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오늘] 외환위기 부메랑된 OECD 가입

선진국 되는 줄 알았지만, 금융시장 개방으로 위기의 원인 제공 김인영 기자l승인2018.10.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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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취임한 제14대 김영삼 대통령은 OECD 가입에 적극적이었다. 해방후 가난에 찌들었던 한국인들은 경제개발을 통해 고속성장을 달성했고, 단군이래 처음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성취감에 빠져 있었다. 이젠 선진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김영삼 정부는 OECD에 가입하면 선진국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정치적으로도 활용하기 좋은 테마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1981년 파리에서 발족한 일종의 선진국 클럽이다. 이 클럽에 가입하면 선진국에 무역과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반대급부도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우리 경제규모도 커졌으니, 시장을 개방하고 선진국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1996년 10월 11일 파리에 분부를 둔 OECD 이사회에서 한국 가입 초청을 결정했다. 그 다음 순서는 요식행위였다. 10월 25일 우리 정부는 OECD 가입협정에 서명하고 11월 26일 국회의 동의를 받았다. 그해 12월에 29번째 OECD 정회원국이 되었다.

 

▲ OECD 회원국 기. 현재 36개국이 가입해 있다. /OECD

 

하지만 OECD 가입은 불과 1년 만에 부메랑으로 다가왔다.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계기로 경제개혁·개방 정책에 피치를 올렸지만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계기로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를 맞았다. 같은 해 4월 삼미그룹이 부도를 낸 데 이어 7월 기아자동차 도산 사태가 터졌다. 쌍방울그룹, 해태그룹이 위기를 맞았고 고려증권, 한라그룹이 차례로 쓰러졌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나타난 신용 경색과 금융시장 혼란은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아갔다.

해외 금융기관의 부채 상환 요구에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나자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을 가까스로 면했다. OECD 가입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지 못하면서 급속하게 시장개방과 자본 유출입을 허용해 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난국 타개에 힘을 합쳐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성급한 OECD 가입 정책으로 무리하게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로 외환위기가 왔다는 점을 간과할수 없다.

물론 현재 우리 경제력으로 보면 충분히 OECD 가입 여건이 된다. 하지만 천천히 가입해도 될 것을 그땐 너무 조급했다는 지적이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일은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가 한국의 OECD 가입을 적극 지지하며 한국정부에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중부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촌뜨기 정치이었던 빌 클린턴이 으리으리한 뉴욕 월가의 지지를 얻은 것은 시장개방 정책이었다. 그는 대선 직전에 월가의 리더들이 대통령 후보자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금융시장 개방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고 밝혔고, 월가의 후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클린턴은 당선 직후에 월가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로버트 루빈 회장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3년 집권과 동시에 외국에 시장개방 압력을 넣었다. 민주당 정부는 물건이 오가는 교역의 자유화는 물론 돈이 오가는 금융시장 자유화를 동시에 강요했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진후 클린턴 정부의 시장 개방 압력이 위기의 원인(遠因)이 되었다는 분석이 미국 행정부와 학계에서 제기되었다. 태국, 브라질, 러시아와 같이 금융시장 구조가 취약한 나라가 개방을 할 경우 월가의 투기자금이 들어가 주식, 채권등 현지의 금융자산 가격을 하늘 높이 띄워 올린 후 어느 날 갑자기 빠져나감으로써 경제를 붕괴시켰다는 주장이다. 시장을 개방한 나라들은 처음엔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했지만, 결국 지나친 개방이 금융위기와 은행의 부실을 초래하게 됐다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던 로라 타이슨(Laura D'Andrea Tyson)은 “미국의 금융산업이 해외 시장에 들어가길 원했다. 나는 자유로운 자본의 이동이 중소국가나 금융산업이 취약한 국가를 위협할 것임을 우려했다.”고 인정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세계 금융시장 자유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추진했고, 미국은 이를 빌미로 삼아 한국의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법률적, 제도적 여건이나 자본시장 현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의 시장 개방 요구를 받아들이는 바람에 금융위기를 겪게 됐다.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를 옮겨보자.

“미국은 칠레에 대한 개방 압력이 미국 의회의 패스트 트랙(신속처리법안) 통과 반대로 무산된 직후 한국을 시장 자유화의 매력적인 대상으로 생각했다. 1996년 6월 20일에 작성된 미 재무부 비망록에 한국은 미 재무부가 추구하는 시장 자유화 우선대상국에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한국 시장을 열기 위해 OECD를 이용했으며, 미 재무부는 비망록에서 ‘이들 지역(아시아)이 미국 금융산업의 이해가 걸린 곳’이라고 밝혔다. 미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하기 위해 당초 계획 이상으로 시장을 개방하기로 합의했으며,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빨리 시장을 개방하면 상당수 금융기관이 적응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채권 및 주식시장, 단기차관 도입을 개방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외국의 단기자본 시장에 접근함으로써 급작스런 자본 이탈이 있을 경우 패닉 상황에 처할 위험이 커져갔다.

한국은 장기 자본 시장을 묶어둔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자본 시장을 개방하는 잘못을 행했다. 미국은 자본 이동 자유화를 진전시키는 내용을 IMF 강령으로 채택하도록 요구, IMF가 이를 들어주었다.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IMF 이사회는 96년 7월에 금융시장을 개방한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아시아에는 막대한 자본이 흘러 들어가 번영을 구가했지만, 한꺼번에 빠져나갈 때 금융공황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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