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 부인 가네코 후미코, 건국훈장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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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부인 가네코 후미코, 건국훈장 받는다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8.11.1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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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회 순국선열의 날…건국훈장 28, 건국포장 17, 대통령표창 83 등 128명

 

국가보훈처는 17일(토) 제79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 안맥결 여사, 박열 의사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여사, 차이석 선생의 아내 홍매영 선생, 기전여학교 4명의 여학생 등 여성 32명을 포함해 총 128명의 독립유공자에게,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가네코 후미코(1903~1926)는 일본인으로, 한국이름은 박문자(朴文子)다.

일본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양육을 거부당해 출생신고를 못해 학교도 제때 다니지 못하는등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1922년 박열과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1923년 4월 박열과 함께 아나키즘 단체인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해 함께 활동했다. 간토(關東) 대지진 때 연행당했다. 일왕을 암살하려한 대역죄 명목으로 1926년 사형을 판결받았다. 옥중에서 박열과 결혼해 박씨 문중의 사람이 되었다.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됐으나,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후에 박열의 형이 유골을 인수해 고향인 문경에 안장했다.

 

▲ 박열 부부 /영화 ‘박열’ 사이트
▲ 왼쪽은 동일일보가 보도한 박열 부부 사진, 오른쪽은 영화속 장면 /영화 사이트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8명(애국장 9, 애족장 19), 건국포장 17명, 대통령표창 83명으로, 포상자 가운데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32명이다.

건국포장이 추서되는 도산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조카 안맥결(安麥結) 여사는 1919년 10월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 중 만세시위에 참여하다 체포됐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또 3·1운동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김학준(金學俊) 선생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항일 격문을 배포하고 중국 남경군관학교에 보낼 훈련생을 모집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박문희(朴文嬉)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다.

이와 함께 3·1운동보다 앞선 제주 법정사 무장 항일시위에 참여한 4인의 농민과 어린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기전여학교 4명의 여학생들에게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한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9회 순국선열의 날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각각 수여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총 1만5,180명(여성 357명)이며, 이 중 건국훈장은 1만0,940명, 건국포장 1,270명, 대통령표창 2,970명 등이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도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 관련기관과의 사료수집 협업 체제 강화를 통한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여성과 무명의 의병 등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한편, 제79회 순국선열의 날 포상자 중 주요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은 다음과 같다.

 

▲ 3․1운동보다 앞선 제주 법정사 무장 항일시위에 참여한 4인의 농민

제주도 법정사의 무장 항일시위에 참여한 4명의 농민들에게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김인송(金仁松)․김항률(金恒律)․오인식(吳寅植)․이봉규(李奉奎) 선생 등은 1918년 10월 제주도 좌면 하원리 등지에서 법정사 승려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무장 항일시위에 참여했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고 2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알려진 이 항일 대중시위는 3․1운동보다 5개월 앞서 일어난 제주도 내 최초이자 최대의 집단적 항일투쟁으로 꼽힌다. 1918년 10월 7일 법정사 승려와 신도들을 중심으로 제주도 도순리, 지금의 서귀포 일대 마을 주민 700여 명이 참여해 일본인 축출과 국권회복을 주장했다. 일제는 법정사 항일운동의 파급을 우려하여 제주가 아닌 목포로 사건을 이송하여 46명에 실형을 언도하였다. 네 분에 대한 포상은 판결문(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1919.2.4)에서 활동내용을 확인하고 3개월로 되어 있던 수형․옥고기준을 폐지하여 3개월 이하라도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렀거나, 벌금형도 독립운동 내용을 감안해 포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심사기준이 개선됨으로써 이루어졌다. 올해로 발발 100주년을 맞는 제주 법정사 항일투쟁으로 포상이 된 분은 33명에 이른다.

