게 학습하는 ‘활동지와 함께 하는 전시해설’과 초등학생(4~6학년, 회당 10명)을 포함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전 연계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전화(☎02-3701-7634)로 문의하면 된다.

 

리히텐슈타인 왕가는 12세기에 오스트리아 인근에서 발흥한 약 900년 역사의 귀족 가문으로, 1608년 카를 1세(Karl Ⅰ von Liechtenstein, 1569-1627)가 대공의 지위를 합스부르크 황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왕가의 기초를 세웠다.

1719년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Anton Florian Ⅰ von Liechtenstein, 1656-1721)이 셸렌베르크(Schellenberg)와 파두츠(Vaduz) 지역을 합쳐 공국을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되어 내년에 개국 300주년을 맞는다.

현재는 한스-아담 2세 대공(Hans-Adam Ⅱ, 1945~)이 국가 원수로 있으며, 가문의 오랜 전통에 따라 아들 알로이스 대공(Alois, 1968~) 세자가 실질적인 국정을 맡아 섭정을 하고 있다.

 

▲ 리히텐슈타인 위치

 

 

 

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리히텐슈타인 왕가 보물 소개

 

▲ 자료: 문화재청

 

①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성립을 카를 6세 황제로부터 인정받은 문서

Emperor Charles VI unifies the County of Vaduz and the Seigniory of Schellenberg and raises them to a principality bearing the name of Liechtenstein

1719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 황제가 파두츠와 셸렌베르크의 영토를 합쳐 이를 가문의 이름과 동명인 리히텐 슈타인 공국으로 승격시킨 문서로, 공국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기록이다. 붉은 벨벳으로 제본한 양피지 ‘소책자(libellous)’ 형태이고, 황실 인장은 목제 상자에 보관되어 있다. 안톤 플로리안 1세 대공은 카를 6세의 개인 교사이자 황실 수장, 그리고 수상으로서 이미 1713년에 제국 의회의 의석과 투표권을 확보하였다. 1719년 1월 23일 안톤 플로리안 1세의 요청에 따라 카를 6세는 17 세기 전반 모라비아에 잠시 존재했던 리히텐슈타인 공국을 근거로 삼아 파두츠와 셸렌베르크를 합쳐 이를 리히텐슈타인 공국으로 승격시켰다.

 

▲ 자료: 문화재청

 

②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의 ‘마이엥크루그(뚜껑 달린 병)’

디오니시오 미세로니 Dionysio Miseroni (1607~1661)

‘Maienkrug’ (vase with cover) of Prince Karl Eusebius I von Liechtenstein (1611–1684)

카를 에우제비우스 1세 대공의 ‘마이엥크루그(뚜껑이 있는 병)’로, 35푼트(약 15.87킬로그램)나 되는 연수정 한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 제작한 작품이다. 당시 가장 유명한 보석세공사 중 하나였던 디오니시오 미세로니 (Diohysio Miseroni, 1607-1661)가 제작한 것으로, 육각형의 독특한 형태는 수정의 본래 모양을 따르면서 조각 과정에서 귀중한 재료가 손실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택한 것이다. 미세로니는 약 1년에 걸쳐 이 작품을 제작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과 트로파우 공국의 합문(合紋)이 새겨진 이 ‘마이엥크루그’는 당시 왕가의 드높은 명성을 반영한다.

 

▲ 자료: 문화재청

 

③ 요한 1세 대공의 초상

요한 밥티스트 람피 Johann Baptist Lampi (1751~1830)

1816년 이전

Portrait of Prince Johann I von Liechtenstein(1760–1836)

리히텐슈타인 대공 요한 1세의 초상이다.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지녀 프랑스 혁명군 그리고 나폴레옹 (Napoleon, 1769~1821)과 맞선 전쟁에 참전하였다. 상대편이었지만 요한 1세는 나폴레옹의 인정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1806년에 주권국으로서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라인 동맹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군사적 재능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에 무기를 그려 넣었다. 1815년에는 새로 설립된 독일 연방에 가입하였으며 1807년부터 1810년에 걸쳐 로사우 지역의 정원궁전으로 소장품을 옮기기도 했다.

