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지난 주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2023~2024년 잠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0%로 제시했다는 소식이 기획재정부를 통해 전해졌다.
이러한 수치는 작년 6월 산정한 추정치인 2023년 1.9%, 2024년 1.7%보다 높은 것으로, 일단 하락 속도가 둔화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유럽의 1%대 초반보다는 여전히 높다는 점에서도 점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2.4%에서 불과 4년만에 0.4%포인트가 내린 추세적 하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드디어’ 작년과 올해 2.1%초 추정된 미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은 이제 문제가 될 만한 수준으로 약화됐다는 평가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잠재성장률은 현재 상황에서 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노동력 및 자본 등의 모든 생산요소가 완전히 활용된다고 가정할 때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생산량 증가율을 의미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보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성장이다. 완전히 활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하려면 생산요소 비용이 올라가 물가가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이런 저런 요소를 모두 모아 성장에 활용해도 (평균적으로) 2% 정도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얘기다.
성장률 하락이 불가피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가늠하기 위해서 먼저 잠재GDP의 구성 요소를 살펴보자. 잠재GDP를 추정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인 구성 요소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그리고 각 생산요소 투입에 따른 산출량 정도를 나타내는 생산성으로 나뉜다.
이는 꽤 직관적인 내용인데, 결국 투입되는 노동자 수와 노동 시간, 자본 투입량. 그리고 각각 1단위의 자원 투입 대비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는 양을 알아야 우리나라가 생산해 낼 수 있는 전체 재화와 서비스의 양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추정에는 이외의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기도 하고, 장기적인 평균 성장률을 감안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기본과 핵심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대표적인 투입 요소인 노동량이 줄고 있다. 두 가지 측면인데, 하나는 절대적인 생산인구의 감소이고, 또 하나는 노동시간이다. 15세~64세 인구인 생산가능인구는 2019년을 고점으로 감소하고 있고,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년간 100만명 감소했다. 물론 그 기간 중 기존에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인구의 참여로 경제활동참가인구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성장에 대한 기여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1인당 노동시간도 줄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월간 근로시간은 2020년 163.6시간에서 2023년에 157.6시간으로 6시간 줄었다. 그나마 2019년까지의 급격한 감소 추세보다는 속도가 줄었지만, 장기적인 감소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전체 투입되는 노동의 양이 감소하면서 잠재GDP 성장률을 깎아 먹고 있는 셈이다.
자본 투입과 생산성은 늘고 있지 않을까? 늘고 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추정하고 있는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대 들어 연간 1.4% 내외의 속도다. 또한 한국은행은 총요소생산성 증가 속도도 0.9~1%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이것이 노동 투입량의 감소를 상쇄해 우리 잠재성장률을 2%라도 유지시키는 요인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 이 두가지 모두 2010년 이후 미미하나마 추세적인 하락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한국은행이 추정한 2011~2015년 잠재성장률 수준 3.2%에서 2021~2022년 2%로의 하락은 이처럼 노동투입량의 감소, 그리고 자본투입량의 증가 속도 둔화, 총요소생산성 증가 속도의 둔화가 어우러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상승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약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유럽과 일본에 이어 미국보다 낮은 잠재성장률이 고착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0년 정도 후에는 장기간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유럽의 잠재성장률 수준에까지 근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노동 측면에서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가파른 투입량 감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률이 높았던 60년대생의 은퇴 압력은 출산률이 본격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한 2000년대생의 신규 진입을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와 경제활동참가인구는 계속해서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이민자 유입과 정년 연장 등 몇 가지 사회적, 정책적 요인이 등장하겠지만, 전체 추세는 바뀌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근로시간과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평균보다 많은 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발표된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근로시간 포함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보면 큰 흐름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본투입량의 증가 측면 역시 기대하기 쉽지 않다. 국내 투자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잠재GDP 측정과 직접적인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요소의 값이 단기적으로 빠르게 상승해 경쟁국보다 높아진 데다, 기업들의 직접금융시장 자금조달 비용 역시 높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나타나고 있는 자본시장으로부터의 자금 유출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고,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결국 기대할 것은 총요소생산성인데, 이 역시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대비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는 새로운 산업이 확산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나라는 일부 수출 제조업에 의존하는 경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이유로 특정 수출 제조업기업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새로운 산업의 출현은 제한적으로만 나타나고 있다.
과거 정부들이 강조해 왔던 이른바 미래 산업 전략은 문화산업 일부를 제외하고 크게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물론 아직 변화의 과도기라고 볼 수 있지만, 단기간에 우리 잠재성장률을 끌어 올릴 것이라는 기대도 힘든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그 맥락에서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는 일 역시 답보 상태다. 당근과 채찍 모두 부족한 기업 밸류업 방안과 기업 기준이 모호성을 비판받는 밸류업 지수,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여부와 상법 개정 등 시급한 이슈들이 정치적 이해 관계에 의해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시장 활성화와 이를 통한 기업 활동의 확산은 기대하기 어렵다.
유럽의 저성장국가처럼 될 수도
여전히 우리는 미국보다 낮지만 유럽에 비해 높은 잠재성장률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인구 문제를 제외한 각종 부문에서 기회를 갖고 있다. 적어도 올바른 정책 선택을 통해 국내외 자금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고, 새로운 산업을 성장시킬 우수한 인재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사회 분위기, 이를 반영하거나 이용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선택을 감안하면 이 같은 기대를 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미국보다 높은 잠재성장률을 회복하기는 커녕, 우리도 조만간 이들 유럽의 저성장 국가 그룹에 속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는 얘기다.
누군가 냉소적으로 말했듯, 일부 정치인들의 유럽 국가들에 대한 로망이 저성장으로부터 이뤄지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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