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같은 베네수엘라의 화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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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같은 베네수엘라의 화폐개혁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21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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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분의1 액면가 조정에 최저임금 30배 인상…국민들은 대규모 탈출 행렬

 

월요일인 20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이 TV에 나와 국민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 나라의 경제를 회복시키겠다. 내겐 방식이 있다. 이 계획엔 전문가들이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 베네수엘라 정부는 화폐 액면가를 10만분의 1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새 통화의 단위는 볼리바르 소베라노(Bolivar Soberano)다. 종전의 10만 볼리바르는 0을 다섯 개 떼어내 1 볼리바르 소베라노로 바뀌었다.

이 새 통화는 마두로 정부가 발행한 페트로(Petro)라는 가상화폐에 페그(peg)된 통화다. 가상화폐에 화폐가치를 동결시킨 최초의 통화가 된 셈이다. 이 가상화폐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을 담보로 연초에 발행되었다.

 

▲ 베네수엘라의 신 화폐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사이트

 

상인들은 혼선에 빠져 가게문을 닫았다. 은행들도 하루동안 휴무했다. 금융당국이 뱅크 홀리데이(bank holiday)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중계로 “이번 조치는 전세계에서 찾아보지 못한 독특한, 혁명적인 공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며칠, 몇주, 몇 달만 지나면 경제 회복의 과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면서 경제개혁 조치를 동시에 단행했다. 내용인즉, 최저임금을 30배 이상 올리고, 세금을 증액하고, 석유 가격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주먹구구도 이런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IMF는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이 올해 100만%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1 볼리바르의 물건 가격이 1만 볼리바르가 된다는 것이다. 일단 화폐단위를 10만분의 1로 바꾸어 놓고, 그 액면가로 IMF가 틀렸다고 해야 하나. 최저임금을 30배 올리고, 기름값을 인상하고, 세금을 늘리면 또다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미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경험한 초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이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럴 땐 화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손해다.

마두로의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 조치는 마법과 같은 효과를 드러냈다.

새 지폐도 내놓지 않고, 은행 문을 닫아놓고 화폐개혁부터 단행했다. 모든 경제활동이 스톱되었다. 당연히 현금지급기도 정지되었다. 구지폐는 통용되지 못했다.

오랫동안 남미 국가의 통화를 연구해온 존스홉킨스 대학의 스티브 행크(Steve Hanke) 교수는 CNN 인터뷰에서 이번 화폐개혁에 대해 “성형수술에 불과하다”면서 “사기”라고 규정했다.

 

▲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위키피디아

 

인구 3,200만명의 이 나라에선 올들어 벌써 50만명 이상이 이웃 콜럼비아를 거쳐 에콰도르로 탈출했다고 유엔난민기구(UNHCR)이 밝혔다. 브라질로 가는 국민들도 많다. 8월 첫주엔 3만명이 탈출했다고 한다. 억을 것도 없고, 아파도 약품을 구할수 없으며, 범죄에 노출되고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외국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국민들의 엑소더스는 이웃나라에선 골치덩어리다. 브라질에선 난민들을 국경지대로 옮겼다. 지난 토요일엔 브라질 사람들이 베네수엘라 난민들에게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러자 베네수엘라 정부 왈(曰), “브라질 정부가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자국민을 쫓아내면서 정부가 고작 한다는 게 이웃 나라에 형제, 자매들을 보호해달라는 요청이다.

UNHCR의 대변인 윌리엄 스핀들러는 “베네수엘라인들의 엑소더스는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최대의 인구이동의 하나가 될 것”이라며 “그들은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 며칠씩, 몇주씩 맨발로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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