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96) 강남의 전통 마을, 흐능날과 독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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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96) 강남의 전통 마을, 흐능날과 독구리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10.2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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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흐능날’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아마도 없을 겁니다. 서초구 내곡동의 헌인릉 인근에 있던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저는 마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흐능날이라는 단어는 서초구지(瑞草區誌)를 읽다가 발견했습니다. 서초구지는 1991년 서초구청에서 발간한 서초구의 개관과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여기에는 서초구 영역 내 모든 동(洞)에 대한 설명도 담겼는데 지명의 유래나 그 지역의 전통 마을 등의 정보들을 소개합니다.

흐능날의 의미는 무엇?

서초구지에서 흐능날은 “30여호 정도의 주택이 헌인릉 입구와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마을로 이곳만 취락구조개선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옛 가옥대로 남아 있다”는 단 한 문장으로만 설명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흐능날’이 오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포털에 ‘흐능날’을 검색하면 서초구지에 나온 저 문장 거의 그대로 설명하는 항목들이 검색됩니다. 하지만 흐능날이 무얼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항목은 없었습니다.

1991년 헌인릉 일대. 사진 중앙의 도로는 헌릉로이고 도로 위쪽의 왼쪽 구역이 헌인 꽃단지, 즉 흐능날이 있던 곳이 비닐하우스 가득한 꽃재배 단지가 되었다. 도로 아래쪽은 헌인마을이다. 사진제공=서울시항공사진서비스. 국토지리정보원

서초구지를 제작할 무렵인 1990년대 초 헌인릉 일대 항공사진을 찾아봤습니다. 비닐하우스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서초구지에서 언급한 옛 가옥을 알아보기는 힘듭니다. 좀 더 과거 항공사진을 찾아봤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비닐하우스가 대거 늘어나기 시작하는 모양새입니다. 흐능날을 특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1972년도 항공사진을 보니 헌인릉 일대로 농경지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농가 주택으로 보이는 건축물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서초구지의 설명이 맞는다면 아마도 흐능날일 겁니다.

궁금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헌인릉 일대는 화훼농가의 대형 비닐하우스로 가득합니다. 그 사이에 ‘흐능날 경로당’이란 간판이 걸린 가건물이 보였습니다. ‘헌인꽃단지 번영회’라는 간판도 함께 걸려 있습니다.

마침 어르신들이 계셨는데 1990년대부터 꽃재배에 종사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흐능날 주민들을 기억한다고 했지만 다들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혹시 흐능날이 무슨 의미인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어르신들은 알지 못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경로당에서 알아낼 수 있는 흐능날에 관한 정보는 별로 없는 거로 보였습니다. 화훼농가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요. 

서울 서초구 내곡동의 헌인릉 인근의 흐능날 경로당. 헌인 꽃단지 번영회 간판도 함께 걸렸다.

저는 SNS 등에 흐능날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다 ‘흐능’이 혹시 헌릉이 아닐까 하는 제보를 접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과거 신문 기사 데이터베이스에서 ‘흐능’을 검색해 봤습니다. 

1951년경 어느 신문에 임업시험장 일대의 거목 도벌을 단속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기서 언급한 곳이 광릉과 흐능입니다. 문맥상 헌릉이었습니다. 오늘날 헌인릉 인근에 서울시 농업기술센터가 있는데 그전에는 임업시험장이 있었나 봅니다.

이로 짐작해 보면, ‘흐능’은 헌릉이고 ‘날’은 마을을 뜻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놓친 자료도 있었습니다. 이 자료에는 헌인릉 주변에 ‘헌능말’이 있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아마도 흐능날을 의미하겠지요. 

도시 문헌학자 김시덕 박사는 세월이 지나며 잘못 전해지거나 잘못 받아적어서 마을 이름이 바뀐 곳이 한국에 꽤 있다고 그의 저서 <한국 문명의 최전선>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흐능날도 비슷한 사례가 아닐까요. 

