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8월 6일] 신성로마제국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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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8월 6일] 신성로마제국 소멸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05 18:4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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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독일 분열 공작에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 퇴위

 

1806년 8월 6일,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2세(Francis II)가 퇴위하고, 신성로마제국은 멸망을 고했다. 이 소식을 듣고 독일의 괴테는 “내 마부가 언쟁을 벌이는 것보다 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은 중세 초기에 형성되어 1806년 해체될 때까지 유럽 중앙을 포괄하는 대제국이다. 초기엔 다민족이었지만, 17세기 이후 영토가 쪼그라들어 독일어를 쓰는 민족의 영역으로 좁혀졌다.

신성로마제국의 기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우선 800년 12월 25일, 교황 레오 3세가 프랑크인의 왕 카롤루스(샤를마뉴) 1세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서로마 제위의 부활을 선언한 시점을 출발점으로 보는 견해다.

다른 견해는 962년 오토 1세가 황제로 대관하고 제위를 부활하면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역사가들은 후자를 지지한다. 따라서 신성로마제국은 962년부터 1906년까지 844년간 지속되었던 제국이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명은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157년 프리드리히 1세가 신성제국(Holy Empire)이라는 국호를 사용했고, 1512년 쾰른에서 열린 의회는 제국의 공식 국명을 ’독일 국민의 신성로마제국‘이라고 반포했다.

1254년부터 1273년까지 선제후들 사이에 패가 갈리면서 황제를 없는 대공위시대를 겪기도 했다. 그후 영주들의 투표에 의해 황제를 선출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는데, 황제선출권을 갖는 선제후들이 특권을 갖게 되면서 제국의 분열은 심화되었다. 말기에 들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가 황제 자리를 독주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서프랑크 왕국의 후신인 프랑스 왕국이 중앙집권적으로 발전한 것과 달리, 독일 지역의 신성로마제국은 수백 개의 왕국, 공국, 후국, 백국, 자유시 등의 영방국가들로 이루어진 분권화되었다. 황제의 권력은 제한적이었고, 여러 공작, 후작, 백작, 주교후, 시장들이 자신의 영토 안에서는 사실상의 독립적 지위를 누렸다. 볼테르는 말기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 신성로마제국 최대의 영토. /위키피디아

 

어찌했든 800년 이상 수명을 끌어온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에서 대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되자 신성로마제국 맹주인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중심이 되어 침공했지만, 오히려 라인강 서안을 프랑스에 빼앗겨 버렸다.

나폴레옹은 독일을 분열시켜 허약한 신성로마제국을 붕괴시키려는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2세였다.

프랑스에 빼앗긴 라인강 서쪽 지역의 영주와 자치도시들은 프란츠 2세에게 등을 돌리고 나폴레옹을 지지했다. 1804년 나폴레옹이 점령지역의 영주들을 대거 선제후로 임명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가 위태롭게 되었다. 자칫하다간 나폴레옹이 임명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나올 형국이 되자 전쟁이 불가피해 졌다.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해 자신의 타이틀을 대공에서 황제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를 끌어들여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1805년의 이 전쟁을 세 황제가 붙은 전쟁이라고 해서 삼제전쟁(三帝會戰, Battle of the Three Emperors)이라고도 하고, 전투가 벌어진 장소를 붙여 아우스터리츠 전쟁(Battle of Austerlitz)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체코 슬라브코프우브르나에서 벌어진 이 전쟁에서 나폴레옹의 포병은 맹활약을 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은 패배했다.

이 전투로 프랑스는 라인강 서쪽 땅의 영토를 확고히 하고 바바리아, 버텀베르크, 바덴을 나폴레옹이 설립한 독일 동맹에게 양도했다. 프랑스군은 남부 독일에 주둔했다. 여차하면 오스트리아를 침공할 태세였다.

1806년 6월,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를 향해 3개월 안에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지 않으면 선전포고를 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7월 파리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소속의 16개 연방이 나폴레옹을 보호자로 하는 라인동맹을 결성하고, 8월 1일을 기해 제국을 탈퇴해 버렸다.

마침내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는 8월 6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위와 제국에서의 모든 지위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이로서 840여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신성 로마 제국은 공식으로 소멸했다.

독일인들은 신성로마제국에 대단한 애착을 가졌다. 그후 프로이센의 총리였던 카를 폼 슈타인은 빈 회의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부활을 제안했다.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한지 60년 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 군대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북독일연방을 결성하고, 1870년 프랑스를 공격해 이듬해 1월 18일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독일제국의 성립을 선포한다.

독일인들은 신성로마제국을 제1제국, 프로이센 호엔쫄레른가에 의한 제국을 제2제국,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을 제3제국이라 일컫는다.

 

▲ 1832년의 프란츠 2세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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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연 2021-08-17 12:56:08
딱 제가 궁금해하던 부분이 잘 나와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볼테르 괴테 인용도 재밌었어요

오종희 2020-06-09 13:17:30
옛날 글이긴 한데 글 진짜 두서없고 문법이나 맥락 그지같은 것도 몇 개 보이고 이런 글 쓰는 것도 기자인가... 일반 학생들보다 글이 난잡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