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그녀의 도서는 단 이틀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5만부만 판매되어도 기적이라는 얘기가 들리는 출판업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놀라운 점은 한강 작가의 태도에 있다. 수많은 방송 인터뷰 및 출연 제의, 강연 요청, 대학교수 제의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한강 작가는 들뜨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9월 17일 공개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드라마 및 예능에 관심이 떠난 1020세대에게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TV에 유명 쉐프가 끊임없이 등장하며 자신들의 요리 실력을 뽐냈으나 과연 그들을 최고 전문가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많았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고수가 존재한다.
진짜 전문가의 자세
한강 작가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는 아니었다. AI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유명 작가 20명을 꼽았으나 한강 작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미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한 진짜 문학전문가지만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부여한 국내 방송사는 많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한강 작가에게 쇄도한 출연 요청은 그래서 아쉽다.
방송사 PD들 사이에선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방송 강연과 출연만으로 그녀가 평생 집필하면서 번 금액만큼의 부(富)를 단기간에 벌 것이라고 얘기했다. 조금만 유명해지면 단번에 전문가, 명사로 자신의 포지션을 변경, 방송 강연 프로그램과 CF 촬영에 관심을 기울인 이가 한둘이 아니기에 자연스러운 예측이다.
놀라운 점은 한강 작가의 차분한 태도다. 실제로 수많은 언론사, 방송사는 그녀에게 출연 제의, 강연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모교인 연세대도 교수직을 제의, 그녀를 모시기 위해 노력을 다했다. 수많은 제의에도 불구, 작가의 전성기인 60세까지 소설 집필에 주력하겠다는 그녀의 모습에서 현자(賢者)의 자세가 느껴진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인기는 서사를 가진 이름 없는 요리사와 방송 출연으로 명성을 알린 요리사의 대결에서 수많은 감동이 전개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이 인기를 구가한 비결은 그간 잘 알려진 쉐프가 아닌 흙속에 파묻힌 또 다른 쉐프(보석)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요리에 관한 계급은 실력이지 방송에 노출되어 이름을 알린 명성이 아니란 점을 프로그램은 보여주었고 시청자는 열광했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들을 보면 진짜 전문가라고 자처하며 학문적 사실과 무관하거나 다른 내용을 언급한 이들이 많다. 방송사는 낯익은 인물을 반복 출연시키며 전문가로 그들을 탈바꿈시킨다. 그런데 한강 작가와 흑수저 요리사의 실력을 지켜보면서 각 분야의 진짜 전문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흙속에 파묻힌 보석을 발굴해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그리고 흑백요리사 신드롬은 인재경영 및 발굴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국내 기업은 유독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보다 인재 영입에 관심을 기울인다. 인재 발굴과 육성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탓이다. 그렇기에 전문가로 알려진 이들을 영입해서 전권을 부여하는 일이 빈번하다.
인재 영입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과연 그들이 진짜 해당 업계 또는 분야의 전문가인지에 관한 이슈다. 기업에서 인재를 확보할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건 헤드헌팅 기관의 세평인 경우가 많다. 방송사, 언론사에서 전문가를 찾을 때 가장 많이 의존하는 건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인지도를 쌓았느냐가 핵심이다.
그렇다 보니 검증되지 않은 인력이 기업 또는 TV에서 전문가로 자처하며 시행착오를 일으키는 일이 잦다. 실제로 경영저널(Journal of Management) 등의 학술지에서는 '묻지 마' 인재를 영입할 때 조직의 성과는 인재 육성 및 발굴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다양한 연구 결과로 제시하고 있다.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란 얘기다.
둘째,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하면 흙속에 묻힌 보석을 찾기 위한 노력을 최소화한다는 점이다. 흑백요리사를 본 시청자 후기 중 “TV에 알려진 이들 못지않게 우리 주변에 실력을 갖춘 이름 없는 전문가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방송사는 이들을 찾지 않았을까”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호평을 받은 건 시사하는 대목이 크다.
모 언론사의 사내벤처팀이 한 때 각 분야의 진짜 전문가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적이 있다. 당시 언론사에 소속된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사내벤처팀은 각 분야를 자세히 살펴보니 대중에게 전문가로 알려진 이들과 달리 진짜 실력자는 해당 분야에 따로 있다는 점을 확인, 이들을 발굴, 홍보하겠다며 의욕적으로 나섰다.
사내벤처팀의 의도와 노력은 좋았으나 결과는 성공하지 못했다. 흙속에 파묻힌 보석을 발굴하겠다는 젊은 그들의 생각과 달리 여전히 기업 그리고 방송사, 언론사는 전문가를 손쉽게 찾고 인재를 발굴하는데 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진짜 전문가는 어느새 사라지고 전문가로 포장된 이들의 견해만 무성해졌다.
인재 발굴과 육성은 쉽지 않지만 해볼 만한 아니 반드시 해야만 하는 우리 사회의 과제다. 어딘가에 또 다른 한강 작가, 또 다른 전문가가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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