 

▲ 3․1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악형으로 순국한 김학준 선생

3․1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순국한 김학준(金學俊)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곡물상 출신으로 1919년 3월 중순 경 경남 동래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받고 부산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출옥 직후 옥고 여독으로 순국하였다. 순국 당시 선생의 나이는 불과 34세였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일제의 수형기록인 「신분장지문원지」에서 수형내용을 확인하고 「3․1운동 피살자 명부」(1953)와 제적부에서 사망 연월일 등이 파악되어 이루어졌다. 집행유예를 받았음에도 출옥한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아 순국한 것을 보면 일제의 폭력과 고문이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 재미한인사회까지 알려진 기전여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 투쟁

어린 나이에 3․1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4명의 여학생들에게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최애경(崔愛敬)․최금수(崔金洙)․김순실(金淳實)․정복수(鄭福壽) 선생 등은 1919년 3월 13일 전북 전주 기전여학교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남문 밖 시장 부근에서 수백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다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특기할 것은 수감 후 동료학생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벌이고 일제의 심문과 판결을 거부하는 등 과감한 옥중투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제 검사가 “군함 대포도 없고 군사도 없고 철도도 없는데 독립을 어떻게 하겠는가” 묻자 “지금부터는 대포 군함과 병정, 철도가 없어질 것이어늘 오늘에 이것을 물으니 참 우둔한 왜놈이로다” 하는가 하면 “누가 너희를 시키더냐”고 하자 “하늘님의 감동으로 온 전국이 옳은 것을 잡고 일어나 독립을 부르거늘 누가 시킨다 하는 것이 무슨 말이냐. 이는 사람의 시킴이 아니오, 하늘이 시키는 것이라 너희 왜놈들이 참 어리석은 섬놈들이다”라고 질타했다. 이들의 기개와 활약상은 「신한민보」(1919.6.7)를 통해 태평양 건너 미주 한인사회에까지 알려졌다.

 

▲ 찬연히 빛나는 의열단 투쟁 속에 가려진 가족의 헌신, 박문희 선생

항일 격문을 배포하고 중국 남경군관학교에 보낼 훈련생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박문희(朴文嬉)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25년 경남 동래에서 동래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1929년 신간회 상무위원으로 항일격문을 배포하다 체포되었다. 1932년 8월 중국 남경에서 의열단에 입단하였으며 단장 김원봉(金元鳳)으로부터 남경군관학교 훈련생 모집을 요청받고 돌아와 경상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훈련생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의열단장인 약산 김원봉의 처남으로, 박차정(朴次貞)(’95 독립장)의 오빠가 된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동아일보」등 신문, 「특고월보」와「사상월보」,「신분장지문원지」일제 측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선생의 활동내용을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한국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의열단의 혁혁한 투쟁에 가족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광복군의 살림을 도맡은 홍매영 선생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광복군 활동을 지원한 홍매영(洪梅英) 선생께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42년 중국 중경에서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광복군의 생활과 운영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한책임한국광복군군관소비합작사(有限責任韓國光復軍軍官消費合作社) 사원으로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동을 헌신적으로 지원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중앙감찰위원장 등을 지낸 차이석(車利錫) 선생(’62 독립장)이 남편이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으로 활약한 차보석(車보錫) 선생(’15 애족장)이 시누이다.

 

정부포상자 명단(128명)

 

< 건국훈장 애국장 (9명) >

가네코후미코 金子文子 (일본방면) 강영갑 姜永甲 (국내항일) 김응호 金應浩 (3·1운동)

김태황 金泰璜 (3·1운동) 김택영 金澤榮 (계몽운동) 김학준 金學俊 (3·1운동) 손봉선 孫鳳善 (만주방면) 장봉현 張奉賢 (3·1운동) 최영암 崔永岩 (만주방면)

 

< 건국훈장 애족장 (19명) >

김달섭 金達涉 (3·1운동) 김봉길 金鳳吉 (3·1운동) 김용환 金容煥 (3·1운동) 김좌봉 金佐鳳 (의열투쟁) 김학수 金學洙 (3·1운동) 김형갑 金炯甲 (국내항일) 박문희 朴文熺 (국내항일) 박시연 朴時淵 (3·1운동) 백광필 白光弼 (3·1운동) 서오룡 徐五龍 (국내항일) 우희제 禹禧濟 (3·1운동) 유기윤 柳冀允 (3·1운동) 이겸호 李謙浩 (3·1운동) 이우성 李愚誠 (국내항일) 장성란 張聖蘭 (3·1운동) 장수욱 張秀彧 (국내항일) 조복금 趙福今 (국내항일) 조순식 趙純植 (국내항일) 한능진 韓能震 (국내항일)

 

