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각] “재벌개혁과 대기업 역할 구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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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각] “재벌개혁과 대기업 역할 구분해야”
  • 김현민
  • 승인 2018.08.0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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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역할론’ 펼친 한겨레…보수언론, 정부의 이중성 비판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6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과 면담했다. 김 부총리는 앞서 LG·현대자동차·SK·신세계 등 대기업 오너를 만났고, 그 연장 선상에서 삼성전자를 찾았다. 경제부총리가 기업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부총리가 다른 기업을 만난 땐 아무런 얘기가 없다가 삼성을 만난다니 ‘구걸’ 운운하며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황당하기보다는 졸렬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청와대는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한다는 취지의 경고를 기재부에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참모진의 정서가 투영된 것이 아니냐”는 게 언론들의 시각이다.

수십년 적대관계에 있던 북한 사람들도 웃으며 만나는 현 정부 인사들이 자기네 기업인을 만나는 것에 인색한 것은 대범하지 못한 조치다. 이념의 틀에 갇혀 냉소적으로 세상을 보는 편협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러다 보니 부총리의 방문 이후 예정되었던 삼성의 대대적 투자·고용 계획 발표도 유보됐다고 한다.

 

▲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6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과 면담한후 기념사진 촬영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7일 도하 언론들은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전자를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것과 관련해 사설을 실었다. 유력 언론들이 자기네 색깔을 드러내며 한마디씩 논평하는 것 자체도 우리나라 특유의 비정상적 현상이다.

한겨레, 경향신문등 현정부의 재벌개혁을 지지하는 신문들은 김동연-이재용 회동에 대해 경고한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지만, 약간의 시각차를 드러냈다. 경향신문은 “둘의 만남이 면죄부로 비춰질수도 있다”며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한겨레는 “재벌개혁과 대기업 역할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 역할론을 펼쳤다.

 

경향신문은 “김동연·이재용 회동과 재벌 개혁”이란 사설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투자가 부족하다고 재벌에 의지해 개혁을 후퇴시키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부총리와 재벌 간 회동은 본인의 선의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재벌개혁은 아직 진행 중인데 부총리가 재벌 총수를 만나고 다니는 상황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만남의 상대가 굳이 총수일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재벌개혁을 한다면서 재벌 총수를 만나는 게 이치에 닿느냐’라는 질문에는 답 찾기가 궁색해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도 전인데 총수와 만남으로써 ‘개혁이 물 건너갔다’는 신호를 줄 수도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아직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둘의 만남이 면죄부로 비칠 수도 있다.”

 

한겨레신문은 “김동연 부총리의 ‘삼성 방문 논란’이 남긴 것”이란 사설에서 “김 부총리는 앞으로도 각 경제주체를 계속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계획인데,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김동연 부총리에게 경고를 던졌다. 하지만 한겨레는 대기업 나름의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조를 폈다.

“이참에 ‘재벌개혁’과 ‘대기업의 역할’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황제경영을 바로잡기 위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고 총수 일가의 불법·비리를 엄단하는 게 ‘재벌개혁’의 요체다. 앞으로도 재벌개혁은 흔들림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국내 대표 기업에 투자 확대를 요청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을 ‘재벌개혁 후퇴’로만 보는 건 지나친 측면이 있다. 과거처럼 재벌 위주의 성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대기업을 배제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대기업 나름의 역할이 있고, 지금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대기업들도 되돌아봐야 한다.“

한겨레는 아울러 청와대 참모진과 김 부총리가 또다시 심각한 불협화음을 드러낸 점을 주목했다.

“주요 정책을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치열한 논쟁은 회의실에서 끝내고, 국민 앞엔 정제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조율되지 않은 제각각의 입장을 자꾸 드러내는 것은 국민의 정책 불신을 키울 뿐이다. 경제정책 성과는 나오지 않는데 소모적 논란만 되풀이되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참모진과 김 부총리가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의 엄중한 경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은 한편에선 한편으론 기업에 실사구시적 실천을 요청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기업에 적대적인 현 정부를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혹시 했더니 역시로 끝난 경제부총리 삼성 공장 방문”이라는 사설에서 “모처럼 만남이 사진 찍고 밥 먹는 이벤트로 끝나고 말았다”고 평했다.

“정부 책임자들이 주요 기업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시로 기업인들을 백악관에 초대하고 틈만 나면 전화를 거는 걸로 유명하다. 아베 일본 총리도 경영자들과 밥 먹고 골프 하는 일정으로 가득 차 있다. 한 팀처럼 서로 대화하면서 정부는 기업 애로를 정책에 반영하고 대기업은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화답한다. 우리처럼 정부가 대기업과 선을 긋고 적대시하는 나라는 없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에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요구한다. 휴가에서 복귀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경제 활력을 찾기 위한 실사구시적인 실천"을 참모들에게 주문했다.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청와대 일각의 ‘반대기업 정서’ 사라져야 투자가 산다”고 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돈벌이가 된다면 아무리 말려도 스스로 알아서 투자하는 게 기업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청와대 회의에서 “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득이 높아져야 활력을 찾을 수 있다”며 규제 개혁과 혁신 친화적 경제환경 조성을 주문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대통령의 뜻이 실현되려면 규제 개혁을 대기업 특혜와 동일시하는 ‘대기업 알레르기’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기업인의 기를 살리고 경제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면 고위 관료와 기업인의 만남은 많을수록 좋다.“

 

매일경제 사설은 “김동연 부총리 비판 연연 말고 현장 속으로 더 들어가라”고 했다.

“이런 때일수록 경제정책 수장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현장을 파고들어야 한다. 특히 혁신성장의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할 김 부총리는 본인이 천명한 대로 기업의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현장을 찾아 과연 무엇이 투자와 일자리를 가로막고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혁신성장과 기업 투자 활성화에 대한 사시를 가진 이들의 편협한 비판에 연연해 좌고우면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경제는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 의원의 발언을 다뤘다.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과는 연관성이 없는 논평이지만, 현 집권세력의 인식을 드러내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해찬 의원은 지난 주말 “수구 세력은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최저임금을 고리로 경제위기설을 조장하고 있고, 기무사는 군사쿠데타를 모의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위기론을 설파했다. “2020년 총선 승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강철 같은 단결”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경은 "수구세력이 경제 위기론 편다"는 이해찬 의원의 인식에 대한 사설에서 “그의 경제위기론에 대한 인식이 여당 전체의 인식으로 여겨질 경우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의원이 “수구 세력이 경제위기론을 조장하고 있다”고 한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위기의 원인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그렇지만 현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데 이의를 다는 경제전문가는 많지 않다. 이 의원 주장이 맞다면 한국은행이나 통계청이 모두 거짓 정보를 제공해 위기론을 조장하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한겨레가 대기업 역할론을 펼쳤다는 점이다. 재벌개혁과 대기업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해찬 의원이나 청와대 경제참모들의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현재의 경제난을 현실적으로 판단하라는 지적이다. 재벌개혁이 대기업을 죽이자는 얘기가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되, 우리경제의 근간을 살려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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