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 오늘] 멕시코 독립의 서막…돌로레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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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오늘] 멕시코 독립의 서막…돌로레스의 외침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9.1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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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민중에 저항심 심어…진압군과 반란군의 타협으로 독립

 

멕시코 중부 과나후아토 주에 돌로레스 이달고(Dolores Hidalgo)라는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가 있다. 이 도시에서 멕시코 독립의 역사가 시작된다.

1810년 9월 16일 새벽 2시반께, 로마 카톨릭의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 y Costilla) 신부가 돌로레스 성당의 종을 울리고 그 유명한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 내용은 지금까지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즉흥연설이었고, 후에 전해진 연설문은 재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들이여, 지금 하나님의 율법이 내려왔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당신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까. 가증스러운 스페인인들에게 수백년간 빼앗긴 토지를 되찾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진정한 애국자로서 당신의 종교와 권리를 수호하지 않겠습니까.”

이달고의 유명한 연설을 ‘톨로레스의 외침’(Cry of Dolores, 스페인어 Grito de Dolores)이라 한다. 멕시코는 이달고의 외침이 있던 이날(9월 16일)을 독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청중은 스페인에 점령당한 인디오들과 인디오와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조들이었다. 그들은 그 즉시 무장 봉기를 일으키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한다.

앞서 180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이 스페인을 침공해 페르난도 7세가 퇴위하고, 식민지에 권력 공백이 생겼다.

 

▲ 2008년 9월 16일 멕시코 독립기념일 행사 /위키피디아

 

미겔 이달고는 멕시코에서 태어난 토착 백인(크리올)이었다. 그 무렵 멕시코에는 4개의 인종 집단이 있었다. 원주민인 인디오, 혼혈인 메스티조, 스페인 후손인 크리올, 스페인에서 건너온 백인 페닌슈랄 등이다. 이달고는 사제로서 농민과 노동자 층의 생활개선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인디오의 말을 배워 농민들의 어려운 삶을 통감했다. 이달고는 동료 크리올들과 함께 인디오와 메스티조의 농민이 부유한 도래백인(페닌슈랄)의 지주와 귀족들에게 봉기하자는 계획을 꾸몄다.

당초 봉기 거사일은 1810년 10월 1일이었다. 이달고와 행동을 같이 하는 대원들은 무기와 탄약을 비축하고 있던 중, 9월 13일에 동료들 중 한사람이 배반해 지방정부에 반란계획을 밀고했다. 스페인 당국은 반란자들의 아지트 수색과 체포를 명령하자, 이달고는 동료들과 함께 몸을 숨긴 후 거사를 앞당겼다.

이달고의 연설에 감명한 민중들은 열광했다. 인디오와 농민들은 바로 행동에 들어 갔다. 성난 민중은 당시 최대 광산촌이던 과나후아토를 향해 행진했다. 도중에 많은 농민과 메스티조가 참가해 그 수는 2만3,000명으로 불어났다. 이달고는 농민에 대한 인두세 폐지와 노예제 폐지, 부당하게 빼앗긴 토지반환 등을 요구했다. 행진을 하는 도중에 반란군은 스페인 관리와 부자들을 사살하고 약탈했다. 이달고가 이끄는 독립군은 과나후아토에서 멕시코시티로 진군했다.

그들은 라쿠카라차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 소꿉놀이 어린이들 뛰어와서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는 얼굴 병정들도 싱글벙글/ 빨래터의 아낙네도 우물가의 처녀도/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희한하다 그 모습“

라쿠카라차(la cucaracha)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이다. 원래는 스페인 민요였는데, 멕시코 민중들이 스스로를 바퀴벌레로 비유하고, 독립운동가로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달고의 독립군은 그해 10월 30일 ‘누에바 에스파냐’(new spain이란 뜻으로, 스페인 식민지를 말한다)의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지척에 두고 스페인 식민군의 방어에 직면한다. 독립군은 막대한 희생을 낸채 수도 공략에 실패하게 된다. 독립군은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북쪽의 텍사스로 향했다가 이듬 해 다시 수도를 목표로 진군을 개시했지만, 1811년 3월에 스페인군에 대패한다. 다수가 포로가 되었고, 이달고는 미국으로 달아났지만 체포되어 반역죄로 사형되었다.

 

▲ 미겔 이달고 신부 /위키피디아

 

이달고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누에바 에스파냐에 전해져 각지에서 반란이 이어졌다.

