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지난 19일 델라웨어주의 파산법원이 테라폼랩스의 파산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테라폼랩스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조원의 피해를 낳았던 테라⋅루나의 발행사이다. 2022년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인 테라⋅루나의 가치 폭락으로 약 53조원에 이르는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였으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이에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사취한 혐으로 테라폼랩스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 파산 승인을 시작으로 테라폼랩스는 약 6조원에 달하는 환수금 및 벌금을 납부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또한 관련하여 투자자들의 추가 소송 등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열리게 되었다. 지난해 3월 몬테네그로에서 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된 테파폼랩스의 설립자 권도형 대표가 미국과 한국에서 각기 기소되었으며 어디로 인도될지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법적 절차를 통해 문제가 하나씩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게는 테라⋅루나와 관련된 큰 숙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테라⋅루나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 피해자들에게도 큰 피해를 입혔으나 대한민국의 블록체인 산업과 가상자산 시장에도 큰 상흔을 남겼다. 테라⋅루나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 ‘사기'와 ‘투기'라는 단어가 연관 단어로 떠오르게 되었고, 금융당국은 이를 계기로 가상자산 시장을 더욱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윤석열 정부에서 야심차게 내걸었던 가상자산 보호법(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역시 산업진흥 방안을 고려해 탄생했어야 함에도 테라⋅루나 사태로 인해 법안이 1차와 2차로 분리되어 투자자보호 우선이라는 명목 하에 산업진흥이 도외시된 반쪽짜리 법안이 탄생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혁신적 기술과 모험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하는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산업에 과도한 규제와 부정적인 사회 인식의 그늘이 드리우게 된 점은 한창 성장하던 국내 시장을 위축시키고 새로운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스타트업이 출범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테라⋅루나 사태보다 더 큰 규모의 투자자 피해를 불러일으킨 FTX 사태가 터졌던 미국이지만 2024년 1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며 혁신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늦추지 않고 있다. 우리도 테라⋅루나 사태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또는 테라⋅루나 사태를 핑계삼아 혁신과 변화의 속도를 늦추려는 시도들로부터 벗어나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블록체인 산업을 바라봐야 한다.
여전히 희망과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민간에서는 가상자산 기본법의 2단계 입법의 방향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에서 들려오는 뾰족한 소식은 없는 실정이다.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는 ICO(가상자산공개) 허용, 디지털산업 진흥청 설립, NFT 거래 활성화, 디지털자산 시장 육성 등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1차로 입법된 가상자산 기본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향후 이러한 공약들이 이행되고 제대로 된 가상자산 관련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5년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블록체인 관련 지원 사업 예산이 올해 519억 원에 비해 약 210억 원 삭감된 309억 원만 편성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업계의 우려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ICO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벤처캐피탈의 블록체인 스타트업 투자도 활발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이 같은 예산 감축은 현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의 진흥과 스타트업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른다. 그 혁신의 크기와 파급효과가 클수록 기대도, 사건도, 사고도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과정에서 발생한 실패와 문제들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지 주저앉거나 뒷걸음질을 칠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이 테라⋅루나라는 핑계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금 주목받는 블록체인 선도국가가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과 정책적 지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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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3년 본예산대비실적
2024년 본에산대비 재추계결과
자료: 기획재정부
-6조5000억 +61조4000억 +52조5000억 -56조4000억 -29조6000억