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3] 텍사스 공화국, 미국 연방에 편입되다

미국인 이주자들이 멕시코에서 독립운동…9년간 독립 유지하다 미국에 합병 김인영 기자l승인2018.10.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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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텍사스주는 원래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멕시코가 1821년 독립하면서 멕시코의 코아우일라이테하스 주(Coahuila y Tejas) 주의 일부 지역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미국인들이 멕시코로부터 독립운동을 벌여 1836년 12월 27일 텍사스 공화국(Republic of Texas)을 수립했다.

지금의 멕시코보다 면적이 넓은 지역이 독립하자, 멕시코는 독립한 텍사스를 침공하려 위협했고, 이에 텍사스 주민들은 미국과 합병해 하나의 주(state)로 살기를 희망했다.

1845년 10월 13일, 텍사스 공화국은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대다수의 텍사스 국민들은 미국과의 합병에 찬성했다. 그해 12월 29일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과 합병하게 된다.

이로써 텍사스 공화국은 9년만에 독립국의 지위를 버리고, 미국의 28번째 주가 되었다.

 

▲ 텍사스 공화국 영토 (초록색은 논란 지역) /위키피디아

19세기초 텍사스 지역은 인디언 코만치(Comanche) 족의 땅이나 다름 없었다. 스페인인들이 거의 정착해 살지 않았다. 멕시코가 독립하던 해인 1821년 스티븐 오스틴(Stephen F. Austin)이라는 사람이 300명의 미국인들을 데리고 텍사스에 정착했다. 이 사람은 ‘텍사스의 아버지’라 불리며 후에 텍사스 공화국의 초대국무장관이 되는데,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멕시코 정부는 이들의 이주를 환영했다.

신생 멕시코 정부는 토지 무상제공, 4년간 면세 조건을 내걸고 미국인들의 이주를 적극 권장했다. 당연히 미국인들의 텍사스 이주가 급증했다. 미국인들은 노예들도 데려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국 이주민의 수가 먼저 이주한 멕시코 본토박이보다 늘어나게 되었다. 1835년엔 텍사스에 이주한 미국인들이 3만명을 넘게 되었다.

1935년 안토니오 로페즈(Antonio López) 멕시코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해 멕시코 북부지역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미국인들의 이주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인 이주민과 현지의 멕시코인들은 처음에는 개정되기 전의 1824년 제정 헌법 수호운동을 벌였지만, 점차 독립운동으로 전환했다.

1935년 10월 2일 멕시코령 텍사스의 곤잘레스라는 마을에서 텍사스 이주민과 멕시코 군대 사이에 작은 교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미국인 이주민들로 구성된 민병대가 승리했다. 텍사스 독립의 첫 전투였다.

이에 화가 난 멕시코 안토니오 대통령은 5,000명의 군대를 텍사스에 보내 폭동을 제압하려 했다. 멕시코군과 독립 민병대가 마주친 곳은 알라모 요새였다. 알라모에서 멕시코 토벌대와 미국인 민병대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민병대 183명 전원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 알라모 요새(2005년, Frank Thompson 작) /위키피디아

 

그러나 텍사스의 미국인들은 '알라모를 잊지 말라'고 외치며 토벌대에 맹렬하게 저항했다. 이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샘 휴스턴(Sam Houston)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은 이듬해인 1836년 4월 21일 샌화킨토(San Jacinto) 전투에서 멕시코 대통령을 포로로 잡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18분만에 끝났다. 미국이 지원한 무기들이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며 멕시코 토벌대 진영에 떨어졌고, 멕시코 군인들은 18분만에 진지를 포기하고 도주했다. 멕시코 병사들을 죽이는데 몇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멕시코군 사망자는 600명, 포로 300명이 포로로 잡혔고, 텍사스 독립군의 사망자는 11명, 휴스턴장군은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 샌화킨토 전투(1895년, Henry Arthur McArdle 작) /위키피디아

 

▲ 텍사스 공화국 초대 대통령 샘 휴스턴 /위키피디아

패배한 멕시코는 벨라스코 조약(Treaties of Velasco)에서 텍사스 공화국을 승인하고, 리오그란데 강을 국경선으로 인정하였다. 텍사스는 즉시 독립을 선언하고 휴스턴 장군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텍사스 공화국은 끊임없이 멕시코의 전쟁 위협에 시달렸다. 택사스인들은 결국 미국과 합병을 청원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내에 문제가 있어 합병안이 9년간 끌게 된다. 텍사스는 노예를 인정했는데, 미국의 북부 주들은 노예주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을 반대했고, 남부 주는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그러다가 1845년 2월에 텍사스의 연방 가입법안이 미국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이에 텍사스 공화국은 국민투표를 거쳐 아메리카 합중국에 편입된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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