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한국거래소가 지난 주 코리아 밸류업 지수(Korea Value-up Index)를 발표했다. 지난 2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안이 발표된 이후 7개월 만의 일이다. 지수 발표가 단기적으로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했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수 많은 기업의 데이터를 이용해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어쨌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두 인정하듯이 밸류업 지수의 발표 및 제공은 첫 단추일 뿐이다. 또한 더 정확하게는 이 지수의 발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나 일반주주의 이해 제고, 즉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인가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지수의 발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평가’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기업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게 기업 활동을 잘 전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또는 그럴 의지가 분명한가 등을 선별하는 작업일 뿐, 지수에 포함되는 기업들이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얘기다.
'당근책' 밸류업 지수의 변수들
물론 밸류업 지수가 발표되고, 이러한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가 분명해지면, 기업들의 밸류업 활동 역시 활발해질 것이다. 일종의 당근 효과다. 선택된 기업들에 투자자가 몰리고, 주가가 오르게 되면 경영진들이 지수 내에 선택되기 위해, 또는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 투자자들의 선택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 둘째, 기업의 경영진들이 일반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첫째 기준과 관련해서는 투자자들의 의사 결정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 뿐 아니라 단기적 이익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 우리는 지금도 진행 중인 ESG 사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표방하고 실천하는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토대로 만들어진 ESG 경영 원칙은, 그 동안 환경과 사회, 그리고 경영 측면에서 기업들을 변화시켜 왔고 앞으로도 여러 기업들이 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투자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ESG의 추진에는 단기적으로 비용이 소요되어 오히려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 자체가 경영철학과 무관하게 어떤 방식으로든 불법적이지만 않으면 단기적으로 돈을 버는 기업에 투자를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더 중요한 주의점인데, 밸류업 지수에 포함되는 것, 즉 일반주주의 이해를 극대화하는 것이 경영진 입장에서 근본적으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주주가 직접 경영을 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깊숙하게 참여하는 경우, 그리고 ▲이사회 구성 자체가 경영에 참여하는 대주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에는 대주주의 이해에 충실한 의사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쉽게 얘기해 대주주로서 배당 수익이나 시장가치 극대화보다 더 많은 경제적, 비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 일반주주의 이해는 침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대주주나 이사회, 경영진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포괄적 이해가 일반주주의 이해와 상충될 때, 밸류업 지수 포함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을까?
강제성없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잘 작동하려면
결국 이와 같은 점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지수에 포함된 기준들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하는 강제성을 더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일단 투자자들부터 변해야 한다. ESG의 경우에도, 많은 글로벌 기업과 단체들이 ESG 경영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고객의 자산을 운용하는 많은 기관들이 이러한 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투자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반 강제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만 ESG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은 것 역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변화 없이, 강제성이 거의 없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과연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여기에 기업에 대한 강제성이라는 부분과 관련해, ‘친기업적’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논의도 빠르게 정리되어야 한다. 기업이 잘 되어야 나라 경제가 잘 된다는 교과서적인 논리 때문인지, 친기업은 무조건 기업 입장에서 불편한 것들을 가급적 모두 제거해 줘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 경제 전체적으로 고용과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은 많은 매출과 이익을 달성해야 하고, 당연히 정부는 이러한 기업 활동에 도움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투자와 고용을 많이 하는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 경감, 자금 조달 측면에서의 부담 경감, 나아가 고용의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 상속 부담 경감 등이 그러한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경영에 참여하는 대주주 입장에서는 이 같은 것 이외에도 불편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사회의 감시와 반대, 투명한 거버넌스 시스템 마련과 정보 공개, 궁극적으로는 경영권에 대한 위협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칫 ‘친기업’이라고 할 때, 정상적인 기업 활동과 관련이 없고 일반주주의 이해를 침해할 수 있는 대주주의 불편함까지 해소해 주는 것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밸류업 프로그램 내에 강제성이 거의 없는 것도, 이 같은 불편함 방지의 관점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필자의 우려와 달리 아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정부와 각 기관도 이러한 점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시장에서 의심하는 바는 있으나, 지금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해야 하는 모든 참가자들은 장기적으로 강한 기업들로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시장의 의심이 줄고, 결국 노력하는 기업들이 적절한 시장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점에서 밸류업 지수는 중요한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많은 투자자들은 아직 갈 길이 멀고, 프로그램 전체의 성공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조금 더 뚜렷한 두 번째 단추가 채워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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