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한때 전 세계 음악 팬들이 ‘오빤 강남스타일’을 따라 불렀다면 이제는 ‘아파트 아파트’를 따라 부른다. 블랙핑크의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노래 ‘APT.(이후, 아파트)’ 덕분이다. 아마도,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후 가장 강력한 훅(hook)을 가진 한국 가수가 부른 노래가 될 전망이다.
‘아파트’는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정규 1집 발표를 앞두고 미리 공개한 싱글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 브루노 마스가 깊숙이 관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노래의 작곡·작사에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참여했고, 뮤직비디오에도 두 사람이 함께 출연했다.
‘아파트’는 한국어로 시작한다. ‘채영이(로제의 한국 이름)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이라는. 이어 브루노 마스가 로제와 함께 ‘아파트, 아파트’라고 외치며 노래한다.
그런데 발음은 물론 리듬까지 어쩐지 익숙하다. 이른바 ‘술게임’에 등장하는 그 아파트 게임이기 때문이다. 다른 가사 파트의 영어는 원어민 느낌이 나는 발음이지만 아파트 대목만큼은 한국인이 발음하는 억양과 발음 그대로 내뱉는다.
뮤직비디오에서는 로제와 브루노 마스는 이 노래를 부르며 손을 층층이 쌓는 한국의 술자리 게임인 ‘아파트 게임’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두 사람이 출연해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발표하자마자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지난 18일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여러 나라 유튜브에서 인기 급상승 뮤직비디오 1위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한국, 미국, 영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이 포함된다.
유튜브에 공개한 뮤직비디오는 5일 만에 1억 조회를 넘겼고, 25일 현재 1억 2000만 조회를 기록하고 있다.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노래 자체도 인기의 불이 붙은 모양새다. 24일 기준 스포티파이 차트에서 글로벌 탑송(Top Song), 미국 탑송, 캐나다 탑송을 달성했다. 한국 탑송도 물론이다.
한국에서는 차트 올킬하는 분위기다. 25일 현재, 멜론의 여러 차트에서, 지니의 여러 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다른 음악 사이트에서도 비슷한 추세다. 24일에는 Mnet의 음악 방송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파트’의 인기는 국내와 해외 막론하고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의 서브컬쳐가 먹혔다?
‘아파트’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 때문이야 라고 딱 짚어내기보다는 다양한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브루노 마스라는 슈퍼스타가 참여했다는 이슈부터 중독성 있는 리듬으로 반복되는 아파트라는 가사를 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노래가 좋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는 좋은 노래의 조건이 수없이 많겠지만 절로 따라 부르게 만드는 노래, 한번 들어도 생각나는 노래가 높은 순위에 들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라면, 로제의 ‘아파트’는 좋은 노래임이 분명하다. 한 번만 들어도 기억나는 건 물론 후렴구가 나오면 따라 부르고 싶어지니까.
한국의 하위문화, 이른바 ‘서브컬처’가 먹혀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국 젊은이들이 술자리에 하는 게임인 ‘아파트 게임’이 노래의 주요 모티프가 되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뮤직비디오에서 브루노 마스가 한국어로 ‘건배 건배’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드는 장면을 보고는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노래라 여기는 이들도 있는 듯하고.
물론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 덕분에 한국의 술 문화가 좀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된 듯하기는 하다.
로제는 노래 발표 후인 20일 유튜브에 소맥을 만드는 영상을 올렸다. 잡지 ‘보그(Vogue)’의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이 영상은 25일 현재, 280만 조회를 기록하고 있는데 주말경 300만 조회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 영상의 인기를 보여주듯 유튜브나 틱톡에는 전 세계 팬들이 로제를 따라 소맥을 제조하는 영상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소맥의 인기가 국내 맥주회사들의 실적에 영향을 끼칠지 주목하고 있다는 기사도 올라왔다. 좋은 노래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케이팝에 우뚝 선 두 개의 아파트
만약 ‘아파트’라는 노래 제목을 듣고 ‘윤수일’이 부른 아파트가 떠오른다면 옛날 사람일지 모른다. 아니면 프로야구 팬이나 모 사립대학 출신일지도 모르고.
윤수일이 작사·작곡한 노래 ‘아파트’는 1982년에 발표됐다. 각종 운동 경기장에서 응원가로 쓰일 정도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노래다. 그런 윤수일의 아파트가 다시 대중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로제의 ‘아파트’가 뜨면서 같은 제목이라 함께 검색에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 이런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다. 한국음반산업협회(RIAK Official) 채널에 오른 1995년에 발매된 ‘윤수일 골든 힛트송 모음집’의 ‘아파트’ 노래가 25일 현재, 130만 조회를 넘겼다. 특히, 여기에 달린 댓글들이 인상적이다.
‘로제의 신축 아파트도 좋지만 이분의 구축 아파트 버젼도 좋네요(ShyBoiiTobii)’, ‘은마 아파트보다 윤수일 아파트가 먼저 재건축 될 줄이야...ㄷㄷ(ililillii3463)’, 등의 재치 있는 댓글들이 달렸다. 아파트라는 단어를 제목에서 쓴 점을 빗댄 재건축 콘셉트의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
이렇게 원조 아파트의 인기도 함께 올라가며 연일 언론에서 윤수일과 그가 부른 아파트를 거론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윤수일을 찾는 등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 스타일의 노래로 세상에 크게 알려진 싸이의 ‘강남 스타일’과 그 뒤를 이어 세상에 크게 알려지는 로제의 ‘아파트(APT.)’에는 연관된 지점이 있는 듯하다. 굳이 따져 제목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는 것,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강남이라면, 한국의 ‘주거 공간’ 하면 떠오르는 게 아파트라는 관점에서.
공교롭게도 오늘날의 한국을 상징하는 두 단어가 들어간 노래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거나 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강남과 아파트라는 공간에 담긴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중독성 짙은 후렴구로 한국을 떠올리게는 했다. 그렇게라도 알려지는 게 국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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