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중동 분쟁, 특히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갈등이 전면전에 대한 우려로까지 확장되면서 증시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연초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 군사 시설에 대한 공격 이후 4월 들어 상호 보복 공격이 이어지며 갈등이 격화된 바 있는데, 하반기에도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지도자 제거를 위한 공습과 10월 초 이란의 대규모 공습, 그리고 이에 대한 보복 공격이 진행되며 최근에는 전면전 우려까지 나오게 된 상황이다.
사실 증시 투자자 입장에서 지정학적 위험은 다루기 힘든 이슈 중 하나다. 수많은 분석과 예측에도 불구하고, 향후 전개 과정을 가늠하기 어려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갈등의 원인과 대략적 흐름에 대해서는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는 국제 문제 전문가들 역시 특정 시점에 특정 지역의 공습이나 피습, 나아가 전쟁 등을 정확하게 예측하진 못하는 듯하다.
게다가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에도 해당 시점의 글로벌 정치, 경제 상황, 그리고 갈등 이전 증시 흐름 등에 따라 이후 증시 방향성이 다르게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전망뿐 아니라 대응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정학적 위험에 대해서 투자자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불확실성이 큰 요인이 발생했으니 무조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다 팔고, 위험과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반대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최선일까? 물론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러한 전략을 취해야 할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다는 해당 갈등이 어떤 매개 변수를 통해서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고, 현재의 상황을 분석한 후 차분한 대응에 나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중동분쟁과 증시의 연결고리 살펴봐야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중동 분쟁을 증시와 연결시키는 몇 가지 고리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중동 분쟁이 글로벌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고리는 역시 원유와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가격의 변화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이 전세계 산유국 중 가장 많은 공급을 하고 있는 국가가 되었지만, 중동은 여전히 생산비가 저렴한 가장 주요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 지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갈등은 즉각적으로 공급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특히 생산 시설에 대한 공격이나 중동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의 주된 해상 수송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커지는 경우 공급 측 유가 상승 압력이 커져 글로벌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공급 측 유가 및 천연가스 상승 압력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각국의 거시 경제는 두가지 측면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바로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이다.
유가가 오르면 대부분 국가에서 일반물가의 상승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재생 에너지원의 확산으로 과거보다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국가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는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에너지 가격이 초래하는 물가 상승 압력은 주로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해 각국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 전체적으로 성장의 속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다만,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 문제는 대체로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주지만, 영향은 국별로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각국 경제의 원유 및 천연가스 의존도와 자급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산유국이면서 전체 에너지 사용 중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나라, 즉 대부분 석유 및 천연가스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큰 경제적 충격을 받게 된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나 일본, 그리고 인도, 그리고 신재생 및 원전 비중이 낮고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국가들과 달리 원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미국과 남미,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들과 신재생 에너지와 원전 비중이 높은 서유럽 국가 일부는 상대적으로 유가 상승의 충격이 작을 수 있다.
그렇다면 원유, 천연가스 가격만이 문제일까? 위험 회피 심리의 확산도 고려할 사항이다. 중동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든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자신의 자산을 안전 자산으로 이동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행태에는 앞서 지적한 에너지 가격의 흐름이 영향을 준다. 하지만, 유가 측면에서 큰 변화가 없어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높아질 수 있다. 불확실성 확대 가능성에 대한 대응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에 따라 금이나 달러와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주식이나 원자재 등 위험 자산에서는 자금이 이탈하게 된다.
게다가 지정학적 갈등이 전쟁 등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에는 소비나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당연히 이러한 위험 회피 심리 확산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중동 지역의 분쟁은 글로벌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송 통로의 제약이 심화된다는 것은 화석연료뿐 아니라 여타 원자재와 완제품의 공급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는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되며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 바 있는데, 정도의 문제일 뿐 공급망의 차질은 수직에 가까운 공급곡선을 갖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격의 상승은 원자재 보유국의 자원 무기화 경향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증시 자체의 문제도 있다. 만약 중동 분쟁이 극대화되기 전에 증시를 둘러싼 환경이 취약한 상황이었다면, 증시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서 ‘취약성’은 증시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증시가 이미 큰 폭으로 올라 가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커진 경우도 취약해진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상황은 보통 경기 확장에 대한 지나친 기대 이외에 통화 완화에 대한 기대가 과도할 때 나타나기 때문에, 중동 지역 분쟁에 따른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중동지역의 분쟁이 격화될수록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 변화, 위험선호 현상에서의 변화, 공급망의 훼손이나 자원 무기화에 따른 원자재 가격 움직임을 살펴야 하며, 최근 증시 흐름이 어떤 요인에 의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현재의 밸류에이션은 어떤 수준인지를 잘 따져 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에너지 가격 안정세에 주목해야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원유와 에너지 가격 측면에서는 분쟁의 강도가 높아졌음에도 큰 상승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전에 대한 공격이나 수송통로 봉쇄 등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데다가, 높아진 금리로 글로벌 성장 속도가 완만하게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대규모 원유 공급 능력 역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의 훼손에 대한 우려도 크게 불거지지 않고 있다.
금융시장 내 위험회피 심리도 아직은 커지지 않고 있다. 유가의 안정이 큰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글로벌 경기 연착륙과 체계적인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믿음, 즉 연준을 비롯한 글로벌 통화당국에 대한 신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즉 투자자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중동 분쟁에 따른 혼란 하에서도 물가와 경기 측면에서의 균형이 크게 바뀌지 않도록 통제할 능력을 보유했다고 판단하는 중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높은 원유 및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 미국에서는 증시 밸류에이션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의 경우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가격 상승 문제로 인해 통화 완화에 소극적인 모습인데, 유가가 급등하면 이 같은 입장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국 증시는 올해 중 연이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볼 때 비싼 수준에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매우 좋은 상황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기치 못한 지정학적 위험의 증가에 취약한 상황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점들은 실제로 유가가 급등하고, 이 때문에 미국 경제 전망의 가장 큰 전제인 경기 연착륙과 질서 있는 통화 완화 기조가 깨질 것이란 점들이 분명할 때 부각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러한 상황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증시 투자자 입장에서 지금은 중동 분쟁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다 파는 등 섣불리 대응해야 할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그 보다는 포지션을 유지한 채 앞서 지적한 변수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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