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핀이(griffin 또는 griffon)라는 상상의 동물이 있다. 머리는 독수리(또는 매), 몸은 사자이고 날개를 가진 짐승이다. 앞발은 독수리(매)의 것이고, 뒷다리는 사자의 것이다. 고대인이 지상의 왕자 사자와 하늘의 왕자 독수리를 결합해 맹수중의 맹수를 형상화한 것이다.
고고인류학자들에 따르면 그리핀의 원산지는 아시아라고 한다. BC3000년 인도에서 생겨나 이란을 거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건너갔고,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그리핀은 사막이나 산간 동굴에 살며 금(金)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금광이 있는 장소에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몽골 고원에서도 그리핀이 나타났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가 공동으로 몽골 시베트 하이르한(Shiveet Khairhan/해발 2,500m) 유적에서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나무로 만든 그리핀이 출토되었다.
한국과 몽골 공동 발굴조사는 지난 6월 15일부터 7월 24일까지 진행되었는데, BC 4~2 세기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파지릭 9호 고분에서 그리핀이 발굴되었다. 그리핀은 파지릭 고분에서 특징적으로 나오는 유물인데, 이번에 불굴된 목제 그리핀은 날개가 결합한 형태로 나왔다. 이번에 발굴된 그리핀 등 목제유물은 대체로 완성형에 가까운 상태라고 한다.
그리핀이 출토된 파지릭 고분은 BC 5∼3세기 무렵, 몽골과 러시아 알타이 산악 지역에 분포했던 스키토-시베리아(초기철기 시대) 유목 문화기에 만들어진 돌을 사용한 무덤으로 추정된다.
파지릭 고분의 시대에 몽골을 지배한 나라는 흉노였다. 이미 이 시기에 그리핀이 인도, 이란,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흉노는 중국의 한(漢)나라와 대결한 북방민족이다. 이번에 완성된 그리핀의 출토는 한나라가 서역을 개척할 당시에 흉노는 이미 서역의 중앙아시아와 교류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고대 동서문화의 교류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한·몽 공동발굴팀은 고대 동서문화 교류의 실체와 변화를 밝히기 위해 2016년부터 몽골 서부지역 알타이를 대표하는 유목문화인 파지릭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추진했다. 올해는 시베트 하이르한 유적 내 3개군에서 ①파지릭 고분 3기(BC 4~2세기), ②배장묘(陪葬墓, 死者의 물건을 함께 넣은 무덤) 1기, ③선비(鮮卑) 시기 고분 4기(AD 1~3세기), ④고대 돌궐시대 관련 제의 유적 1기 등 모두 9기를 발굴조사했다. 흉노에서 선비, 돌궐에 이르기까지의 무덤이 발굴된 것이다.
파지릭 문화 고분 3기(7~9호)에서는 인골 3개체와 순장한 말 2개체가 발견되었다.
모두 평면 원형으로 중형 크기(지름 10m 내외)에 해당하는 고분이며 매장 주체부는 묘광의 남쪽에 자리했다. 7·8호분은 통나무를 깎아 만든 구유 모양의 목관을 사용했고, 9호분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쪼갠 돌로 벽석(널빤지처럼 얇은 돌)을 마련하고 바닥과 천장(덮개)은 통나무를 쪼갠 목재를 이용해 차이점이 있다.
파지릭 7·9호는 머리를 모두 동쪽으로 한 인골과 말이 1마리씩 순장되었다. 특히, 목제 그리핀이 발굴된 9호에서는 금박을 입힌 목제 말 모양 장식, 재갈, 철도자(작은 쇠칼), 토기 등도 발견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선비 시기 무덤 4기 중 1기(2018-5호)에서 신장 165~170cm의 크기로 반듯이 누운 피장자 상체가 미라가 된 상태로 당시 의복과 함께 발견되었다. 미라는 몸통과 얼굴 피부조직 일부가 남아있는 상태로 머리에는 끈을 두른 채 발견되었다. 미라의 인골을 연대 측정한 결과, 기원후 1세기로 확인되었다.
상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인 의복은 앞섶이 교차한 형태의 긴소매 의상으로 짧은 상의 형태로 보아 유목민들이 즐겨 입는 의복과 흡사하다. 몽골지역에서 나온 선비시기 고분에서 의복이 발견되는 경우는 아주 드문 사례라 앞으로의 연구결과가 주목된다. 올해 조사에서 발견한 머리에 두른 끈은 완벽에 가깝게 출토되어 용도파악에 좋은 자료로 기대된다.
지난해 발굴조사에서는 남쪽의 2017-4호분에서 유사한 복식과 끈 등이 확인되었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처리와 복원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발굴에서 2,000년만에 미라로 돌아온 사람이 중국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미라에서 발견된 웃이 당시 중국 중원 지역에서 유행한 복식으로 밝혀졌고, 미라가 입은 옷은 옷깃을 오른쪽으로 향해 여미는 우임(右衽) 형식으로 중국인들이 입는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인은 옷깃을 오른쪽을 향해 여며 입고, 북방의 흉노족은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는 좌임(左袵)의 방식을 취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몽골 지역은 이미 기원전에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국의 문물불이 교류되는 동서 교통로의 한복판에 있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와 올해에 확인한 출토 유물과 인골‧의복 등에 대한 종합적이고 정밀한 과학적인 분석과 연구를 통해 의복 형식, 직물제작 상태, 교류의 시기 등을 밝혀나갈 예정이다. 연구소는 오는 11월 15일에 몽골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 공동학술연구 10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의 고고학적 조사 연구 성과와 자연과학적 분석연구 등을 논의하고, 우리나라와 유라시아 유목문화의 중심지인 몽골 알타이 지역과의 교류 등에 관하 다양한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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