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8월 8일]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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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8월 8일]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07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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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승리했지만, 도청 사건과 권력 남용으로 불명예 퇴진

 

1972년 11월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Rich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50개주 가운데 매사추세츠(워싱턴 DC 포함)를 제외하고 49개주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닉슨은 선거인단 538표중 520표를 싹쓸이하고, 득표율도 60.69%로 조지 맥거번 민주당 후보를 23.2% 차이로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재선은 공정하지 못했다. 민주당 대통령 선거운동 지휘 본부가 있던 워터게이트 호텔(Watergate Hotel)에 국가권력을 동원해 불법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 주거 침입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후 재판 과정에서 닉슨이 이 사건의 뒤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닉슨은 하원 탄핵 결의후 상원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1974년 8월 8일 사임하고 말았다.

 

▲ 닉슨 사임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현역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아넣어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우연하게 시작되었다.

1972년 6월 17일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프랭크 윌스가 건물 지하 주차장 계단 문에 기묘한 테이프(tape)가 묶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워싱턴 DC 시경에 불법 침입을 고발했다.

경찰이 도착해 그 호텔에 있던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불법 침입한 5명의 남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그들은 3주 전 같은 사무소에 침입한 적이 있고, 이번 침입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던 도청기를 재설치하기 위한 것이었음이 판명되었다.

 

▲ 워터게이트 사건 때 도청장치였던 트랜지스터 라디오 /위키피디아

 

경찰 조사에서 침입자 중 하나인 버나드 버커의 수첩에서 백악관 연락처를 기록해둔 수첩이 발견되었다. 그 수첩에 닉슨 재선위원회 경력활동이 있는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그 무렵 워싱턴 포스트의 신참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는 동료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과 함께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보도했다. 기사로 인해 워터게이트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닉슨과 그 측근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드워드 기자에게 비밀정보를 제공했던 딥 스로트(Deep Throat)는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마크 펠트였다.

사건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닉슨은 그의 보좌관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한 후 국가안보가 위험하다며 CIA에게 FBI의 조사를 방해할 것을 지시했다. (이 때 논의된 내용은 테이프에 기록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전직 FBI 요원 고든 리디, CIA 요원 하워드 헌트가 총지휘를 맡았고, 배관공으로 위장한 정보부 요원들이 민주당 선거 본부에 도청 장치를 가설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위키피디아

 

처음에 닉슨은 자신이 이 사건에 어떠한 관련성과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헌트와 리디는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배후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체포된 요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매커드가 담당 판사에게 한 장의 쪽지를 보냈다. 그는 쪽지에서 자신이 백악관에 의해 고용되었고 법정에서 이를 누설하지만 않으면 사면 혜택을 받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을 폭로했다.

미국 상원은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청문회에 소환된 증인 중 몇 사람이 대통령을 이 사건에 연루시켰고, 이 사건의 모의와 처리 과정에서 있었던 담당자들 사이의 대화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가 백악관에 보관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위원회는 닉슨에게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닉슨은 이를 거부했고, 여론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됐다. 닉슨이 사건 수사를 담당한 아치볼드 콕스 검사를 해임하고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이 이에 반발,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언론은 닉슨의 탄핵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닉슨이 문제의 녹음 테이프를 제출했으나 이미 늦었다. 테이프의 내용 일부가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내용 자체가 조작된 흔적도 있었다.

닉슨의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워 진 가운데 하원 사법위원회는 1974년 7월 27일에 27표 대 11표로 대통령에 대한 제1차 탄핵(사법 방해)에 이어 7월 29일에는 제2차 탄핵(권력 남용), 7월 30일에는 제3차 탄핵(의회 모독)까지도 가결했다.

닉슨은 상원 표결에 앞서 스스로 사퇴할 것을 결정했다. 1974년 8월 8일 밤 닉슨은 TV연설을 통해 8월 9일 정오에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닉슨은 탄핵을 받은 미국의 유일한 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탄핵결의가 나오기 전에 사퇴한 것이다. 닉슨의 사임 후 제럴드 R. 포드(Gerald Rudolph Ford, Jr.)가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포드 대통령은 곧이어 9월 8일 "닉슨 대통령이 지시한 가능성이 있는 범죄에 대해 재판 이전에 특별사면 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닉슨은 이후 모든 조사와 재판을 피하게 되어 사면을 받게 되었다.

닉슨은 그후 20년 동안 저술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1994년 4월 22일,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81세였다.

 

▲ 워터게이트 호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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