 

▲ 자료: 문화재청

 

④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

Portrait of Princess Karoline von Liechtenstein, née Countess von Manderscheidt-Blankenheim, as Iris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 Elisabeth Vigée-Lebrun(1755-1842)

1793년

하늘의 여신인 아이리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알로이스 1세 대공비 카롤리네(Karoline, 1768-1831)의 초상이다. 프랑스의 위대한 신고전주의 초상화가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이 1793년에서 1794년경에 빈을 방문하였다가 알로이세 1세의 의뢰를 받아 그렸다. 알로이스 1세는 1790년에 개조한 헤렌가세의 리히텐슈타인 궁전에 걸기 위해 이 그 림을 주문하였으며, 비제-르브룅은 신화적인 배경을 설정하여 카롤리네 대공비의 초상 을 아름다운 아이리스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회고록에서 비제-르브룅은 대공비의 섬세한 이목구비에서 영감을 받아 그녀를 구름 위를 떠다니는 신들의 전령으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고 기술하였다.

 

▲ 자료: 문화재청

 

⑤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함

Ornate Pietra Dura Chest 오타비오 미세로니 Ottavio Miseroni, 줄리아노 디 피에로 판돌피니 Giuliano di Piero Pandolfini

1620-1623년 경

카를 1세 대공이 프라하의 카스트루치 공방에 주문하여 제작한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장식된 함이다. 상자의 정면에는 카를 1세 대공의 합일문자와 문장이 묘사되었는데,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봉직하여 보헤미아 총독 자리에 오른 대공 가문의 지위 상승과 이들의 실질 적인 권력을 드러내는 무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패널은 조반니 카스트루치와 그의 아들 코시모, 그리고 조반니 카스트루치의 사위 줄리아노 판돌피니가 약 10여 년 이상에 걸쳐 작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종적으로 상자를 완성한 자는 오타비오 미세로니로 추측된다. 피에트라 두라 기법은 준보석을 상감하여 모자이크 회화를 만드는 방식으로, 고대에서부터 시작되어 16세기 말 피렌체에서 그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신성로마제국의 루돌프 2세 (Rudolf II, 1552-1612) 황제가 프라하에 설립한 카스트루치 공방은 회화적인 주제를 표현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발전시켰다. 특히 이상적인 풍경을 묘사하는 데 있어 작은 색면과 돌의 자연적인 무늬를 잘 활용하여 인상주의적으로 표현하였다.

 

▲ 자료: 문화재청

 

⑥ 리히텐슈타인 만찬 및 디저트용 식기 세트 중 ‘주름이 진 그릇(몬티스)’과 유리잔

"Sceau crennelé“ (monteith) and Liqueur Glasses from the Liechtenstein Dining and Dessert Service

조르겐탈 시기 빈 황실도자기공장 Imperial Porcelain Manufactory Vienna, Sorgenthal Era (1784– 1805)

1784-1787년

알로이스 1세 대공이 빈 황실도자기공장에 주문 제작한 연회용 식기 세트 중 하나로, 유리잔을 차게 식히는데 사용되었던 ‘몬티스(Monteith)’이다. 프랑스의 세브르도자기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기초로 만들진 이 식기의 섬세한 장식은 일명 ‘왕의 청색(bleu-du-roi)’으로 불렸던 짙은 청색 바탕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우아하게 절제된 금 장식 및 흰색 배경의 창을 내어 그 안에 다채로운 색상의 꽃다발 문양을 그리는 방식 역시 베르사유에서 선호하던 전형적인 취향과 유사하다. 몬티스는 대체로 타원형의 또는 원형의 용기로 유리잔의 다리를 걸쳐놓을 수 있도록 가장자리를 주름 모양으로 다양하게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형식의 식기는 17세기부터 은제, 유리제,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를 사용해 제작되었고, 18세기부터는 유럽에서 생산한 도자기로 만들어져 고급 식사용 식기 세트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몬티스는 가장자리의 주름진 부분에 와인 잔의 발 부분을 걸어 잔 부분이 얼음물에 잠기도록 하여 사용했다.