독구리가 도곡동?

독구리라는 지명도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도곡동 관련 자료를 살펴보다 보면 가장 눈에 띄는 단어니까요. 역말이 역삼동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면 독구리는 도곡동 지명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독구리는 도곡동의 매봉산자락에 자리한 농촌 마을이었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농촌의 모습이 남아 있었는데 2000년대 들어 차츰 아파트와 고급 빌라가 들어섰습니다. 구불구불한 동네 구획이 옛 농촌 마을의 흔적을 짐작하게 합니다. 지하철 3호선 매봉역 북쪽에 있는 지역이 독구리였습니다.

1980년 매봉산 일대. 사진 중앙의 산이 매봉산이고 산자락 아랫마을이 독구리다. 마을 아래 도로는 남부순환로인데, 이 시기에 이 구간은 아직 공사 중이었다. 사진 오른쪽 비닐하우스가 펼쳐진 구역은 오늘날 타워팰리스가 들어선 곳이다. 사진 왼쪽 중앙의 복잡한 구획의 마을은 역말이다. 사진제공=서울시항공사진서비스. 국토지리정보원

그런데 독구리는 무슨 뜻일까요? 1993년에 발간된 강남구지(江南區誌)에는 “매봉산이 둘러 있고 물 아래쪽 산부리에 돌이 많이 박혀 있으므로 독부리라 하던 것이 변하여 독구리, 독골”이라 불렀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발음을 한문으로 옮겨 도곡이라 이름 지었고요. 

강남구지에서 설명한 ‘독구리’에 관한 내용은 한글학회가 펴낸 <지명총람 1(서울편)>에서 인용한 겁니다. 1966년 자료인데 과거 문헌과 현지 조사 및 인터뷰 등에 근거해 정리했다고 합니다. 오래전에 만든 자료이지만 권위를 인정받는 문헌입니다.

그런데 독구리 주민들에게서 조금은 다른 결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봉역에서 매봉산 방향으로 가면 삼성아파트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아파트 입구의 상가 2층에는 ‘독구리 경로당’이 있습니다. 여기서 1942년생 이종대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이종대 씨는 독구리를 매봉산이 둘러싼 포근했던 마을로 기억했습니다. 마을 남쪽으로 남부순환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 마을이었다고요. 양재천 북쪽의 도곡동 일대, 즉 오늘날 아파트가 들어선 영역이 모두 농경지였다고 합니다. 타워팰리스 자리에도 비닐하우스가 가득했고요. 당시의 항공사진을 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그에게 독구리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도가니’처럼 푸근하게 감싸주는 의미가 있다고 어른들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 도가니의 발음이 변해서 독구리가 된 것이 아니겠냐고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독구리 경로당. 매봉역 북단 삼성아파트 입구 상가 2층에 있다. 독구리는 도곡동 지명의 유래가 된 마을이다.

이와 비슷한 취지의 의미로 들었다는 이도 만났습니다. 독구리 주민들이 많이 다녔던 교회에 출석한 제 지인이 들었는데, 어느 독구리 출신 노인이 도꾸리 혹은 도쿠리, 즉 목을 감싸는 털스웨터처럼 매봉산이 마을을 감싸서 그렇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강남구지 등에 올라온 내용과는 결이 다른 설명이었습니다. 독구리에 실제 살았고 지금도 생존한 이들의 증언이니 제대로 채집해 연구하고 분석해 볼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강남 일대에 있었던 전통 마을들의 오늘을 돌아보다 보면, 문헌에는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사실과 다른 점들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완하거나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요. 아마도 계속 나오지 않는 상태와 오류가 있는 그대로 후대에 전해지겠지요. 

많은 이의 관심을 끌지 못하더라도 지역 역사는, 문헌 연구와 현장 조사는 물론 생존 인물들의 기억과 증언 또한 제대로 기록하고 전해야 할 가치 있는 지역 자산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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