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사비성 방어 맡은 가림성 내부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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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성 방어 맡은 가림성 내부 발굴조사
  • 김현민
  • 승인 2018.08.2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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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뫼식 석성, 동성왕때 축조…연대 확인되는 유일한 백제 성

 

백제는 사비(부여)로 천도한 이후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가림성, 석성산성, 증산성, 청마산성 등을 쌓았고, 수도 외곽에 나성을 에워 싸는 구조로 사비성을 보호했다.

사비성의 외곽산성의 하나인 가림성(加林城)은 사비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산성으로 501년(백제 동성왕 23년)에 쌓았다고 전하는데, 당시 이곳이 가림군이었으므로 가림성이라고 부른다. 이 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고,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돌로 만든 석성(石城)이다.

산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해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동성왕의 아들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도록 했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 준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원래는 부여 성흥산성이라 했는데, 2011년 7월 가림성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사적 4호로 지정되어 있다.

 

▲ 부여 가림성 모습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백제 시대 후기 거점 산성인 ‘부여 가림성’의 산성 내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가림산성에 대해 1996년 동‧남문지에 대한 조사를 했으며, 이후 2011년, 2015년, 2016년, 2017년에 산성의 동성벽, 북성벽, 내부 일부 평탄지 등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동‧남문지 축조 형태, 백제 시대 성벽의 축성법,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개축한 성벽 흔적 등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가림성은 동·북성벽, 문지 등에 대한 조사를 주로 시행하였는데, 올해는 가림성 내부의 산 정상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새롭게 할 예정이다. 조사지역은 사비도성의 왕궁지인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이 조망되는 곳으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번 조사를 통해 백제 시대 후기의 산성과 관련된 시설 건물지 등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사비도성 일대 주요 산성 분포 /문화재청
▲ 부여 가림성 항공촬영 사진 /문화재청
▲ 부여 가림성 모습 /문화재청
▲ 부여 가림성 모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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