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오늘] 아라비아 로렌스, 다마스쿠스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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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오늘] 아라비아 로렌스, 다마스쿠스 점령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9.30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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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적 관념으로 아랍 독립에 관여…영국·프랑스 제국주의에 환멸 느껴

 

100년전인 1918년 10월 1일.

▲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1919) /위키피디아

후세에 ‘아라바아의 로렌스’라고 불리는 영국인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가 지금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Damascus)에 입성했다. 그날 아침 9시 영국군의 지휘를 받는 호주 제10 경기병 여단이 다마스쿠스에 진입해 터키 주둔군의 항복을 받아냈고, 로렌스와 아랍 독립군이 그 뒤를 따랐다.

로렌스는 아랍의 지도자 파이잘(Faisal)을 아랍 임시정부 수반으로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새로 수립된 아랍 국가(Arab State)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다. 파이잘은 곧이어 시리아의 왕으로 등극한다.

파이잘이 아랍민족주의를 토대로 세운 시리아는 지금의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포함), 시나이 반도를 합친 대시리아를 의미했다.

이때 로렌스의 나이는 30세였다. 하지만 젊은 영국인은 곧 실망을 한다. 로렌스는 영국과 프랑스가 2년전에 비밀조약을 체결한 사실을 알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붙은 터키(오스만투르크)를 해체하고, 터키가 지배하던 아랍 영토를 나눠 먹는 협상을 벌였다. 한편에선 아랍 민족주의자들을 지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권을 나누는 강대국의 이중 전략이자, 속임수였다. 1916년 5월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François Georges-Picot)가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두 대표는 오스만투르크가 패망한 후 중동지역을 둘로 나눠 영국은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 해안 지역 일부와 지금의 이라크, 요르단의 B구역을 가져가고, 프랑스는 이라크 북부 일부와 시리아, 레바논의 A구역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부족성이 강한 아랍 무슬림의 역사·문화·종교적 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은 자를 대고 일직선으로 그었다. 비밀 협상이었으므로, 당사자인 아랍 세력은 배제됐다.

수니파가 살던 알레포는 시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와 묶였고, 수니파 중심 도시 모술은 시아파 대도시 바그다드와 한 나라가 됐다. 여기엔 1910년 중반 발견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를 차지하려는 영국의 노림수가 크게 작용했다.

 

▲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에 따른 중동 분할도 /위키피디아

 

이 비밀 협정의 내용이 1917년 소련의 볼셰비키에 의해 공개되었다. 그러자 영국을 철석같이 믿었던 아랍인의 배신감은 컸다.

영국정부의 지시로 아랍인을 지원했던 로렌스도 모국에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영국 정부에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자신이 약속한 아랍의 독립에 배치되며, 그런 노력을 좌절시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1920년 프랑스군이 레바논 산악지역을 침공했다. 이유는 영국과의 비밀 협정에다 900년전 십자군 전쟁 때 프랑스 기사단이 점령한 레바논과 시리아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다마스쿠스를 점령해 위임통치를 시작하면서 파이잘 국왕을 내좇아 버렸다. 파이잘은 런던으로 찾아가 호소했다. 영국은 그를 자기네 점령지역인 이라크의 위임통치 수반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그는 곧 위임통치 수반직을 사퇴하고 국민투표를 거쳐 1921년 이라크 국왕에 오른다. 하지만 파이잘은 영국군 점령하에서 반쪽 국왕으로 연명하게 된다.

어쨌든, 아랍 국가, 즉 대(大)시리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해체되어 프랑스령 시리아와 영국령 이라크로 분단된다.

후에 IS가 등장해 통일국가를 세우고 영국과 프랑스에 테러를 감행하는 원인이 이때 제공된 것이다.

 

T E 로렌스는 어려서부터 몽상가적 기질을 지녔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웨일즈의 귀족이었는데, 본처를 버리고 하녀와 결혼해 다섯 아들을 낳았다. 로런스는 그중 둘째였다. 하지만 본처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아 법률적으로는 사생아인 셈이다.

