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좌파 집권에 염증 느낀 브라질, 극우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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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좌파 집권에 염증 느낀 브라질, 극우 선택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0.29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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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우주의 보우소나루 당선…그리스보다 과도한 복지 혜택 수술할까

 

그의 발언, 그의 성향, 그 나라의 경제적 상황, 치안 여건등을 보면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할 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독일에서 하사 출신이 총통이 되었다면, 브라질에선 대령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다르다고나 할까.

“나는 독재를 찬성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국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찰이 더 많은 범죄자를 사살해야 한다. 범죄자들은 재판 회부보다는 약식 처형해야 한다.”

"군사독재정권의 실수는 좌파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만 하고 죽이지 않은 것이다.“

“토착 원주민은 기생충이다. 빈곤율과 범죄율을 낮추는 방안으로 빈곤층의 출산을 낮춰야 한다.”

 

28일 치러진 브라질 대선에서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63)가 당선되었다. 사회자유당(PSL) 대선주자로 결선투표에서 그는 오랫동안 집권한 노동자당(PT) 후보를 10% 이상 격차로 따돌리고 브라질 대권을 거머쥐었다.

그의 당선은 오랫동안 정권을 잡은 좌파 정권의 부패 스캔들, 치안불안, 경제난, 정국 혼란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브라질은 치안 부재의 상황이다. 세계 최고의 살인율을 기록하며 지난해 살인에 의한 사망자가 6만3,880명으로 집계됐다. 보우소나루 당선인도 지난 9월 마이나스 제라이스주에서 유세도중에 괴한이 휘두르는 칼에 복부가 찔리기도 했다.

경제는 엉망이다. 실업률은 공식적으로 12%다. 인구 2억에 실업자가 1,300만명에 이른다. 국가신용도는 정크 수준이다.

게다가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12년형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고, 그의 후임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국가 회계조작으로 탄핵을 받아 쫓겨났다.

 

오랜 좌파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브라질 국민들은 극우주의 대통령을 선택했다.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범죄 척결에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닮았고, 정치적 괴변에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에 비유된다. 인종차별을 공공연하게 강조하고,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옹호하는 점에서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다름없다는 평가도 있다.

하버드대의 브라질 전문가 스콧 메인웨어링(Scott Mainwaring)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이번 선거는 정말로 극단적인 변화”라며 “라틴아메리카 선거 역사에서 지금처럼 극단주의적 지도자가 나온 것을 상상할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보우소나루 당선자가 해야 할 일은 우선 경제 개혁이다. 그는 경제팀 수장에 자유주의 경제 철학의 신봉자인 파울루 게지스를 선임할 예정이다. 게지스는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공기업 민영화와 연금·조세제도 개혁, 감세 등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당선인은 우선 일자리 창출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공공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정부 소유 부동산 매각, 정치인과 공무원의 특권 축소, 공무원 감축등을 통해 재정건선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까지 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한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과도한 복지에 노출된 브라질의 연금도 수술대에 올려놓겠다고 공언했다.

 

▲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당선인 /위키피디아

 

하지만 그의 경제 개혁 앞날이 순탄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개혁을 실행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노출될 게 눈에 보인다. 오랫동안 복지에 젖어 있던 브라질 국민들에게 복지혜택을 줄이라면 저항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브라질의 복지는 그리스보다 더 과도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브라질의 역대 좌파정권은 포퓰리즘 정책을 추구해왔다.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이다. 한 가족의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현금을 주는 제도로, 노동자 출신의 룰라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추진한 정책이다. 브라질은 태생적으로 풍요의 나라다. 인구 2억명에 우리나라(남한)보다 86배의 광활한 면적을 보유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룰라는 80%에 넘나드는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좌파 정권이 만들어낸 인기영합주의 정책의 결정판은 연금정책이다. 브라질에서 55세 정년까지 일하면서 받는 연봉보다 퇴직해서 받는 연금이 훨씬 많다. 공무원 연금은 남자의 경우 35년, 여자는 30년 이상 근무하면 각각 53세와 48세부터 수령할 수 있다. 연금 수령액은 퇴직 직전 월급을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마지막 월급 액수를 부풀리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공무원, 군인들의 연금이 후하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은퇴한 공무원을 사로잡기 위해 구애 공세를 펼치는 현상도 벌어진다고 한다. 남편이 사망한 후에도 미망인이 평생 동안 공무원 연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여성으로선 편하게 살아갈수 있는 길인 셈이다. 이 현상을 '비아그라 효과'라고 하고, 늙은 공무원 남자를 ‘슈가 대디(sugar daddy)’라고 불린다고 한다.

브라질 경제학자,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자국 연금제도를 그리스보다 더한 연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40·50대에도 직장을 그만두고 연금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우파가 정권을 잡아서 개혁에 손을 대다가 실패한 나라가 이웃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오랫동안 노동자와 서민층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 영합주의 경제정책(페론주의)에 젖어있었다. 앞서 12년간 번갈아 집권한 페르난데스 부부 대통령의 페론주의 정당은 미국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자본통제(capital contron) 조치를 취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전기를 무료로 공급했다. 경제는 엉망이 되었다.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물가는 폭등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3년전인 2015년말 대선에서 중도우파 진영의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후보를 선택했다.

마크리는 당선된후 페론주의의 포퓰리즘을 단절하고 경제 체질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외환규제를 풀고 관세율을 낮추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덕분에 가라앉던 아르헨티나 경제는 플러스 영역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고통은 심했다. 전기와 에너지 산업에 주는 국가보조금을 감축하다 보니 에너지 가격이 두배 가량 뛰었고, 재정을 줄이니 복지혜택이 줄었다. 포퓰리즘에 젖어있던 아르헨티나인들에게 금단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권 2년 되는 지난해말부터 마크리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개혁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재정적자를 줄이면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고, 물가를 잡기 위해 돈줄을 죄면 빚에 쩌들어 있는 가난한 대중이 고통스러워진다.

마크리는 연초에 슬그머니 금리를 내리고, 물가억제목표도 완화했다. 그러자 국제금융시장에서 개혁의 퇴조로 보고 돈이 빠져나갔다. 아르헨티나는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해 돈을 얻어갔지만, 그 후 페소화 폭락 사태로 또다시 금융위기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브라질 경제는 올해 그나마 1%대의 플라스 성장의 영역으로 올라서 있다. 경제체질을 바꿀 여력이 다소 있어 보인다. 히지만 오랜 좌파정권을 거치면서 공기업을 비롯해 주요 자리들이 좌파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은 개혁을 싫어 한다. 보우소나루의 새 정권이 개혁을 밀어붙일 경우 저항을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에 등장한 극우정권은 좌파와의 한 판 대결을 선언했다. 보우소나루는 야당을 파괴하고, 주요인사를 감옥에 쳐넣고, 해외추방을 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다. 치안을 위해 국민들이 총기를 가지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동안 따돌림 받던 군부출신을 중용하겠다고도 했다.

보우소나루 정권이 선거에서 약속한 험한 말을 얼마나 실천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경제 개혁, 치안 확보를 위해 상당한 충돌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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