 

▲ 자료: 문화재청

 

⑦ 흰 포도와 꽃이 있는 정물

Floral Still-Life with White Grapes

빈 황실도자기공장 Imperial Porcelain Manufactory, Vienna (1744–1864), 요제프 니그 Joseph Nigg

1838년

황실 도자기공장의 수석 화공인 요제프 니그가 제작한 꽃 정물화 도자기 그림이다. 이 그림은 19세기 빈 도자기공장이 이룩한 고도의 예술적 그리고 기술적인 경지를 잘 보여준다.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변색되기에 다루기 힘든 재료인 에나멜을 안료로 사용하여 아름다운 정물화 도자기 그림을 만들어 내었 다. 니그는 미술아카데미에서 빈의 꽃 정물화 화파의 창시자 요한 밥티스트 드렉슬러(Johann Baptist Drechsler, 1756-1811)에게 사사했다. 1800년 8월 1일에 빈 도자기공장의 ‘꽃 그림 수업’을 수강한 니그는 1816년에 수석 화공으로 승진하였으며 이 분야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가 그린 네덜란드 거장들 의 모작이나 빛의 표현과 가벼운 분위기가 돋보이는 그의 꽃 정물화는 오스트리아 황제가 유럽의 궁정 에 보내는 가장 귀중한 외교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 자료: 문화재청

 

⑧ 석궁 & 크레인퀸

Crossbow and Cranequin for a Crossbow

독일

석궁: 1547년, 크레인퀸: 1580-1590년 경

석궁과 석궁의 활시위를 당길 수 있는 장치인 크레인퀸이다. 유니콘의 사냥 등의 알레고리로 장식되었 으며, 사냥용이다. 1932년에 리히텐슈타인 대공 가문이 슈타이어마르크의 칼팡(Kalpang) 지역을 취득하 게 되면서 이 석궁과 크레인퀸을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이 소장하게 되었다. 중세 후기에 석궁은 기 병대에 상당히 위협적인 무기였으며, 석궁이 도입되면서 판갑옷이 빠르게 발전하였다. 이 짧지만 강력한 활을 맨손으로 당기기란 불가능했기에 활이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필요했다. 기 록에 15세기부터 등장하는 소위 ‘크레인퀸’이라 불리는 장치는 걸개와 작은 톱니를 이용하여 활시위를 당길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다.

 

▲ 자료: 문화재청

 

⑨ 1760년 9월 3일 리히텐슈타인 대공 요제프 벤첼 1세의 파르마 입성을 위해 제작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문장이 있는 마구

Horse Trapping with Coat of Arms of the Princely House of Liechtenstein, made for the Entry of Prince Joseph Wenzel I von Liechtenstein (1696-1772) into Parma on 3 September 1760

페터 안톤 디르케스 Peter Anton Dierkes

1760년 경

요제프 벤첼 1세 대공이 합스부르크 황실의 혼인을 위해 파르마에 입성하는 행사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마구로, 붉은 벨벳에 전리품으로 둘러싸인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문장을 입체적으로 수놓아 제작하였다. 이 마구는 요제프 벤첼 1세가 프란츠 1세 황제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장남 요제프대공(Joseph, 1741-1790, 후에 요제프 2세 황제)가 부르봉-파르마의 공주 이사벨라(Isabella, 1741-1763)와 혼인할 때 신 부를 파르마에서 빈으로 모셔 오기 위해 사용한 행렬에 사용되었다. 이 때 사용한 마차는 그가 22년 전 파리에 황실의 대사로서 공식적으로 입성할 때 탔던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황금 도금한 마차로, 당시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지금은 리히텐슈타인의 정원궁전에 전시되어 있다.