< 건국포장 (17명) >

강만조 康萬祚 (국내항일) 김구영 金龜泳 (3·1운동) 김대순 金大順 (미주방면) 김창진 金昌珍 (3·1운동) 김추신 金秋信 (국내항일) 신용주 愼鏞周 (국내항일) 안맥결 安麥結 (국내항일) 양기형 梁基亨 (일본방면) 이계창 李桂昌 (3·1운동) 정군학 鄭君學 (국내항일) 조아라 曺亞羅 (국내항일) 주길동 朱吉桐 (국내항일) 최동림 崔東林 (국내항일) 최병수 崔秉壽 (국내항일) 최판열 崔判烈 (국내항일) 태동춘 太東春 (국내항일) 홍매영 洪梅英 (중국방면)

 

< 대통령표창 (83명) >

강봉조 姜鳳祚 (3·1운동) 강석선 姜石先 (3·1운동) 강성학 姜聖學 (3·1운동) 강태산 姜泰山 (3·1운동) 강화선 康華善 (3·1운동) 권계원 權桂元 (3·1운동) 김건신 金健信 (국내항일) 김계정 金桂正 (국내항일) 김광서 金廣西 (3·1운동) 김덕빈 金德彬 (3·1운동) 김마리아 金瑪利亞 (학생운동) 김석은 金錫恩 (미주방면) 김순실 金淳實 (3·1운동) 김양선 金良善 (국내항일) 김여찬 金麗贊 (국내항일) 김영손 金榮愻 (3·1운동) 김영순 金榮淳 (3·1운동) 김영식 金永植 (3·1운동) 김영찬 金榮贊 (3·1운동) 김영헌 金榮憲 (3·1운동) 김영훈 金泳勳 (3·1운동) 김오복 金五福 (국내항일) 김인송 金仁松 (국내항일) 김인수 金仁守 (3·1운동) 김일국 金日菊 (3·1운동) 김종권 金鍾權 (일본방면) 김진찬 金辰贊 (3·1운동) 김태안 金泰晏 (3·1운동) 김항률 金恒律 (국내항일) 명제록 明濟祿 (3·1운동) 문도치 文道致 (3·1운동) 문복숙 文福淑 (3·1운동) 박기복 朴基福 (국내항일) 박두성 朴斗成 (3·1운동) 박성돌 朴聖乭 (3·1운동) 박성희 朴星嬉 (학생운동) 박은감 朴恩感 (국내항일) 박재각 朴載珏 (3·1운동) 박하경 朴夏卿 (국내항일) 박희경 朴羲庚 (3·1운동) 부기준 夫己準 (학생운동) 부병각 夫秉恪 (3·1운동) 부승림 夫升琳 (국내항일) 소은숙 邵恩淑 (학생운동) 송만섭 宋萬燮 (3·1운동) 신동악 申東岳 (3·1운동) 신용점 愼鏞點 (국내항일) 신일선 愼一先 (국내항일) 양왕석 梁旺錫 (3·1운동) 오인식 吳寅植 (국내항일) 유종식 柳宗植 (3·1운동) 윤기호 尹起鎬 (3·1운동) 윤보영 尹甫榮 (3·1운동) 윤오례 尹五禮 (학생운동) 이규회 李圭恢 (3·1운동) 이대수 李大壽 (국내항일) 이동화 李東華 (학생운동) 이병호 李丙浩 (국내항일) 이봉규 李奉奎 (국내항일) 이성규 李成圭 (3·1운동) 이소열 李小烈 (3·1운동) 이수희 李壽喜 (학생운동) 이양식 李養植 (3·1운동) 이은배 李殷培 (3·1운동) 이지봉 李枝奉 (3·1운동) 이훈영 李勳榮 (3·1운동) 임의식 林義植 (3·1운동) 장윤덕 張潤德 (3·1운동) 장활이 張活伊 (3·1운동) 정복수 鄭福壽 (3·1운동) 정술문 鄭述文 (3·1운동) 정판동 鄭判同 (3·1운동) 조병섭 曺秉涉 (국내항일) 조영탁 趙榮鐸 (3·1운동) 조현원 趙鉉元 (3·1운동) 채동팔 蔡東八 (3·1운동) 최금수 崔金洙 (3·1운동) 최문순 崔文順 (국내항일) 최성반 崔聖盤 (학생운동) 최애경 崔愛敬 (3·1운동) 한덕균 韓德均 (국내항일) 현도명 玄道明 (국내항일) 황금채 黃金彩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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