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8월 11일] 상속싸움의 결과, 베르덩 조약

협상 결과 왕국 삼분할…후에 메르센 조약으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형성 김인영 기자l승인2018.08.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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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43년 8월 11일 프랑스 북부 베르덩이라는 소도시에서 카를 대제(언어에 따라 샤를마뉴, 카룰로스라고도 함)의 손자 로타르 1세, 루이 2세(루트비히), 카를 등 세 상속자들이 모여 프랑크제국의 영토를 3등분하는 베르덩 조약(Treaty of Verdun)을 체결했다. 조약문은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어어로 번역되어 발표됐다.

이 조약은 오늘날 프랑스, 독일을 형성하는 시초가 되는 협약으로 평가되는데, 원인은 게르만족 일파인 프랑크족의 상속제도에 있었다.

프랑크족은 관습적으로 분할상속(Partible inheritance) 제도를 채택했다. 아버지가 죽으면, 남자 형제들이 영토(토지)와 작위, 재산을 균일하게 나누어 상속했다. 그런데 프랑크족의 관습법과 달리 아버지의 지시로 한 상속자가 모든 것이 돌아갔으니, 다른 형제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결국은 전쟁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세 형제가 영토를 3등분 하기로 한 협정이었다.

 

▲ 843년 베르덩 조약에 따른 영토분할

 

476년 서로마제국의 명줄이 끊어진후 중부 유럽은 무주공산이었다. 게르만민족의 각 종족들이 서로 힘의 대결을 펼치며 영토 전쟁을 벌였다. 대혼란의 시기가 지나 서서히 새로운 실력자가 등장했으니, 그것은 프랑크족의 왕국이었다.

라인 강 하류에 정착하게 된 프랑크 족은 갈리아(프랑스) 일대로 세력을 넓혔고, 5세기 말에 프랑크왕국을 건설한다.

피핀의 아들 카롤 대제에 이르러 프랑크 왕국은 유럽 최대, 최강의 왕국으로 성장하고, 카를 대제는 서기 800년 로마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로마제국 황제에 오르게 된다.

카를 대제는 프랑크족의 관습법에 따라 자신이 죽은 후 제국을 세 아들에게 똑같이 나눠 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아들이 일찍 죽고, 자신이 죽기 전에 살아남은 아들이 루이(루트비히) 밖에 없었다. 그는 고민 없이 제국을 루이에게 넘겨 주었다.

814년 아버지에게 제국을 독점적으로 물려받은 루이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 프랑크족의 상속제도를 버리고 장자상속제도로 선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재위 3년째 되던 817년 그는 맏아들 로타르를 제국의 유일한 상속자로 지명했다. 문제는 루이의 두 번째 부인이 아들을 낳으면서 시작되었다. 전처 소생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전 왕비의 아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을 영토가 줄어들지 않을까, 사사건건 새 왕비와 대립했다.

아버지 루이는 생전에 로타르의 동생들에게 제국 내 소왕국을 물려주었다. 프랑크족의 관습을 기대하던 로타르의 동생들은 불만이 컸다. 아버지가 왜 갑자기 오랜 관습을 뜯어고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840년 아버지 루이가 죽자 사단이 벌어졌다.

맏아들 로타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제국 전체를 장악하려 들었다. 로타르는 동생들과 조카들의 영토를 내놓으라고 했다. 동생인 루이 2세와 카를은 배다른 형제이고, 서로 원수같이 지내던 사이였지만, 상속 지분에 관해서는 뜻을 같이 했다. 피보다 재산과 영토가 중요했던 것이다. 두 동생은 프랑크족의 관습에 따라 제국을 나눠야 한다며 맏형인 로타르에 대들었다.

전쟁은 필연이었다. 3년간 혈투가 벌어졌다. 841년 퐁트누아 전투에서 맏아들측이 두 동생의 연합군에 패했다. 타협하는 길 밖에 없었다. 동쪽에선 슬라브족, 북쪽에선 바이킹족, 서쪽에선 바스크족이 밀려들었다. 프랑크족의 습관에 따라 한쪽이 나머지를 차지하는 것도 무리였다. 모두들 만족하는 수는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었다.

세 형제는 3년간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베르덩에 모였다. 그리고 영토를 셋으로 분할했다.

협상 결과, 장남 로타르는 로트링겐(라인강 하류의 저지대, 지금의 베네룩스 3국)과 알사스를, 루이 2세(루트비히)는 라인강 동쪽의 독일지역을, 그리고 막내 카를 2세는 아키텐을 포함한 프랑스 지역을 각각 소유하게 되었다. 중부유럽을 통일한 프랑크왕국은 동프랑크, 중프랑크, 서프랑크로 분열되었다.

 

▲ 880년 메르센조약에 따른 영토분할

 

동프랑크와 서프랑크는 지역적으로 밀집되어 있어 나름 통합이 쉬웠다. 하지만 중프랑크는 중간에 알프스산맥이 가로 막혀 있어 통합이 어려웠다. 북부의 로트링겐과 알사스 지역은 중프랑크에 속해 있었지만, 동서 프랑크의 양면 공격으로 쉽게 무너졌다.

베르뎅 조약이 체결된지 37년후인 870년 8월 메르센 조약(Treaty of Meerssen)이 체결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생긴 국경이 오늘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로 굳어지는 기원이 된다.

중프랑크 영역이었던 로트링겐은 후에 독일과 프랑스와는 별개의 독립로 독립하지만, 알사스-로렌지역은 오랫동안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역으로 남게 된다. 알사스-로렌은 1738년 빈 조약에 의해 합스부르크에서 프랑스로 이양되고, 1871년 프로이센의 프랑스 침공 이후 독일 영토가 되었다가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프랑스 땅이 되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일시 점령했지만, 전쟁이 끝난후 다시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알사스-로렌의 비극은 멀리 1천여년전 베르뎅 조약에서 그 출발점을 갖는다.


김인영 기자  inkim@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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