1812년 메스티조였던 카톨릭 사제인 호세 마리아 테클로 모렐로스(José María Morelos)가 멕시코 남부에서 봉기해 남부일대를 지배하고 1813년에는 아카풀코의 주요도시를 차례로 함락했다. 이달고의 운동은 농민운동 성격이 강했지만, 모렐로스의 독립운동은 스페인에서 독립과 공화국 건설을 내세웠다. 모렐로스의 군은 잘 훈련되었고, 규율이 엄정한 소수의 편성으로 유격전을 벌였다. 남부의 대부분을 지배한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는 1813년에 각지의 대표를 모아 회의를 개최해 독립을 선언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되면서 스페인 식민군이 공세로 나와 독립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다. 모렐로스의 군은 패주했고, 모렐로스는 1815년에 모렐로스도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모렐로스의 처형 후 누에바 에스파냐는 스페인 총독의 지배에 들어갔지만 산발적인 게릴라전은 지속되었다. 모렐로스의 부하였던 과달루페 빅토리아(Guadalupe Victoria)와 비센테 게레로(Vicente Guerrero)가 게릴라 투쟁의 선두를 보였지만, 1820년에 접어들면서 독립운동도 둔화되고 붕괴되기 시작했다.

 

▲ 이투르비데가 게레로를 만나는 모습을 그린 그림(Ramón Sagredo 作) /위키피디아

 

그런데 극적 반전이 이뤄진다. 1820년 스페인 총독은 반란군에 대한 최후의 작전을 개시하면서 토벌대장에 크리올인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gustín de Iturbide)를 파견했다. 이투르비데는 토착백인으로 이달고와 모렐로스군을 패퇴시키는 전과를 거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크리올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빛나는 전과를 거두어도 그의 출세에는 계급적 한계가 있었다.

그해 스페인 본국에서 페르난도 7세의 독재에 반대하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권력을 잡았다.

쿠데타의 지도자인 라파엘 델 리에고(Rafael del Riego) 대령은 남미의 독립운동 진압을 위해 원정군의 지휘를 맡았지만 총구를 거꾸로 들어 1812년 헌법 부활 등을 국왕에게 요구했다.

이투르비데는 오히려 게릴라 대장인 비센테 게레로와 독립에 관한 협상을 벌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구일라 계획(Plan of Iguala)이다. 이구일라라는 마을에 주둔할 때인 1821년 2월 24일에 만들어진 원칙이다. 내용은 ①멕시코는 독립군주국이다 ②토착 크리올과 스페인에서 태어난 페닌슈랄은 평등한 권리와 특권을 지닌다 ③카톨릭 교회는 멕시코에 대한 특권과 종교적 독점을 보증한다는 것을 골자로 했다.

이투르비데는 이구일라 계획을 가지고 게릴라 부대와 협상을 벌였다. 게레로는 이투르비데와 타협한다. 토착백인과 도래백인, 인디오, 메스티조의 공존을 약속한 일종의 타협안이다. 이투르비데는 과달루페 빅토리아 등 각지의 게릴라 반란군을 흡수해 스페인에게 대항한다. 1821년 8월 24일 이투르비데와 스페인 총독 사이에서 이구알라 강령을 확인하는 코르도바 조약(Treaty of Córdoba)이 체결되어 멕시코의 독립이 결정된다. 1821년 9월 15일에 이투르비데는 군을 거느리고 멕시코시티에 저항없이 입성하고, 스페인군은 멕시코 땅에서 철수한다.

이후 이투르비데는 의회를 구성하고, 입헌군주국 헌법을 제정한다. 1822년 5월 19일 이투르비데는 스스로 아구스틴 1세(Agustín I)로 칭하면서 황제에 오르고, 멕시코 제국을 성립했다.

하지만 그의 재위기간은 1년도 되지 못한다. 그는 공화파들의 반란으로 이듬해인 1823년 3월 19일 퇴위하고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리보르노(당시는 투스카니 공국)로 탈출했다. 신생 멕시코에 다시 정쟁이 벌어지고 혼란스럽게 되자, 스페인이 다시 지배하려고 획책했다. 전직 황제는 귀국해 멕시코 독립을 위해 일하겠다고 의회에 서한을 보냈지만, 답변이 없었다. 그는 1825년 7월 14일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체포령이었다. 그는 곧바로 체포되어 7월 19일 처형되었다. 나이 41세였다. 이를 멕시코 제1제국이라 한다.

멕시코는 또한번의 제국을 경험하는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막시밀리안 요제프(Ferdinand Maximilian Joseph)가 멕시코의 요청으로 황제에 오른다. 그의 재위 기간도 1864년 6월 10일~1867년 6월 19일로 3년에 불과하다. 그도 처형되었다. 이를 멕시코 제2제국이라 한다.

 

▲ 아구스틴 1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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