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흥왕리에 고려 별궁 존재 규명

강화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건물지 2기, 배수로, 석축 등 이궁지 확인 김현민 기자l승인2018.12.0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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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강화도로 천도해 저항했다. 고종 19년(1232년)부터 원종 11년(1270년)까지 39년까지다. 이 기간동안 고려 조정은 강화읍 관청리 소재 고려 궁지 이외에 이궁을 지었다고 했다. 그 이궁지가 확인되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 9월부터 추진 중인 강화 흥왕리 이궁터 발굴조사에서 고려 시대 건물지와 배수로, 석축 등의 시설물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 강화 흥왕리 이궁지 조사지역 /문화재청

 

강화 흥왕리 이궁은 고종 46년(1259) 산에 궁궐을 지으면 국가의 기업(基業)을 연장할 수 있다는 교서랑(校書郎) 경유(景瑜)의 진언에 따라 강화도 마니산 남쪽에 건립된 곳이다. 2000년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에 의해 한 차례 지표조사를 진행해 축대와 건물지의 존재가 확인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흥왕리 이궁터의 첫 번째 학술발굴조사로서,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는 건물지의 동쪽 평탄대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조사 지역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시기를 달리하는 시설물이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조사 지역의 남쪽에는 13세기로 추정되는 시설물들이 분포하는데, 동서방향의 석축(동서석축1)을 쌓아 한 단 가량 높은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쪽에 건물지(건물지1)와 배수로, 남북방향의 석축(남북석축1)을 평행하게 배치했다.

건물지의 북쪽에서는 건물지 윗면에 동서방향의 석축(동서석축2)과 담장이 중복으로 조성되기도 하였다. 한편, 조사 지역의 북쪽에서는 고려 말~조선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 2기(건물지2·3)와 배수로가 확인되었다.

 

▲ 조사지역 남쪽 유구 노출 /문화재청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시설물은 이궁의 중심권역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으로만 전하던 이궁의 존재를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13세기 이궁의 건립 이후 여말선초까지 그 구조와 배치, 성격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크다고 발굴팀은 진단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흥왕리 이궁터에 대한 중장기적 학술조사 계획을 수립하여, 이궁의 구조와 범위 등 실체 파악을 위한 체계적인 학술조사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다.

 

▲ 강화 흥왕리 이궁터 발굴조사 현장 /문화재청
▲ 이궁지 출토 유물 /문화재청

김현민 기자  inkim23475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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