어려서 운동을 좋아하고, 역사적 유적지 방문을 즐겼다. 옥스퍼드대 사학과에 입학한 로렌스는 박물관장이던 데이비드 조지 호가스(David George Hogarth)의 총애를 받아 아랍에 눈을 뜨게 되어 아랍어를 배우고 아랍 문화를 익혔다. 그는 스승 호가스를 따라 20대 중반에 중동에서 생활하며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등을 두루 다녔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로렌스는 카이로의 육군 정보부대에 입대해 시나이 반도에서 첩보활동을 했으며, 1916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이 무렵 아랍민족주의가 고조되어 아랍인들이 터키로부터 독립하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아랍민족주의는 당시 메카를 지배하던 부족장(셰리프) 후세인 이븐 알리에 의해 주도되었다.

로렌스는 메카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후세인 이븐 알리의 세 아들을 만나 보았다. 그는 알리(Ali, 후에 헤자즈 왕), 압둘라(Abdullah, 후에 요르단 왕), 파이잘(Faisal) 가운데 파이잘이 아랍 독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을 것임을 파악하고, 영국 정부에 그를 천거했다. 영국은 파이잘과 협력해 터키에 대항하기로 했다.

로렌스는 영국인으로선 이단아였다. 그는 진정으로 아랍을 사랑했고, 아랍 독립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로렌스는 영국 군복을 벗어던지고 아랍인 복장으로 갈아 입었다. 그의 진정성은 아랍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랍 독립세력은 영국군과 함께 터키군에 대항했다.

1917년 7월 6일 아랍과 영국의 연합군은 홍해의 북쪽 끝에 있는 아카바(Aqaba)를 장악했다. 드디어 1918년 10월 1일 영국군과 아랍 독립군은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

 

▲ 1919년 파리평화회의 기간 베르사이유에서 촬영한 사진. 가운데가 파이살 국왕,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로렌스다. /위키피디아

 

1918년 11월 11일 연합국과 터키 사이에 휴전이 성립했지만, 이젠 영국·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아랍 민족주의가 대립했다. 곧이어 프랑스가 다마스쿠스를 침공하고, 영국이 이라크를 점령하자 로렌스는 환멸에 빠졌다. 그는 영국 국왕(조지 5세)에게 훈장을 반납해버리고, 자신이 했던 일을 후회했다.

로렌스는 저술작업에 들어가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옥스퍼드 시절에 일생 동안 단 한 번쯤은 새로운 아시아를 건설하는 일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고백했는데, 그의 꿈은 몽상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은 자신의 모국이 행한 제국주의의 앞잡이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아랍 민족주의를 부추겨 오스만투르크를 붕괴하는 데 이용해 방대한 중동 땅을 나눠먹기 했고, 로렌스는 그에 일조한 것이다. 영국은 아랍 민족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팔레스타인 땅도 1차 대전에 전쟁 자금을 제공한 유태인에게 양보했다. 영국은 1917년 팔레스타인을 유태인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의 벨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 오토바이를 탄 로렌스 /위키피디아

 

대령으로 제대한 로렌스는 1922년 가명으로 다시 공군에 입대했다가 이듬해 발각되어 제대해야 했다. 곧이어 다른 이름으로 육군 전차부대에 입대했다가 쫓겨났다. 그는 이름을 바꿔가며 군 생활을 하려 했는데, 그는 과거의 로렌스와 헤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25년엔 영국 정부도 그에게 공군 복귀를 허락해 10년간 근무하다가 제대했다. 군대를 네 번 입대하고 제대한 사나이다.

그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오토바이를 배웠다. 그는 전속력으로 오토바이를 달리면서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던중 1935년 5월 12일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그는 아랍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의 실제 스토리는 1962년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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