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오늘] 히틀러를 정치스타로 만든 뮌헨 폭동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에 감명…비어홀에서 쿠데타 시도하다 실패 김인영 기자l승인2018.11.07 18:00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그는 한해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로마 진군에 고무되었다.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1922년 10월 22일 나폴리에서 검은셔츠 단원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했다. 당시 총리는 계엄령을 발동하자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에게 건의했지만, 거부당했다. 퇴역장군, 정치 폭력배로 구성된 검은셔츠의 시위대가 로마로 접근해 오자 국왕은 무솔리니에게 총리직을 제의했다. 여차하면 해외로 도주할 생각을 하던 무솔리니는 총리직을 받아 파시스트 내각을 구성한다.

무솔리니의 집권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듬해인 1923년 히틀러는 나치당을 동원해 독일 바이에른주의 지방정부를 장악해 베를린으로 진군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육군 하사 출신의 34세 청년 히틀러에겐 독일은 자존심도 없는 나라였다. 1차 대전의 승전국 프랑스와 벨기에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압박하면서 1923년 1월 철강과 석탄 산업단지인 루르 지방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허약한 독일의 바이마르 정부는 배상금을 갚기 위해 인쇄기를 돌려 돈을 찍어내면서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을 방치했다. 베를린은 좌파 사회민주당 정부가 농락하고 있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우선 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바이에른주에서 쿠데타를 벌이기로 작당했다. 나치당은 생겨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1만명의 단원을 보유하고, SA와 같은 친위단체를 확보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1923년 9월 27일 바이에른주 주지사 구스타브 폰 카르(Gustav von Kahr), 총리 에겐 폰 카일링, 주 경찰 책임자 한스 리터 폰 세이서에게 함께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거사 장소로 맥주집으로 정했다. 당시 독일에는 비어가르텐이라는 대형맥주집이 성행했는데, 그곳에서 정치집회와 토론이 벌어졌다.

11월 8일에는 뷔르거브로이켈러(Bürgerbräukeller)라는 비어홀에서 공화국 혁명 5주년 기념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히틀러는 11월 6일 참모들과 쿠데타를 결의하고 다음날 구체적인 계획을 짠다.

11월 8일 오후 8시, 비어홀에 3,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주지사 카르와 바이에른주 실력자들이 입장했다. 곧이어 8시 15분 주지사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8시 30분 군중을 헤치며 히틀러가 등장하고, SA 돌격대 600여명이 기관총으로 무장한채 비어홀을 점거했다. 히틀러는 하늘을 향해 권총을 쏘며 “국민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 홀에는 우리 요원 600명이 포위했다. 아무도 나갈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베를린과 바이에른 정부는 지위를 잃었고 새 정부가 형성되었음을 선언했다.

히틀러는 나치 지도부를 동원해 주지사 카르 등 바이에른주 지도부를 옆방으로 끌고가 쿠데타 계획을 설명하고 반란 지원을 요구했다. 루덴도르프 장군의 중재로 주지사의 협력을 약속받아냈다. 이때가지만 해도 쿠데타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카르 지사를 비롯해 주정부 요인들은 그날밤 주방을 통해 도망쳤다. 날짜가 바뀌어 9일 새벽 3시, 주지사 카르는 반란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1923년 11월 9일 뮌핸 비어홀 폭동 이후 뮌헨 광장에 퍼레이드를 하는 나치당원들 /위키피디아

 

하지만 나치는 9일 비어홀에 모인 2,000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뮌헨 시내로 진출했다. 그들은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도망친 바이에른 주정부 요인들이 경찰력을 동원에 진압에 나섰다.

쿠데타 주모자들은 대부분 탈주했다. 시위대는 14명이 죽고, 해산되었다. 히틀러는 체포되었다.

히틀러는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는 법정도 정치선전의 장으로 만들었다. 히틀러는 5년 금고형을 받았지만, 9개월 징역을 살다가 석방되었다. 그가 감옥에서 구술한 책이 「나의 투쟁」(Mein Kampf)이다.

뮌헨 비어홀 폭동은 실패했지만, 무명의 히틀러를 전국 무대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 1924년 4월 1일 뮌헨 폭동 이후 재판을 기다리는 주모자들. (오른쪽 네 번째가 히틀러) /위키피디아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50-1 용산파크자이 디-412호  |  대표전화 : 02)780-9533   |  팩스 : 02) 780-9545
등록번호 : 서울 , 자00502  |  발행·편집인 : 김인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송현 Copyright © 2018 오피니언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