 

▲ 자료: 문화재청

 

⑩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Judith with the Head of Holofernes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Cristofano Allori

1613년

이탈리아 매너리즘 시기의 뛰어난 화가인 크리스토파노 알로리가 아시리아 군의 진영으로 들어가 홀로 페르네스 장군의 목을 베어 온 유대인 과부 유디트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이 주제는 17세기 초 크게 유행하였는데, 유디트라는 인물은 미덕과 강인함의 화신이자 독실한 여성의 본보기였다. 알로리는 다양한 버전의 ‘유디트’를 그렸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 현재 피렌체의 팔라초 피티 (Palazzo Pitti)에 소장되어 있으며, 리히텐슈타인 왕실컬렉션의 이 그림 역시 뛰어난 작품으로 알로리의 ‘유디트’ 연작 가운데 걸작에 속한다. 17세기의 전기 작가이자 미술사학자 필리포 발디누치(Filippo Baldinucci)는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머리가 알로리 자신의 초상이며, 유디트의 얼굴은 알로리와 염문이 돌았던 피렌체의 유명한 여인 마리아 디 조반니 마자피리, 일명 ‘라 마자피라’의 것이라 주장하였다.

 

▲ 자료: 문화재청

 

⑪ 환상 속 고대 건축물의 폐허가 있는 바카날리아

Bacchanal with Capriccio of Antique Ruins

알렉산드로 마냐스코 Alessandro Magnasco (1667–1749),

클레멘테 스페라 Clemente Spera(1661?-1742)

이탈리아 후기 바로크의 주요 화가인 알레산드로 마냐스코(Alessandro Magnasco,1667-1749)가 ‘바카날리아’를 주제로 그린 작품이다. 폐허가 된 고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생동감 넘치고 다채로운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반인반수의 괴물인 사티로스 한 쌍이 커다란 향로를 들고 있으며, 이미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다른 이들은 기둥의 크기를 재어보려 하고 있다. 님프들은 향로를 휘두르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건축물 부분은 마냐스코의 동료 화가 클레멘테 스페라(Clemente Spera, 1661?-1742)가 그렸다. 바카날리아는 주신(酒神) 바쿠스 신을 기리는 숭배 연회로 기원전 2세기경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바카날리아는 매년 봄철 작물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때 아벤티노 언덕에서 행해졌다. 이러한 축제는 기원전 2세기 초에 격렬하고 방탕한 광란의 잔치로 변모하였다.

 

▲ 자료: 문화재청

 

⑫ 사자 가죽을 두른 헤라클레스

Hercules with the Lion’s Skin

피에르 야고보 알라리–보나콜시, 일명 안티코

Pier Jacopo Alari–Bonacolsi, gen. Antico (1455?-1528)

1500년경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 피에르 야코보 알라리-보나콜시, 일명 안티코가 제작한 청동 도금 조각상으로, 사자 가죽을 두른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청동 조각의 제작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안티코는 이 헤라클레스의 청동상에서도 주물과 조각 솜씨, 은상감으로 표현한 눈, 고색의 표현, 제작 당시 더한 도금까지 모든 측면에서 훌륭한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안티코는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의 곤차가 가문 궁정에서 활동했던 작가로, 고전과 고대의 예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의 별명이 고대를 뜻하는 ‘안티코’라는 점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금 세공 작업 외에도, 그는 고대부터 인기 있었던 청동을 재료로 고전 양식의 흉상, 조각상, 부조 등을 전 문적으로 제작했다. 안티코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는 르네상스 시대 가장 중요한 예술 후원자이자 수집가 이자벨라 데스테(Isabella d’Este, 1474-1539)였다.

 

 

 

 

 

 


김현민 기자  inkim23475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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