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던 ‘고종의 길’, 10월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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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던 ‘고종의 길’, 10월 개방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7.3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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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한 달간 시범 개방…인근 조선저축은행 사택, 8월 공개 후 철거

 

1896년 2월11일 새벽 가마 두개가 경복궁 건춘문(建春門) 빠져 나왔다. 앞의 가마에는 엄 상궁이 바짝 출입문에 앉았고 뒤에는 고종이 몸을 숨겼다. 뒤 가마에는 다른 궁녀가 가마문 앞에 버티고 앉았고 세자(후에 순종)가 바짝 뒤에 숨어 있었다. 건춘문을 통과한 두 개의 가마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미국 공사관을 지나 무사히 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했다.

공사관에는 이범진과 이완용을 비롯한 친러파 대신들이 인천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함선에서 그 전날 미리 출동시킨 수군 120명의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상궁의 지모와 배짱이 아관파천을 보기 좋게 성공시킨 것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고 한다. ‘아관(俄館)’은 러시아 공사관을 말한다.

조선의 국왕이 어찌 외국공사관에 피신할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 사건으로 조선의 수명은 10년 정도 더 늘어났다. 청일전쟁에서 중국을 꺾고,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보수정객들이 땅을 치며 후회했던 것이 고종의 아관파천이었다. 이제 일본은 러시아를 꺾어야 조선을 먹을수 있게 되었다. 고종의 이어(移御)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수도 있다.

문화재청은 아관파천 120주년인 2016년 일명 ‘고종의 길’(왕의 길)을 복원키로 했다. 대한제국 시기에 미국공사관이 제작한 정동지도에는 선원전과 현 미국대사관 사이의 작은 길을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되어 있었다.

 

▲ 복원된 ‘고종의 길’ (왼쪽은 미 대사관, 오른쪽은 선원전) /문화재청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도피한 길이 드디어 공사를 마무리하고 시민에게 공개된다.

문화재청은 30일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명 ‘고종의 길’을 3년간의 공사를 마무리하고 10월 정식 개방하기 전에 8월 한 달간 국민에게 시범적으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고종의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총 120m의 길로, 덕수궁 선원전 부지가 2011년 미국과 토지교환을 통해 우리나라 소유의 토지가 되면서 그 경계에 석축과 담장을 쌓아 복원한 것이다.

고종의 길과 맞붙어 있는 덕수궁 선원전 영역은 왕들의 어진과 신주 등을 모시던 장소로, 원래는 세종대로변에 있었으나 1900년 화재로 타게 되자 1901년 당시 미국 공사관 북쪽 수어청자리(정동 1-8번지)에 옮겨오게 되었으며, 광복 이후에는 경기여고와 주한미국대사관저 등의 부지로 사용되다가 2003년 미국대사관의 기숙사 건립을 위해 시행한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 덕수궁 선원전 영역임이 확인되었다. 2011년 한미정부 간에 합의에 따라 우리나라 소유의 토지가 되었고, 이에 따라 ‘고종의 길’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공개하는 ‘고종의 길’은 먼저 8월 한 달 동안 시범 개방하는 것으로, 이후 문제점을 보완하여 10월에 정식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관람은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 /문화재청

 

한편, 선원전 터 안에 있는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도 8월 한 달 동안 개방한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후 미국 대사관에서 사용했던 이 건물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선원전 영역의 발굴조사를 위하여 올해 모두 철거될 예정이나, 이 부지가 활용된 과거의 흔적들과 해당 역사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 구 러시아공사관에서 바라본 고종의 길(1900년초) /문화재청
▲ 덕수궁 선원전지 경계벽 설치공사 범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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